셀 사역

제목2013.08.18 셀 사역2024-04-22 11:56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가을이 오면 해 보고 싶은 것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복음성가 (나를 지으신 주님)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찬송가 435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7:15-18
● 제목 : 함정을 조심합시다.
1) 인간이 바벨탑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일인 이유를 이름과 관련하여 설명해 봅시다.
● 창세기 2:19과 창세기 11:4절을 함께 참고하세요.  

2)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무엇인가?
● 본문 18절을 중심으로 말해보자.  

3) 주일 설교를 통해 주었던 영적인 교훈과 가르침을 말해보되 나와 관련하여 적용해 보자.

1) 테마 말해보기.
2) 예화는 헨리 워드 비쳐 목사 이야기와 어스킨 목사 이야기 곱씹기.
3) 나와 관련하여 적용해 보기   
  

 
사역하기 (WORK)
1. 교회 중보기도
1) 잃은 양 찾기 6주차 사역이 셀 별로 철저히 진행되어 예비 된 영혼이 회복되도록
  6주차 사역 내용: 맡은 잃은 양과 함께 식사하며 섬기기
2) 영육의 나약함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우들을 위하여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이태희)
4) 두 날개 양육 시스템의 승리를 위하여
5) 9월에 있을 가을 열린 모임을 위한 태신자 미리 정하기 사역을 위하여
6) 연합회 교역자 기도회와 회의를 위하여  (22일)
7) 담임목사의 목양이 승리할 수 있도록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3년 8월 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7:15-18 / 제목 : 함정을 조심합시다.
이 지구상에 인간의 언어가 다양해진 이유는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노아의 계보를 남겨두시고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 죄악이 관영했던 인류를 심판했습니다. 홍수 심판을 경험한 인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만 한데 노아의 후손들은 이미 멸망했던 선조들의 죗성을 그대로 따라갔고 그 강도는 더 강해져만 갔습니다. 노아 후손들의 타락은 인간을 심판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도전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시날 평지에 거류하면서 소위 말하는 바벨탑과 거기에 걸 맞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대 역사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들이 이 대역사를 도모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창세기 11: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제시합니다. 그들이 바벨 프로젝트를 세운 이유는 ① 이름을 내기 위함과 ② 흩어지지 않고 연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벨 프로젝트를 세운 아주 명백한 이유는 인간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번역된 ‘이름을 낸다’는 표현은 원어성경 그대로 직역을 하면‘우리가 이름을 만들자.’가 더 가까운 표현입니다. 흠정역에서는 이 부분을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이름을 짓도록 하자.’ 번역했습니다.
바벨탑을 만들게 된 노아 후손들의 이 소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창세기 2:19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동식물들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위임받은 아담은 동식물들의 이름을 지었고 곧 그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의 중요한 신학적 의미는 창세기 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난 뒤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그들에게 피조 세계의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담은 각 종 동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름을 지었다는 말은 곧 아담이 그들의 다스림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름을 지음 받은 존재들은 아담과 하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섭리이자 뜻이었습니다.
똑같은 이치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고 이름을‘아담’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첫 사람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통제를 받으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인 노아 이후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한 인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함과 인도하심을 거절합니다. 그 거절함의 증거가 바로 바벨탑 프로젝트였습니다. 바벨탑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거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인간은 인간의 이름을 자기 스스로 짓기를 선포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길을 개척하고 우리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이름을 지어서 세상에 선포하며 이제는 하나님과 대적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 바로 바벨탑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사탄이 계속해서 우리들을 유혹하고 이끌어가는 함정은 * 하나님의 이름과 인간의 이름을 병행하도록 하는 함정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대등하도록 하는 일체의 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찝찝한 순종의 자세로 미디안 적진에 내려갔고 그곳에서 사람의 소리에 혹하여 진영으로 돌아와 어처구니없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 뒤에 기드온은 부하 300명을 세 파트로 나누어서 각 100명씩 미디안의 적진으로 진군하게 하였는데 진군의 방법은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항아리를 들게 하였는데 그 안에는 횃불을 담게 하였습니다.(본문 16-17절) 문자적으로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손 하나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목동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나팔은 어깨에 메고 다니는 나팔이기에 양들이 위기에 몰렸을 때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으고 소리로 짐승들의 공격을 막은 도구였음을 감안했을 때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이 무장했던 나팔은 당연히 멜 수 있는 나팔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은 나팔을 어깨에 메고 항아리를 부수고 난 뒤에 왼 손으로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 나팔을 잡고 불었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은“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말씀합니다. 기드온은 내가 나팔을 불면 너희들도 나팔을 불라는 명령과 나팔을 불며‘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외칠 것을 명합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 사사기 7:18절에서 “내가 거느린 부대가 나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을 둘러싸고 있다가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성경은 “여호와를 위하라 그리고 기드온을 위하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부하들에게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릴 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외치라고 의도적으로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기드온을 위하여’라고 외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어를 이어주는 접속사가 등위접속사라는 점입니다. 이 싸움의 주체가 하나님과 기드온이라는 은현 중의 암시입니다. 기드온의 명령 중에 아주 잘못된 것은‘기드온을 위하여’입니다. 전쟁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며 여기에 첨가되어야 할 인간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앞에서 수차례 살핀 것처럼 정말 마지못해 질질 끌려왔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에는 자기의 이름을 하나님의 반열에 동등하게 세우는 부정적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신앙의 출발은 나를 하나님 앞에서 죽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도의 출발을 알리는 말씀을 공관복음서에서 빼놓지 않고 동일하게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마가복음 8:34, 누가복음 9:23절) 선포하신 것은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느헤미야 3:1-32절을 보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최선을 다해 사역했던 15가지 이상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75명 이상의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역자들은 4KM나 되는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위하여 41개조를 나누어서 성벽 재건을 사역에 참여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거하며 그들의 수고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일등공신이요 또 만에 하나 없었다면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역사는 끔도 꾸지 못했을 일인데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룬 리더가 바로 느헤미야 총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 3장에서 75명 이상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정작 자기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이름이 높여지는 악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이 놀라운 역사의 기록에서 자기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헨리 워드 비쳐(Henry Ward Beecher)의 일화 중에 비쳐가 주일 예배의 설교를 뉴욕의 아주 큰 교회에서 행하게 되자 그 교회는 대대적으로 헨리 워드 비쳐의 설교 사실을 홍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설교 직전에 갑작스런 질병으로 못 오게 되었습니다.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그의 동생 토마스 비쳐(Thomas Beecher)가 대신 설교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헨리 비쳐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 교회는 회중들로 초만원의 사례를 이루었고 예배가 시작이 되고 설교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사정으로 인하여 헨리 비쳐가 설교를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윽고 토마스 비쳐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많은 회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설교자 토마스 비쳐는 웅성거리며 소동하고 있는 회중들을 향하여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형님이 갑작스런 병환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특별한 광고를 드리고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 예배 중간에 일어나고 계신 분들 말고 혹시 또 헨리 비쳐에게 예배하기 위해서 오신 분들은 지금 이 시간에 다 퇴장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들은 헨리 비쳐를 예배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기위해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멘트 뒤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다시 앉았고 그 날 예배에는 성령의 특별하신 기름부음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청교도 설교자로 유명한 에벤에젤 어스킨(Ebenezer Eskine) 목사의 설교를 어떤 성도가 처음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그녀는 어스킨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달려와 그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을 했지만 전날 같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어스킨 목사님에게 “목사님, 왜 어제와 동일한 은혜를 제가 받지 못했을까요?”문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스킨이“부인, 그것은 참으로 간단한 문제입니다. 어제는 부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오셨지만 오늘은 어스킨의 말을 듣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지요.” 대답을 했습니다.
이 예화를 통해 주는 은혜, 기억할 교훈은 예배는 사람의 말을 듣거나 아주 유명한 말쟁이 목사의 설교를 듣는 행위가 아닙니다. 만에 하나 그랬다면 그들은 하나님과 이름을 대등하게 하려는 질 나쁜 불신앙의 소유자들이며, 신 바벨탑 주의자들이며, 오늘 본문의 기드온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자리가 동등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쓰라리게 돌이키고 ‘여호와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라고 외치는 자들이 있으면 더 늦기 전에 나의 이름을 삭제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너의 이름이 뒤에 놓여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부추깁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이해할 것이야! 라고 속삭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사탄의 함정입니다. 그 사탄의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교만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 결국은 지옥에 구렁텅이로 함몰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과 같은 불신앙의 유혹과 싸우기 위해 우리들은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피흘려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다음에는 그 어떤 이름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가 세인지체들의 영원한 신앙 모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