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3.08.04 셀 사역2024-04-22 11:55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나에게 있어서 휴가와 쉼이란?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 오직 믿음으로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7:9-14
● 제목 : 찝찝한 순종을 박살내라
1)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적진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본문 13-14절을 참고하십시오.  

2) 기드온이 부하인 ‘부라’와 함께 적진으로 내려간 순종이 2%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주일 설교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3) 찝찝한 순종이 아닌 진정한 순종이 이루어지기 위해 성도가 가져야 할 영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 온전한 순종이 이루어지기 위해 반드시 함께 상관관계가 이루어져야 할 내용을 성경적인 예화들을 중심으로 말해 보십시다.  

 
사역하기 (WORK)
1. 교회 중보기도
 1) 잃은 양 찾기 4주차 사역이 셀 별로 철저히 진행되어 예비 된 영혼이 회복되도록
    4주차 사역 내용: 맡은 잃은 양에게 사랑의 편지 보내기 (누락자 있으면 안 됨)
 2) 영육의 나약함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우들을 위하여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이태희)
 4) 두 날개 양육 1기의 일체의 졸업 과정을 위해서 (졸업 시은회, 졸업식: 8월 18일)
 5) 9월에 있을 가을 열린 모임을 위한 태신자 미리 정하기 사역을 위하여
 6) 담임목사의 목양이 승리할 수 있도록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3년 8월 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40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7:9-14 / 제목 : 찝찝한 순종을 박살내라

두 날개 사역 훈련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이해가 되던 이해가 되지 않던 유익이 되던 유익이 되지 않던 순종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① 이해가 안 되는 것과 유익이 안 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유익이 되는 것과 이해가 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② 앞서 전제한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을 따라가는 것은 단순히 순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또한 믿음의 척도라는 사실이기에 우리는 여기에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전제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쌍두마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과의 싸움에 나갈 기드온의 군사로 300명을 정하셨습니다. 하롯 샘 쪽에 진을 치고 있는 기드온의 300명 용사와 모레 산 쪽에 진을 치고 있는 미디안 군은 이제 전투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마도 전투가 벌어질 전 날 밤으로 추측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오셔서 명령하셨습니다.(본문 9-11절 전반절) 고작 300명의 군사와 함께 135,000명을 대적해야 하는 대전투를 직전에 앞두고 있는 기드온의 심적인 부담이 얼마나 컸을까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앞서서 여러 차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는 인간인지라 두려움이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명령을 내리시기에 이릅니다. 일어나서 미디안의 진영으로 정탐을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줄 테니 담대하게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기드온에게 친절하게 내리시면서 기드온의 당시 심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기에 혼자 내려가기가 두려우면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내려가서 미디안 군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보라 명령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 중에 기드온을 도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미디안과의 대전투에 참여한‘부라’를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한 300명의 이름을 다 알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더 큰 은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우리들도 응원하고 계십니다.(시편 91:14) 이렇듯 세밀하신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이길 주역으로 사용하시려고 기드온을 위해 이미 선한 싸움의 계획을 세워놓았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히 기드온에게 9,14절에서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것’을 표준 새 번역으로 보면 “그 날 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적진으로 쳐 내려가거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넘겨주기로 한 대상은 미디안 군사들임이 분명 했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이 분명한 의지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본문 11절 하반절)
오늘 설교 가운데 주목할 단어는 ‘내려간 즉’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드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은 했지만 찝찝한 순종을 했습니다. 부라와 함께 내려간 기드온은 별로 내키지 않은 순종을 했습니다.  부라는 이전에 기드온에게 여러 차례 그리고 끈질기게 내가 미디안의 싸움에서 너를 이기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조명을 받은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냥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기드온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말씀해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알리 만무입니다. 그런 그가 무모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마땅히 담대한 마음으로 적진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반복하신 미디안과의 싸움에 대한 승리의 보증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혈혈단신이라도 담대할 터인데 부라를 대동하고 적진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그토록 재확인시켜 주신 은혜를 믿었다면 그는 홀로 내려갔어야 했습니다. 아니 홀로 내려갔어도 충분했습니다. 홀로 내려갔어야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배려차원에서 말씀하신 부라를 부득불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찝찝한 순종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찝찝한 순종을 한 기드온에게 기가 질릴 만큼 미디안과 아말렉의 군사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그들은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군사들의 수는 마차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았고 낙타의 수는 해변의 모래와 같았다고 사사기 기자는 묘사합니다.(12절) 지금으로부터 3,200-3,000년 전의 표현 방법으로는 이 방법이 아마 숫자의 많음을 묘사하는 최적의 방법이었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마어마한 적들의 수를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까지의 내용을 참고한다면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적진에 찝찝한 마음으로 부라와 함께 침투한 기드온은 우연히 적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미디안 군사 한 명이 꿈을 꾼 이야기를 또 다른 친구인 군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본인들의 진영으로 굴러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그 보리떡 덩어리가 미디안의 장막을 위쪽으로 엎어 무너뜨리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그 보리떡은 기드온의 무력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 전쟁은 우리들이 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적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본문 13-14절)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용기백배하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기드온에게 은혜로 작용했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신 내가 저들을 너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는 말씀의 약속이 분명함을 보게 된 은혜였습니다. 이미 싸워 이겨 놓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상의 본문 이해를 통해 오늘 주일 설교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찝찝한 순종을 박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시고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은 단호하십니다. 하나님이 한 번 선포하신 말씀은 실수로 말했다고 사과를 하면서 거두어들이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17-18절에서 주님은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 한 부분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다’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점일획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선포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받는 신앙인들은 믿음의 척도인 순종만 하면 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물이 포도주로 바뀐 기적은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당부한‘그대로 하라’의 믿음 플러스‘갖다 주었더니’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2:5절과 8절) 가버나움에 병들어 있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기적을 맛 본 왕의 신하의 기적은‘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들은 왕의 신하가 믿음을 갖고‘말씀을 믿고 가더니’의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요한복음 4:50)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이 나병에서 고침을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그의 몸종이었던 어린 소녀가 가지고 있었던 엘리사에 대한‘고치리이다’의 믿음과‘몸을 잠그니’의 나아만의 실질적인 순종이 이루어낸 작품이었습니다.(열왕기하 5:2-3절과 14절)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마른 손이 펴진 기적을 경험하게 된 손 마른 사람의 은혜는 그가 행한‘내밀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마태복음 12:13) 이 말씀들은 믿음과 순종은 은혜를 받는 쌍두마차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가 믿음과 순종입니다. 선포된 메시지를 통해 결단해야 할 내용은 믿음과 순종은 함께 어우러지는 상관관계의 쌍두마차와 같은 승리의 원동력임을 배웠다면 찝찝하게 행하는 순종을 박살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마지못해 행하는 순종을 초토화시켜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해가 되는 것에 대한 순종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순종의 극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유익이 되는 것에 대한 순종이 아닌 유익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이 귀한 인정을 받는 주인공으로 적극적인 순종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