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3.07.14 셀 사역2024-04-22 11:52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주일 설교에서 선포된 긍정의 바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지인 소개하고 자랑하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가 94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6:36-40
● 제목 : 바보 하나님
1)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미디안과의 싸움에 출정시키기에 앞서 명령하신 다섯 가지의 명령의 내용은?

● 하나님께서 유독이 기드온에게 바보 같은 모습으로 인내하셨던 내용들을 조목조목 말해 봅시다.
  사사기 6:16절부터 오늘 본문까지 내용을 중심으로.
  

2)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기드온에게 집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주일 설교 테마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십시다.  

3) 2번 질문의 답을 나에게 적용할 때 임하는 영적 감동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어거스틴이 말한 교훈을 첨부해서 1인칭 화법으로 은혜를 고백해 봅시다.  

 
사역하기 (WORK)
1. 교회 중보기도
1) 잃은 양 찾기 1 주차 사역이 셀 별로 철저히 진행되어 예비 된 영혼이 회복되도록
2) 여름 사역의 전반을 위하여(성경학교, 학생회 수련회, 청년 해외 아웃리치)
3) 환우들을 위하여
4)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이태희)
5) 두 날개 양육 사역이 승리할 수 있도록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3년 7월 1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6:36-40 / 제목 : 바보 하나님
국어사전적인‘바보’의 의미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도리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여의사인 말론 모건이 쓴 책‘무탄트 메시지’에서는 호주 원주민들과 함께 한 4개월 동안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야 말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바보(바로 보는 사람)같은 바보(바로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음을 선포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오늘의 물질 만능과 인간성 말살의 주된 원흉인 과학주의에 빠져 있는 진짜 바보들인 우리들을 향하여 진정한 아름다운 삶이 어떤 삶인지를 증언해 주는 긍정적 차원의 바보들입니다. 긍정의 바보는‘바로 보는 사람’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산하지 않고 달려가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바로 본다는 것은 절실합니다. 자신의 이해타산은 접고 분명한 뜻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한 긍정의 바보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었지만 정말로 대책이 안서는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기드온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설득 또 설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나약한 자였던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격려하시고(삿 6:12), 임마누엘의 축복의 약속도 하셨습니다.(삿 6:16) 하나님은 표징을 보여 달라고 떼를 쓰는 기드온의 요구에 하나님의 자존감을 다 버리시고 그에게 표징도 보여주셨습니다. 원대로 표징을 보여주었더니 이제 기드온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어 전쟁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어리광을 부리며 생떼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달래시고 바알의 단을 훼파했을 때도 그를 아버지 요아스를 동원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를 만드시기 위하여 성령의 옷을 입히시면서 응원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전혀 요동하지 않던 아비에셀 사람들과 불과 얼마 전에 기드온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던 적들이었던 오브라 사람들을 움직이셨고 지파 공동체의 형제들의 마음을 독려하셔서 32,000명이나 되는 전쟁에 나갈 동역자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는 믿음을 갖고 일어나야 되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아연실색하게 하는 기드온의 말로 설명하기를 버겁게 하는 행동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요구했던 양털 시험입니다. 본문 36절은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으로 시작됩니다. 기드온은 또 다른 단서를 달고 하나님과 시소게임을 합니다. 나를 미디안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 구원하시려면 양털의 기적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려면 이 양털에만 이슬이 머금게 해주시고 나머지 타작 마당은 마르게 해 달라는 요구에 하나님은 기드온의 소원대로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한 번 더 반대로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번에는 타작마당에는 이슬이 내리게 해 주시고 양털은 마르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드온의 요구에 하나님은 본문 40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반응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보며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렇게 유아적인 발상을 하면서 하나님께 떼를 쓰며 심지어 하나님께 이렇게 안 해주시면 나는 결코 미디안에게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던 기드온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기드온보다 훨씬 더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바로 나임을 인정할 때 오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집착하시는 그 일련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 엄청난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 바보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셔도 될 만한 벌레 같은 우리인데 하나님은 나를 그리 보지 않으시고 설득하시고 또 설득하시고 심지어는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으신 바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보가 되기를 결심하신 이유는  *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부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그의 책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해 불러 주신 은혜와 둘째, 나 같은 죄인과 함께 하시고 같이 일하자고 요구받은 은혜이다.”라고 갈파했는데 음미하면 할수록 은혜가 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 두 가지의 은혜를 천명한 뒤 “우리가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기막힌 촌철살인을 선포합니다.
기드온은 세속적 가치로 보더라도 정말로 깜이 안 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부르시고 설득하시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내려 놓으셨고 기드온에게 “나는 네가 정말로 필요하구나. 나는 정말로 너와 함께 일하고 싶구나. 나와 함께 일하지 않겠니?” 말씀하셨습니다. 이 음성은 오늘 기드온에게 주는 음성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필요로 하십니다. 나를 위해 못 박혀 죽으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이제는 나를 도구삼아 또 다른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주님의 열심에 응답하는 세인의 지체들이 되십시다. 바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