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가 내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 영적인 바알과 아세라를 고백하고 합심 기도 시간에 제거 기도하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305장)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찬송가 304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6:28-32 ● 제목 : 우리도 얼마든지 1) 본문 기사에 기록된 영적인 적반하장을 아는 대로 설명해 보자 2) 요아스가 아들 기드온을 살릴 수 있었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무엇이었는가? 3) 오늘 설교를 통해 내가 육비에 새겨야 할 도전이 무엇인지 깊이 나누어 보자. 1) ‘우리도 얼마든지’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도전은?
2) ‘어떤 경우에’ 가 주는 영적인 교훈은?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새 가족 섬김이 사역 3주차 사역이 성실히 진행되기를 2) 여름 사역의 전반을 위하여(성경학교, 학생회 수련회, 청년 해외 아웃리치) 3) 두 날개 양육 사역의 승리를 위하여 4) 환우들을 위하여 5)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이태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6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 본문 : 사사기 6:28-32 / 제목 : 우리도 얼마든지
기드온은 미디안 출정을 앞두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다섯 가지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날이 밝자 오브라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바알의 단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바알의 단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아세라 목상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세라 목상이 불에 탄 바로 그 장소에 번제에 드린 수소의 사체들이 널 부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의 단에 모여든 오브라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였기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의 의견대로 자기들의 소위에 맞게 마음대로 행동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원래의 명령 즉 율법이 무엇인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고 또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그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삿 2:2) 오브라에 살고 있었던 백성들 역시 이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바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는 직감을 한 것입니다. 못내 찝찝했던 영적인 상황에 기름을 붓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일을 빠른 시간 내에 종결짓기 위해 그들은 바알의 단을 훼파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추적하였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어떻게 기드온이 이 일을 행한 자로 발견되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사자로 기드온이 지목되었다는 것은 오브라 사람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바알 단 훼파의 범인 색출에 대하여 흥분하였고 집중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본문 29절) 본문 29절에 ‘캐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다라쉬’는 아주 세심하게 조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마치 검사가 범죄자의 신상을 먼지 털이 하는 방식과도 같은 방식으로 꼼꼼한 조사를 할 때 쓰는 단어가‘다라쉬’입니다. 그렇게 조사를 하려면 집중력이 필요한데 반드시 내가 이 일에 대하여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를 전제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브라 사람들이 알아낸 것은 기드온이 바알 단 훼파의 범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기드온의 바알 단 훼파를 알아낸 유다 공동체의 오브라 사람들이 행한 그 다음의 반응은 본문 30절입니다. 오브라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요아스에게 몰려가 네 아들 기드온을 끌어내라고 협박합니다. 그를 죽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섬기고 있는 바알의 단을 훼파했으니 마땅히 기드온은 죽을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바알의 단을 부순 것으로 인해 살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 요아스를 사용하여 아들에게 집단적 살해 협박을 하고 있는 오브라 사람들에게 요아스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요아스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5절을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의 영어성경의 고전인 RSV는 “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바알의 제단”(the altar of Baal which your father has)으로 번역합니다. 오브라에 있었던 바알 산당은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던 제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소유권이 요아스에게 있었다는 증빙입니다. 이 말은 ① 실질적으로 바알 산당의 소유권은 요아스에게 있었지만 요아스가 공동체의 우상 숭배를 위해 기부한 것일 수 있다는 추론과 ② 요아스는 이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었던 오브라의 유지였기에 그의 물리적인 세력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오브라의 형편이었다는 추론입니다.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던 요아스는 아들 기드온을 죽이겠다는 집단적 협박에도 조금도 당황하거나 굴하는 기색이 보이지를 않고 지혜를 발휘합니다.(본문 31절) 기드온의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는 자는 다시 내가 죽일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내 아들이 바알의 단을 훼파하여 죽을 짓을 했다면 바알이 신일진대 바알이 아들을 죽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알이 참 신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데 해결은 너희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 신이 할 것이니 아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아들이 행한 하나님을 위한 목숨을 건 신앙적 행위 때문에 회심을 해서 그런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요아스의 지혜는 아들도 살리고 당시 오브라에 만연되어 있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가 헛된 것임을 증명하는 기회까지 되었다는 것은 본문이 주는 영적인 도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본문 마지막 절은 기드온에게 새로운 별칭이 주어졌음을 친절히 알려줍니다.(삿 6:32) 후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드온의 별칭은‘여룹바알’입니다. 번역하면‘바알로 하여금 그와 쟁론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9-30절에서 오브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의 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되어 기드온과 함께 일했던 종들까지 샅샅이 조사하여 기드온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기드온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그들은 요아스에게 찾아와 당당히 아들을 끌어내라고 요구합니다. 출애굽기 20:4-5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반드시 전하라고 했던 율법의 대강령이었습니다. 이 엄숙한 명령은 하나님의 근원적인 요청이며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보기 좋게 금송아지 사건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과의 근본적인 관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가 있었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보로 인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번째의 돌 판을 새기시면서 다시 이스라엘에 지켜야 할 언약을 재 갱신하며 확인시키시는 장면이 바로 출애굽기 34장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언약 설정은 첫 번째의 언약 설정에 비해 정말로 중요한 도전을 하나님이 선언하시고 있습니다.(출애굽기 34:13-14) 출애굽기 34:13-14절의 하나님 명령은 기드온에 의해 실천되었습니다. 사사기의 시기적인 배경은 주전 14세기 전반부 즉 1050년 경 약 300-350년간의 역사라고 볼 때 모세에게 이 명령을 선포한 지 400년도 안 된 시기에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이 전복되어 있는 망극함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자는 죄인이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는 심판자가 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을 섬긴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도리어 우상을 척결한 자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심문하고 정죄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고 있습니다.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들이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도 얼마든지 오브라 사람의 대열에 설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 말씀을 깨뜨릴 때, 즉 말씀을 무시할 때 그럴 수 있습니다. 오브라 사람들이 우상 척결의 아름다운 헌신을 한 기드온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말씀(언약)을 무시하고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뜨리고 말씀을 무시하면 내가 영적으로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무서운 것은 말씀을 무시한 것을 정당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도리어 공격하고 정죄하는 무감각의 지경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지금 나의 삶은 어떻게,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그릇된 길인지를 분별하게 해 주는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의 길잡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길잡이가 되는 말씀을 무시하고 깨뜨린다면 당연히 길을 잃습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길을 찾을 때 지도에서 가장 먼저 주시해야 할 것은 자신의 현제 위치이다. 인생도 내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찾지 못하면 목표도 실행계획도 의미가 없다. 이 책은 갓 어른이 되어 서먹한 사회의 낮선 거리에 들어선 당신의 'You are here'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다’ 말합니다. 김난도 교수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멘토이지만 그의 책이 감히 낯선 거리에 나온 젊은이들을 위한 완벽한 'You are here'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이 땅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익히 알고 양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3:14-16절의 말씀을 일설 했습니다. 기드온 시대에 오브라 사람들은 분명한 영적 정체성을 갖고 바알의 단을 훼파한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시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조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린 것에 대한 범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깨뜨리는 순간 곧바로 오브라 사람의 줄에 서게 됨을 육비에 새기는 세인의 지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적을 보기 위해 벳세다에서 가버나움까지 따라온 무리들에게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다시는 따르지 않았다는 요한의 증언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실 때 요한복음 6:68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의 답변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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