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금년 여름에 휴가 계획을 나누되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람이 있는 계획 세우기 | 경배와 찬양 (WORSHOP)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6:25-27 ● 제목 : 나를 찍어내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미디안과의 싸움에 출정시키기에 앞서 명령하신 다섯 가지의 명령의 내용은? 2) 기드온에게 하달하신 다섯 가지의 명령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 27절 말씀 중 하반절‘행하니라’속에 담겨 있는 영적인 교훈을 찾아내자. |
3) 내가 찍어내야 할 영적 ‘카라트’의 내용을 진정성 있게 고백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나누자.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새 가족 섬김이 사역 2주차 사역이 성실히 진행되기를 2) 여름 사역의 전반을 위하여(성경학교, 학생회 수련회, 청년 해외 아웃리치) 3) 환우들을 위하여 4)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5) 담임목사님의 기도원 입소 사역의 승리를 위해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6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6:25-27 / 제목 : 나를 찍어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과 은혜로 미디안을 물리치는 사사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사사 직 수용은 정말로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계획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먼저 앞서 싸워 이겨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확신을 받았으니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미디안과 싸움을 위해 출정하기에 앞서 아주 중대한 명령을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내리시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본문 25-26절)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총 다섯 가지의 명령을 출정 전에 감당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① 아버지의 소유로 되어 있는 수소 중에 둘째 소를 취하라 ② 네 아비가 만든 바알의 단을 헐라 ③ 단 곁에 있는 아세라 상을 찍으라 ④ 바알의 단이 위치해 있었던 높은 언덕에 여호와의 단을 지으라 ⑤ 취한 둘째 수소를 잡아 아세라 신상의 나무 조각으로 번제를 드려라’입니다. 5가지 명령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첫 번째 명령은 아버지 소유의 둘째 수소를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수소가 아니라 둘째 수소를 취하라고 하신 것은 본문에‘둘째 수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파르 하 쉐르’‘쉐르’는 통상적으로‘second’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더 중요한 문자적인 의미가 있는데 ‘우수한, 뛰어난’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에게 제일 먼저 우상 숭배자인 너의 아버지 소유물 중에 바알 신에게 바치려고 했던 가장 상태가 뛰어난 제물을 바알이 아닌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명령은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아버지 요아스의 소유처럼 여겨진 바알의 단을 헐라는 명령은 첫 번째 명령과는 상대가 안 되는 무거운 일이었습니다. 바알의 단은 요아스의 사설 단이 아니었습니다. 오브라 지역에 있었던 바알의 단은 집단이 함께 하던 우상의 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단을 헌다는 것은 곧 닥칠 죽음의 위협을 담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명령은 단 곁에 있는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명령입니다. 가나안의 농경 신이었던 남성 신인 바알과 성적인 파트너였던 아세라는 나무로 만든 여신상이었습니다. 이 두신들이 성적인 결합을 맺을 때 비가 내린다고 믿었기에 항상 아세라는 바알의 단과 결합되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의 단을 훼파함과 동시에 아세라의 목상까지 찍어 제거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네 번째의 명령은 바알의 단이 위치해 있었던 높은 언덕에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라는 명령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찍어내라는 명령은 기드온에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물리적 계산으로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규모는 면적 만 7-8미터에 달하고 높이는 1.3미터에 무거운 돌들을 진흙으로 고정시킨 단이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단을 개인이 허는 것은 먼저 물리적으로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10명의 동역자들과 함께 주님의 명령을 시행했습니다.(본문 27절) 일이 끝나면 그 우상의 단에 꼭대기에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알베르토 소긴 교수는 자신의 성서주석인 판관기 주석에서 바알과 아세라 단이 위치해 있었던 곳을 가리켜‘요새화된 가나안 성소’라고 정의했을 정도로 이 곳의 접근은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런 악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목숨을 걸고 감당하기에 이릅니다. 마지막 명령은 준비한 수소를 잡고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기드온은 이 명령을 수행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그 동안 아버지를 비롯하여 오브라 공동체 전체가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던 아세라 목상을 불태워 바로 그 불을 이용하여 번제를 드리라는 부분입니다. 찍어낸 아세라 목상을 재료로 불쏘시개를 만들어 번제를 드리라는 것은 못내 찝찝한 구석과 여운을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본문 27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말씀합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합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드온 역시 바알 단의 훼파와 아세라 목상의 찍어냄 그리고 그 목상을 불에 태우는 일에 대한 허접함을 사사기 기자는 완곡하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이 일들을 밤에 행할 수 밖에 없었던 영적인 부담이 하나님의 명령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본문 27절 ‘행하니라’입니다. 엄청난 부담이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기드온은 그 부담을 짊어졌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드온이 일련의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데 까지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무게감과 두려움이 전제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결코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드온은 완전하고 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의 순종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고 용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당신이 일하시는 도구로 만든 기드온에게 왜 이렇게 녹록하지 않은 명령을 하나님이 내리셨을까? 의 문제 제기입니다. 만에 하나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이 무모한 도전을 하나님은 왜 행하셨을까? 의 문제제기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참 중요한 은혜요 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의 찍어냄의 명령은 단순히 우상을 찍어내는 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곧 기드온이 갖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찍어내는 신앙의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존심까지 접으시면서 기드온을 어렵게 설득하고 또 설득한 끝에 당신의 일꾼으로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이 말을 역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기드온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기드온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가 아니었고 하나님이 마음을 놓고 일을 시킬만한 자도 아니었고 기드온의 내적인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여타의 우상들이 들끓고 있는 것을 하나님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바알 신상을 찍어내는 순종을 통하여 또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는 순종의 행위를 통하여 기드온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드온이 갖고 있는 우상들을 찍어내기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만들어진 헛된 우상을 찍어내는 것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미디안을 하나님의 성스러운 땅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의 땅과 백성들을 회복시키는 데 도구로 사용 될 기드온 스스로의 내적인 심령에 갖고 있었던 영적인 우상들을 찍어내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메시지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혹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임을 공공연하게 밝힙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렇게 입술로 크리스천임을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인으로 예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외의 것들이 살아 움직일 때 나는 결코 크리스천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내 안에 전혀 예수님과 관계없는 것들이 살아 있으면 나는 그것의 사람이지 예수의 사람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예수와 관계가 없는 것들을 찍어내지 않는 한 우리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가장 근접한 삶을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 안에서 그 말씀이 명령하고 지시한 방법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조명되지 않는 일들을 행하지 않는 것이 비결입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되고 계시된 살아있는 말씀 중에 명령하시고 지시하신 말씀대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의 규범 안에 해당되지 않는 나의 자아와 습성과 삶의 모난 부분을 성령의 정으로 찍어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걸작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체의 것들을 찍어낼 때 만들어집니다. 본문에 두 번에 걸쳐 기록된‘찍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라트’는 베어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반드시 몸통을 전제합니다. 몸통을 베어내는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가‘카라트’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천로역정의 노정 중에 가장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나를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나의‘카라트’는 나만 압니다. 그것을 과감하게 찍어내야 합니다. 이 믿음의 결단이 없이는 그냥 그렇게 이 땅에서 명목적 신자로 살다가 하나님께 설 것입니다. 혹시 내 안에 영적인 삶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부정적 신앙의 난맥상들과 비난의 화살들로 가득 차 말만 앞세우는 삶을 살고 있다면 성령의 은혜로 찍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내적인 심령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단을 쌓으시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드리십시오. 그럴 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은혜의 세계가 보이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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