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태장성결교회를 담임하는 선배 목사님이 한 달여 전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 나와 함께 강원지역에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 목사님들이 같이 길을 걷는 강원 코칭넷 그룹이 있는데 이번 모임의 테제로 목사님이 집필한 『신 사사시대에 읽는 사사기 Ⅰ,Ⅱ』을 갖고 북-콘서트를 해볼까 합니다. 동의해 주시면 의미 있는 사역이 될 것 같아 요청드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가을이 한복판에 서 있을 계절이 되면 세인교회 주최로 북-콘서트 사역을 하리라 마음먹었던 일인데, 선배 목사님이 선뜻 제안해 주셔서 너무 송구했던 기억이 오롯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그렇게 기도하고 준비한 북-콘서트를 행복하게 마쳤습니다. 이 일을 주관해 준 강원 코칭넷 목회 동역자들과 섬겨주신 선배 목사님, 더불어 태장교회 전 교우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2년 6개월, 서재에서 사사기와 씨름했습니다. 거의 미친놈처럼 사사기와 싸웠습니다. 이미 학습화되어 있는 한국교회의 사사기 이해와 맞짱을 떠야 했기에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오기도 발동했습니다. 현장 목회자는 역시 가벼워! 라는 비판, 구약 성서의 주해적 해석과 동떨어져 학문적이지 않다는 죽기보다 더 듣기 싫은 쓴소리, 그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라는 상투적인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아내가 사사기와 결혼하지 왜 나하고 결혼했냐는 딴지도 견뎌내며 2년 6개월을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치열함과 친구한 지 2년 6개월 만에 1, 2권을 합하여 650페이지 달하는 원고를 완성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세간에 졸저를 내놓았습니다. 무명작가인지라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선배님이 마련해 준 북-콘서트는 제게는 너무 귀한 기회였고, 사사기 읽기에 대한 대중적 홍보의 첫걸음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기독교 서적이 1쇄를 넘어 2쇄를 찍는 것은 물 위를 걷는 기적과 같은 레벨이라는 웃픈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 서적이 성공한다는 것은 ‘넘사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至難)한 작업을 마친 작가들은 2쇄, 3쇄 등등을 찍는 기적을 통해 그로 인해 작가에게 임하는 여러 가지 명예, 만족감 혹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삼기에 또 집필에 몰두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원 시절, 퀸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 오스카를 만들어냈을까? 물론, 시대가 오스카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대답임을 압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생뚱맞게 퀸터 그라스의 미친 상상력의 산물로 인해 탄생 된 존재가 오스카라고 직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작가란 결코 과거를 그냥 유기하지 않는 이들이다. 작가는 너무 빨리 아문 상처들을 미리 열어서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출입구를 막아놓은 지하실에서 시체를 끄집어내며, 금지된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먹지 말라는 음식을 고의로 먹는 이들이다. 금단의 음식을 먹어치운다.” 튀르키에 출신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도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늘로 우물을 파는 일이다.” 2, 3쇄를 찍기 위함이 아니라, 글을 쓰지 않으면 목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영적 상상력, 더불어 창작의 열정을 상실할 것 같다는 떨리는 두려움이 압박하기에 저는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지난 주, 선배 목사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이런 성찰의 결과물을 나눌 수 있는 장을 갖게 되어 그 감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모쪼록 졸저이기는 하지만, 많은 동역자와 교우들이 글을 함께 공유하고, 성찰하고, 아파하며 울고 웃음으로 인해 예언적 메시지가 사장(死藏)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기대가 제게 있습니다. 귀한 자리, 아름다운 동역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김동오 선배님과 함께 북-콘서트에 참석한 동역자들, 더불어 담임목사가 잘하도록 중보 하는 마음으로 동참해 준 세인 지체들께 머리를 숙여 인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