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목사’라는 레떼르가 이제 무거운 멍에가 된 시기에 아들이 이요한 목사로 그 직을 옮겨야 하는 것을 보니, 아버지의 마음은 만 가지 감정이 꿈틀거린다. 목사라는 직은 영광을 받는 사족을 남기는 자리가 아니라, 마치 끝이 없는 무저갱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을 시작해야 하는 직이기에 목사라는 출발점에 서 있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는 것 말고는 지지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애잔하기 이를 데가 없단다. 아버지가 가장 어려웠을 때, 신학을 하겠다고 나선 네 모습을 보면서 한때의 객기라고 치부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단다. 하지만 주군의 생각이 아버지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고는 백기 투항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두 손을 들었다. 더불어 그렇게 몰고 가신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 분이신 것을 믿기에 이제는 아들의 천로역정의 길을 그분께 철저히 맡기기로 했단다. 아버지가 오래전에, 감동의 파노라마를 느끼며 읽었던 유대 신학자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의 글을 하나 소개하고 싶구나. “그분의 존재에 대한 확신에 도달한다고 해서 신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신비를 넘어서 있는 그분과 합일하려는 격렬한 갈망의 시작이며,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힘과 영적으로 우리를 넘어서 있는 모든 힘을 하나 되게 하려는 열망의 시작이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 한국기독교연구소, 206-207) 엄청난 성찰이다. 아들아, 섣불리 신앙을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앙의 정의는 목사로 살아가는 동안, 아들이 삶의 체화를 통해 인격적으로 경험한 것만이 올바른 신앙의 내용물임을 알고 섬기는 교우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렇게 신중하게 성찰하는 목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어디 이뿐이겠나 싶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한 가지만 더 부탁하고 싶구나. 아버지는 아들이 걷는 목사라는 길이 후회하지 않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좌충우돌하고 또 이리저리로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젊은 날에 불온함과 흔들림이 없이 승승장구하는 자에게 무슨 뿌리 깊은 영성을 기대할 수 있겠나 싶어 아들이 주군께 묻고 질문하는 목사가 되어 주기를 정말로 기대 한다. 아들, 너도 좋아하는 차준희 교수가 이번에 출간한 책 『구약 예언서』를 읽다가 정말로 예기치 않은 은혜를 받았단다. 김기석 목사의 글을 자기 책에 이렇게 인용했구나. “망설임은 ‘성실성의 증거’이고, 확신은 ‘사기의 증거’일 수도 있다. 너무 지나친 말일지 모르겠지만 회의 없는 강철같은 확신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삶 자체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모호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 아닌가!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는다. 무릇 살아 있는 것들은 다 흔들리게 마련이다.”(차준희, 『구약 예언서』, 감은사, 407-408) 아버지도 동의한다. 이렇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목사가 굳어지지 않는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이런 길을 걷는 목사는 후회하지 않는 사역자가 되지 않겠나 싶다. 아버지는 아들이 후회하지 않는 길을 걷는 목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회한을 남긴 못난 아버지라서 아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평생 아버지가 목사로 살면서 순간순간을 위기를 버티며 살아내도록 주군께서 힘을 주신 말씀을 선물로 남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목사라는 레떼르를 갖고 출발하는 이요한 목사에게 날마다 하나님이 세미한 소리로 다가오시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