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수요 기도회 설교 제목: 기본기를 찾습니다. (1) 본문: 누가복음 5:1-11 서론) 월요일 저녁에 탁구장엘 나갔습니다. 4부를 치는 회원이 게임을 하자고 해서 상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핸디 3점을 주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합쳐 6세트를 쳤습니다. 전적은 6:0으로 제가 이겼습니다. 치는 내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씩씩대는 회원에게 한두 세트는 일부러 져주는 게 목사의 도리지, 어쩜 그렇게 야박하냐고 비난해도 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은 그 회원을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그 회원이 제게 이렇게 정중하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경기 결과가 흡족하지 않은데 오늘 제가 목사님께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원인을 거칠게 알려주십시오.” 회원이 진정성이 있게 질문을 했기에 저도 진정성이 있는 원인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무개님이 오늘 제게 패배한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입니다.” ⓵ 백 랠리에서 저를 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전이 많이 들어간 백 사이드 커트 리시브를 주었는데도 회원께서 계속해서 백 스매싱을 하니까 네트에 걸리기 일쑤였던 것이 패배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백 사이드 커트 리시브를 극복하려면 백 드라이브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회원님은 백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없기에 저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⓶ 제 서브를 원활하게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건 서브는 좌우로 다양하고, 더불어 긴 서브, 짧은 서브, 회전이 많이 들어간 서브, 너클성 서브, 그리고 가끔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무회전 서브까지 넣는데 아직 회원님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리시브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1세트에 갖는 서브의 수가 5번인데, 5번의 서브를 받을 수 없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서브를 받는 테크닉을 고민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⓷ 파(far) 드라이브의 높이를 전혀 모릅니다.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상대방의 공은 네트를 기준으로 해서 네트보다 조금 높을 때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테이블에서 약 10cm가 떨어져 오는 커트 형 볼입니다. 하지만 회원님은 그런 세밀함이 없이 무조건 파 드라이브를 걸기에 네트에 걸리니 실점이 많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저를 이기지 못합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를 써서 설교를 시작하는 저를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탁구 게임의 내용을 설명한 것은 한 가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특히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되려면 기초 즉 기본기의 숙지와 더불어 그 기본기를 겸비한 실제적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기본기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런 기본기는 단지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기본기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영적인 능력도 바로 이 기본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텍스트 중에 영적 기본기가 무엇인지를 대단히 적절하게 알려주는 텍스트를 이야기할 때 제가 항상 추천하고 인용하는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론)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기사입니다. 예수의 제자 중에 선임 제자 격인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첫 번째 소명(calling) 받는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정황은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심으로 인해 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이신 이후였고, 더불어 환자들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셨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예수님에게 매료되어 예수님이 옮기시는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많았던 때임을 본문 1절이 제시합니다. 본문 1절을 주목하십시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1절에 기록된 ‘무리’(無理)라는 단어는 헬라어 ‘오클로스’의 번역입니다. 흔히 ‘오클로스’라는 단어는 ‘군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산상수훈으로 너무 잘 알려진 마태복음 5:1절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여기에 기록된 ‘無理’가 오늘 본문 1절에 기록한 ‘無理’ 즉 ‘오클로스’입니다. 김기석 목사는 이 ‘무리’에 대해 일찍이 이렇게 간파했습니다. “예수께서 보신 ‘무리’는 바로 우리들이다. 말장난이지만 ‘無理’는 ‘理’가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그 말은 너무 단정적이다. ‘理’를 따지고 살기에 너무나 땅의 현실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는 왜 산에 오르시는가? ‘距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距里’가 없으면 볼 수 없다.” (김기석, 『삶이 메시지다』, 포이에마, 15쪽) 대단히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중이란 ‘理’가 없기에 무리로 전락 될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대중적인 호도에 넘어갈 어리석음이 많은 존재들이 바로 무리 즉 군중들입니다. 그러므로 ‘군중’ 즉 ‘무리’라고 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거리를 갖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1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도구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영적 거리(距里)가 없어 무리로 살 수밖에 없던 이들이 게네사렛 호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게네사렛을 몰려든 이유는 그 게네사렛에 ‘理’ 되신 예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한자 단어로 ‘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理’ 이 단어를 네이버 한자 자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사람이 순행해야 하는 도리” 그렇습니다. 이 풀이를 전제하여 적용한다면 이런 적용이 가능합니다. 산헤드린 종교 회의를 장악하고 있던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상투적인 상업적 종교인들로 도배되어 있었기에 하늘의 이치나 사람이 순행해야 할 가치가 없었고 동시에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었던 주후 1세기 팔레스타인 갈릴리 사람들에게 ‘理’ 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고, 사람들은 그분이 계시는 게네사렛으로 몰려들었다는 해석입니다. 그들 즉 무리들이 게네사렛으로 몰려든 것은 그들이 매번 살았던 삶의 방식인 ‘무목적’의 방식이나 군중 심리로 몰려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본문 1절을 개역판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주목할 만합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옹위하다’는 단어를 우리는 북한 선전 문구에서 많이 접합니다. ‘목숨 걸고 수령님을 옹위한다.’ ‘옹위한다’는 말은 ‘사방으로 둘러싸서 보호하다’는 뜻입니다. 게네사렛으로 몰려든 무리들이 얼마나 예수를 존중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를 그렇게 존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산헤드린 종교 회의의 지도자들에게는 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理’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도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무리들은 갈릴리의 한 지역이었던 예수께서 계시던 게네사렛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게네사렛으로 몰려들었던 무리들이 했던 일이 궁금해집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우리에게 그 답을 제시합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그렇습니다. 그들이 게네사렛으로 몰려든 이유는 예수께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몰려든 것입니다. 집중해야 할 은혜입니다. 무리들이 게네사렛으로 몰려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1절에 ‘들을새’라고 번역한 헬라어 ‘아쿠오’는 ‘그냥 듣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밀하게 적용하자면 ‘청취한다’라는 뜻입니다. 영어 표현을 말씀드리면 ‘listen to carefully’입니다. 집중해서 듣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기본기를 찾습니다.’라는 제하의 첫 번째 수요 기도회 제목 설교를 통해 성도가 가져야 하는 영적 기본기 중에 제일 중요한 기본기를 레마로 이렇게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적 기본기는 ‘말씀 잘 듣기’입니다. 요한계시록 저자가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보여준 계시의 내용들을 7 교회에게 알려주기에 앞서 신앙인의 대헌장처럼 제시한 금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에 대해 선포하려는 계시록 저자는 복이 있는 자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웹스터 영어 성경은 계시록 1:3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Blessed is he who reads and those who hear the words of the prophecy, and keep the things that are written in it, for the time is at hand.” 직역하겠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와 읽는 자는 복 될 것이며, 더불어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이들도 복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손에(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 저자의 공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 그 말씀을 귀로 듣는 자, 읽고 듣고 난 뒤에 머뭇거리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心碑에 새겨야 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저자도 일갈했지만, 신앙의 기본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로 몰려든 무리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35-38절을 읽겠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갔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실망하여 다시 귀국 길에 올랐던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았던 내시가 가사에 도착했을 때, 주의 영에 사로잡혀 기다리고 있었던 빌립 집사가 그에게 접근하여 내시가 읽고 있었던 이사야 53장을 풀고 입을 그 예언자의 말씀은 입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빌립의 설교를 듣고 있었던 내시는 그 뜻을 깨닫고 곧바로 마차에서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회심합니다. 그가 돌아가 에티오피아 선교의 물꼬를 텄을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4:9-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바울과 바나바가 제일차 전도 여행지였던 루스드라에 방문했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아왔던 장애우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걷게 해준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이 간증을 기록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루스드라 지방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여기에 ‘듣거늘’로 번역한 헬라어 동사가 오늘 본문 1절에 게네사렛 호수로 몰려와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그 듣는다는 단어 ‘아쿠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신앙인이 기적을 맛보고 은혜를 체험할 수는 기초 체력이자 기본기입니다. 로마서 10:16〜17절은 성도가 마음에 새기고 복기하고 또 복기해야 하는 금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에서 이 구절을 대단히 감동적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나님, 누가 관심을 보입니까? 이 말씀에 귀 기울이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귀 기울여 들을 것이 있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필수적 선행 조건은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이 척도로 들어서는 다른 방법은 없으며 왕도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든 토저가 선포한 메시지는 무겁지만, 성도라면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잠언입니다. “성경은 한 번 재미있게 읽고는 다음번에 읽을 때까지 처박아 두는 문학작품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예수님과 대면시킨다.” (아이든 토저, 『말씀이 힘이다』, 규장, 154쪽)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아내가 작년 말부터 소그룹 모임을 가지며 소그룹 지체 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닫힌 교우에게 다시 한번 힘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중간중간 내게 소그룹을 인도하면서 넘어야 할 담을 이야기하며 나누었고 중보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결과를 내자, 아내가 나름 의기소침하고 두번 째 사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기에 제게 이번 사역을 마지막으로 사역을 접으라고 권했고 아내는 그렇게 순종하기로 하고 종강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를 섬기며 목회하는 동안,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말 그대로 현장 실습에서만 가능한 목회적 내용을 지난 35년 동안 배웠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조각되고, 모난 부분은 쳐내며, 불완전한 자아가 성실한 자아로 변화되고 느리기는 하지만 점진적으로 하나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유일한 통로는 그가(그녀가) 예배자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신앙 성장을 돕는 곁가지입니다. 상담, 심방, 중보기도, 구제, 돌봄, 성경 공부, 성경 필사, 성도의 교제, 찬양, 은사 운동 등등의 수없이 많은 교회 사역은 성도가 성도 되게 하는 소프트웨어이지 하드웨어가 아닙니다. 성도가 지니고 있어야 하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중요한 영적 기본기는 예배를 통하여 말씀으로 늘 오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성도의 성장은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또 있을 수도 없는 허상입니다. 우리 교우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예배에 나와 예배자로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세인 예배 공동체에 가득 차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수없이 합니다. 이 예배의 감격이 무르익는 가장 클라이맥스는 주의 종을 통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나는 세인 교회 지체로 선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 교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운행하심은 예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세인 교우들이 명실공히 새겨야 하는 말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누가복음 5:1-11절을 본문으로 앞으로 수요 예배 시간에 몇 주에 걸쳐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영적 기본기를 나누며 공유할 것입니다. 아이든 토저의 사자후를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성경에 대해 아는 것과 성경에 의해 변화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다시 말해 단지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과 성경을 하여금 우리의 삶과 생각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위의 책, 154쪽) 단언하여 선포합니다. 전자는 성경 공부를 통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후자는 예배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일어나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는 신앙인의 기본기를 튼튼하게 해주는 시금석이자 지침입니다. 이 은혜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이로 인해 우리 세인 지체들이 전혀 요동하지 않은 신앙의 기본기를 구축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그날까지 끝까지 승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주 임재 안에서 내 모든것 나의 생명까지 다 주님 앞에 드립니다 주 임재 안에서 이제 내 영혼 자유해 내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예배하리 어린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어린양 찬양하리 내가 주의 임재 안에서 기도 제목 1) 하나님, 우리 세인교회 강단에서 중단되지 않은 말씀의 샘이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2) 하나님, 흘러넘치는 주의 말씀의 샘을 먹는 일에 소홀하지 않게 하옵소서. 3) 하나님, 우리 교우들에게 말씀 경청의 거룩한 욕심이 넘쳐나게 하옵서서. 4)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영과 육이 치료되는 기적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5)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세인 교회에는 없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