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3일 목요일 성서 일과 묵상 기다리는 신앙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27편, 창세기 13:1-18, 빌립보서 3:2-12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27: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마중물 (말씀 묵상) 야훼를 기다려라. 강하게 담대하게 야훼를 기다려라. 시인의 의도를 100% 알지는 못하겠지만, 짐작은 간다. 야훼를 기다린다는 사실은 지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로도 대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찾아도 나타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절박하게 외쳐도 묵묵부답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나는 목사로 살아온 평생이었기에 정서적으로 시인의 토로가 무엇인지를 짐작한다. 그런 하나님을 왜 믿지? 참 많은 이들이 내게 던진 질문이자, 도발이다. 그렇다. 그런 하나님을 도대체 왜 믿는 거지? 궤변 같고, 우답(愚答)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열광한다. 왜냐하면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경홀히 여김을 받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식언하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말이 안 되는 일까지 전능하시다는 이유로 반응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식에 맞는다는 평가를 내리시기까지 침묵하신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간구하기 전에 먼저 성찰하는 게 있다. 이 간구가 내 식의 관철을 바라기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도 기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드리는 기도인가에 천착한다. 나는 목양의 여정 중에 하나님의 식에 합당한 것을 소망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목사가 흔히 쓰는 레퍼토리라고 폄훼하는 자까지 내가 책임지고 반응할 이유는 없기에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지만, 부연하자면 나는 언제는 무언가를 주군께 요구할 때, 대전제로 성찰하는 건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를 묻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급한 시대에 주시는 오늘 성서 일과는 시인의 토로만이 아니라, 바로 내 토로이기도 하다. 두레박 (질문)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닦달하는 사람은 아닌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야훼 하나님, 하나님을 진득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조급해 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깊은 영성으로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더불어 하나님의 식에 합당한 기도자가 되도록 분별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사순절 아홉 번째 날입니다. 해빙기에 현장에서 사역하는 이들이 사고당하지 않도록 저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