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리핀 마닐라 미션 성결 센터 이사로 수해 동안 섬겼던 적이 있었다. 루존 시티 필드에 있는 슬럼가에 지교회도 세워 지원하며 섬겼다. 당시 지교회를 개척하고 창립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섬기던 교회 선교위원회 소속 위원들과 필리핀 현장에 방문하여 지교회 건축 봉헌 예배를 인도하고, 지교회를 비롯하여 산하 이사가 섬기는 교회가 건축한 교회들을 관리하는 미션 센터에 방문하여 파송된 선교사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마닐라 미션 센터는 명실공히 지교회를 관리 감독(supervise)하는 본부였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지교회 봉헌 예배에 함께 동행했던 당시 섬기던 교회의 지체 한 명이 한국에 돌아와서 툴툴대며 씩씩거렸다. 선교사가 거주하는 센터가 안전한 곳(Security Area)에 위치해 있고,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툴툴 댐의 이유였다. 선교사역자가 고생하는 게 마땅한데 너무 안락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당시 센터 건물이 컸던 이유는 마닐라 미션 센터에서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연수생들의 숙소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외형으로 보이는 성결 센터의 모양새가 그 지체에게는 분에 넘쳐 보인 셈이다. 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해는 했지만, 그 툴툴댐이 지속되어 교회에 별로 유익이 되지 않아 날을 잡아 그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 가지 여백을 남겨놓고 기도하십시다. 제 삼국에 파송된 선교사님들은 그곳에 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하는 종들입니다. 문화, 언어, 기후, 습관 등등 모든 것을 버리고 현장에 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가족과 함께 선교지에 나간 것만으로도 중보해 주어야 할 이유입니다.” 어제, 미얀마에 파송한 세인교회 협력 선교사가 잠시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어 귀국했다가 제천을 방문했다. 선교사는 새파랗게 젊은 전도사로 막 사역을 시작한 새내기였는데 직전 교회에 청빙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며 사역을 배웠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선교사가 바쁜 일정일 텐데도 불구하고 부족한 사람에게 인사차 방문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살인적인 더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치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과 반군 세력과의 내전 등등으로 힘들기 짝이 없는 미얀마 사역자로 서서 작금 언어를 배우고, 실버 사역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미얀마를 품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선교사를 만나면서 마음이 애잔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 나를 사랑하신다”고 역설했던 어거스틴의 말처럼 젊은 종에게 그 사랑에 파묻히게 하셔서 미얀마라는 낯선 땅을 품고 전 인생을 걸고 있는 선교사를 만나면서 오래전, 툴툴대던 이에게 말했던 내 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았다. 미얀마라는 이방의 나라로 파송되어 거기에 있는 영혼들을 품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전 인생의 삶을 드리고 있는 김동욱 선교사가 건강하기를 화살기도 한다. 더불어 딸 하윤이와 사모님에게 주께서 주시는 날마다의 푸르른 은총이 가득하기를 중보해 본다. 힌두교를 믿는 친구들이 위대한 선교사인 레슬리 뉴비긴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레슬리 뉴비긴,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소망』, 124-125) “왜 굳이 예수만 고집하는가? 예수가 수많은 위인 중에 더 위대한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를 부르셨고, 때문에 나는 증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님들에게 존경한다는 박수를 올려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