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4년 6월 2일 (첫 번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6-17 15:29
작성자 Level 10

2024년 6월 2일 (첫 번째 주) 지역 셀 사역

 

1. 얼음깨기 (WELCOME)

 

상반기 감사할 내용 말해보기

 

 

2. 찬양 (WORSHIP)

●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 복음성가: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3. 말씀 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 제목 : 기본기를 찾습니다.(3) 

 

1) 고기를 잡기 전과 후에 베드로가 느꼈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① 고기를 잡기 전

② 고기를 잡은 후

2) 베드로, 사르밧 과부, 가나 혼인 잔치의 하인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은?

⓵ 베드로

⓶ 사르밧 과부

⓷ 가나 혼인 잔치의 하인들

3) 적용하기


⓵ 나에게 예수님은 에피스파테스인가? 큐리오스인가?

⓶ 나는 살아계신 말씀을 레마로 받고 있는가?

⓷ 기도 제목을 합심하여 기도하자.

4) 사역하기

 셀 예배 순서 

 

※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적용하기

※ 기도제목 중보하기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 교제하기 

 

주간 사역하기

 

1. 5가지 합심기도 하기

⓵ 주님, 이해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주의 말씀이라면 조건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⓶ 주님, 내 심령의 깊은 곳을 찾아 말씀의 그물을 던지게 하옵소서.

⓷ 주님, 계산하지 않는 믿음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⓸ 주님, 이해타산으로 말씀을 분석하고 재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⓹ 예배보다 순종이 낫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옵소서.

2. 셀에서 섬기는 태신자를 전반기에는 결실 맺도록 최선을 다하기

3. 셀 별 팀 사역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기

4. 불침번 기도 사역에 방관하지 않기

 

● 설교요약 (SUMMARY)

서론) 예수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신앙의 기본기는 말씀을 잘 듣는 태도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성실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자를 사용하시고 쓰시지 결코 얍삽한 자를 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성도가 지녀야 할 영적 기본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성도가 지녀야 할 영적 기본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3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께서 무리들을 향해 설교하는 단(壇)이 베드로의 배가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베드로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많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유독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살핀 대로 아마도 밤새도록 고기 잡는 낚시를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본업에 충실했던 베드로가 주님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기에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이윽고 베드로에게 명하셨습니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라고.

  3절에 ‘청하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로타이’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미가 ‘심문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심문한다는 것은 강제성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배를 띄울 것을 강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3절의 문자적인 기록의 정황을 볼 때, 밤새도록 수고한 뒤에 육지로 올라와 그물을 씻는 고된 일을 했기에 육체적으로 곤비하고 힘들기 짝이 없었던 베드로는 자기의 배에 허락도 없이 올라탄 뒤에 이제는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라고 말하는 예수가 대단히 무례한 자라고 생각할 충분한 여지가 있는 정황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으로 접근할 때, 베드로는 예수의 무례한 요구에 대해 묵살하고 당장 내 배에서 내리라고 압박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문맥을 적용하다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랐다는 정황이 포착됩니다.

다시 3-4절 전반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  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가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선상 설교를 진행하셨습니다.  누가는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가신 주님께서 그 배 위에서 설교를 다 하시고 마쳤음을 보고합니다. 즉 베드로가  대단히 무례한 예수의 명령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의 보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4절 후반절을 보겠습니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라는 명령도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불쾌하고 무례한 요구였는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한 주님의 하명은 베드로 입장에서 기가 찰 노릇의 명령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내린 명령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⓵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은 민물고기를 잡을 확률에서 떨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⓶ 수심이 깊은 곳은 고기를 많이 놀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⓷ 명령하는 이의 하명이 어업에 대한 전문성을 전제하지 않은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요소를 전제할 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린 명령은 얼토당토아니한 말입니다. 통상적 관례라면 당연히 무시하는 것이 맞습니다. 5절 본문의 기록을 참고한다면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리 영적이지 않았던 평범한 인식을 하고 있을 때였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가 주님에 대해 인식한 모습은 ‘에피스타테스’ 즉 ‘선생님’이었습니다. 통상 ‘에피스타테스’는 ‘인생의 스승’혹은 ‘지혜나 지식에 있어서 앞서간 자’ 등등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갖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인식은  자기보다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자’정도의 인식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갖고 있는 지식은 유대 종교적인 지식층의 그 어떤 누구 즉 ‘랍비’ 정도인 것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업에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수가 있습니다.

  저는 서재에 손님이 찾아오면 직접 커피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대접합니다. 가지고 있는 수동형 기계의 표준   칼날의 규격을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에버리지 3 정도에 맞추어 콩을 갑니다. 더불어 물 온도도 100도를 끓이지만 다만 커피가 식는 것을 막기 위해 커피 머그잔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정도를 돌려 따뜻하게 하고,   드립의 시간도 가능한 한 가장 천천히 내려 커피 풍미가 가장 오래가도록 정성을 다해 내려 대접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마추어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이지만 청주에서 목회하고 있는 동기 목사를 방문하면 숨죽인 듯 가만히 있습니다. 바리스타인 친구가 내려 주는 핸드 드립 커피의 맛과는 비교 불가입니다. 핸드 드립 기계의 차이, 세미한 물 온도, 더불어 드립의 분초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친구의 핸드메이드 커피는 일품입니다.

  그 친구 앞에서 커피 이야기도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해주는 대로 먹는 게 가장 행복합니다. 전문가가 왜   전문가입니까? 그 분야에 대하여 남이 갖고 있지 못한 지식, 스킬 등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만에 하나 평범한 상대에게 하셨다면 백번을 양보해서 그 명령대로 따를 수 있겠지만, 지금 예수님이 지명하여 명령을 내린 객체가 베드로라는 점 때문에 명령 이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명령한다면 이 분야만큼은 그 반대이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본문 저자는 대단히 흥미로운 보고를 내놓습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렇게 하니’ 베드로가 상식적이지 않은 예수의 명령을 그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왜 말도 안 되는 비전문가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육체의 곤비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을 그대로 행했을까요? 본문에 주목할 구절이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명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왜 그대로 순종했을까요? 이런 소회를 가져보았습니다.

  나보다 지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뛰어난 존재인 ‘에피스파테스’ 즉 ‘선생’으로 인식한 예수의 말씀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적 지식을 뒤로 하고 당신의 말대로 해보겠다는 베드로의 인식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명령대로 그대로 순종했을 때의 상황은 베드로에게 예수는‘에피스타테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깊은 곳으로 배를 끌고 가서 그물을 던진 행위는 실로 엄청난 순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교우들과 수요 예배를 통해 나눌 귀한 교훈을 찾아냈습니다.

※하물며 주군이 하명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가 어찌 예수 그리스도인일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베드로가 에피스타테스의 가치로 예수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  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고 누가가 보고합니다. 그러자 이 놀라운 기적을 맛본 베드로가 육지로 다시 올라와 제일 먼저 에피스타테스인 예수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8절의 보고를 들어보십시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의 고백이 ‘주’ (큐리오스)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가 주께 고백했던 단어는 대단히 위험한 단어입니다.

4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인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선포하기 위해 만든 복음서입니다.

복음서 독자가 로마인들이라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마가복음 1:1절은 무시무시한 발언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시기는 주후 1세기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에 오신 주님을 마가복음 기자는 ‘크리스투스’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호칭을 붙여 소개합니다. 주후 1세기 이 단어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쓰이던 고유 명사와도 같은 단어입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트스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만에 하나, 이 단어를 다른 이에게 붙이면 이 단어를  붙인 사람, 붙여진 사람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반역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죽음을   무릅쓰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결국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오직 한 분이신 왕이며 구주라고 선언한 셈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선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잡고 육지로 올라와 고백한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은 구원자 예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소회가 틀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에피스타테스’인 예수의 말도 순종하여 엄청난 기적을 맛보았는데‘큐리오스’ 즉 ‘구원자’ 이신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를 주께서 어찌 강복하지 않으시겠냐는 소회 말입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되새김질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입니다. 

  ‘레마’는 취사선택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레마’는 모두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영적 시금석이자, 가장 위대한 가치입니다. 여러 차례 여타 다른 설교를 통해 교우들에게 전한 것처럼 베드로가 고백했던 ‘말씀에 의지하여’ 라는 이 구절에 대해서 학자들이 해석한 부연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해석은 바로 렌스키가 주석한 이 해석입니다.

“‘말씀에 의지한다는 것’은 under the control of the Word(말씀의 통제를 받으며)의 성숙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지난 주간, 새벽에 보았던 묵상 일과인 열왕기상 17:15-16절을 복기하십시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사르밧 과부에게서 배우는 명징한 신앙은 ‘말대로 하였더니’ 의 신앙입니다. 지난 주일 성경 통독 텍스트였던 가나 혼인 잔치에 보고된 감동적인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2:8절입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성경적인 순종은 6개의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을 성경적 순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적 순종이라는 것은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성경적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 순종이 말씀에 의지하는 순종이며, 말씀의 통제를 받는 순종입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C.S.루이스는 어린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라고 알려줍니다.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해 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을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에게는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C.S.루이스,『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2023, 60쪽)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순종이라는 신앙의 기본기를 지니는 것은 마땅히 지나쳐야 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철저해야 할 신앙의 기본기를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레마로 주신 말씀을 머리로 계산하지 마십시오.

이해타산의 지석을 삼지 마십시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기본기 중의 기본기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