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겼습니다. 몸무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불어나고, 혈압도 정상이 아니고, 중성 지방간 수치도 높게 나타나고 등등의 성인병 징후가 농후했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4년 전 탁구 라켓을 잡았습니다. 아내가 헬스를 해보라고 회원권을 구입해 주었는데 한 달 두 번 정도를 나가면 많아 나가는 것이었기에 포기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헬스는 재미가 없는 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붙들었던 운동이 탁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4년 전에 시작한 탁구를 이후 꾸준히 지속했습니다. 이후 이모저모의 생채적인 리듬들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져서 근래에도 일과를 마치고 나면 일주일에 3-4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반드시 구장에 나가 땀을 흘립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관절에 무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운동을 하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 승부욕입니다. 더군다나 구기 종목 운동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4년 동안 운동을 한 결과의 성적표는 제천 3부입니다. 탁구에 대하여 문외한인 분들은 3부라는 레벨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모르실 것 같아 부연해 설명을 드린다면 초보를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고, 중급에서 고급으로 막 오르려는 수준 정도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구장 내에서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리그전을 벌일 때가 있는데 혹 이런 시합이 있으면 아주 가끔은 종합 우승도 해보았던 그런 정도가 3부 실력입니다. 남자라면 거의 다 그렇겠지만 시합을 하면 이기려고 하는 욕심이 타오릅니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날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승부욕이 타오를 때는 저보다 상위 부수의 회원들과 경기를 할 때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구장에 1부, 2부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 회원들과 경기를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그 분들이 저에 비해 기량이 탁월하기에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과 경기를 하면 제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합니다. 해서 경기의 결과는 6:4 정도로 패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에 지고 기분 좋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패배를 당하고 나면 분해서 항상 나름 복기를 합니다. 다음 경기를 할 때는 이겨보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1부에 있는 회원과 경기를 하고 그에게 패배를 한 날이었습니다. 그 회원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과 저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데 그 크지 않은 것이 실력입니다. 저와 다른 목사님의 차이는 기량이 아니라 세밀함의 차이입니다.” 그가 이렇게 연이어 말했습니다. “포핸드나 백핸드 랠리를 할 때 저와 목사님은 정말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기에 들어서면 목사님의 스윙들은 저보다 큽니다. 크다는 말은 세밀함에 있어서 실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말입니다. 지금보다 한 계단 수준을 올리시려면 스윙 폭을 줄여서 세밀해 져야 합니다.” 저는 저보다 상위에 있는 회원의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세밀함은 전문성입니다.” 듣고 보니 너무 소중한 말이었습니다. 전문성이 없이 어떻게 실력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목사에게 있어서 전문성은 무엇일까? 해박한 지식, 찬양을 뛰어나게 부르는 음감, 뛰어난 카리스마, 강남에 모 교회 목사처럼 너무 잘 생긴 외모,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뛰어난 달변의 설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런 것에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을 쓰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자꾸만 집중하게 되는 목사가 가져야 할 세밀함은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사랑하는 집중력을 잃지 않을 때 목사 3부에서, 2부로, 2부에서 1부로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탁구 실력은 3부로 영원히 머물러도 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기와 바라보기는 1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사순절 다섯 번째 주간 예비일 새벽에 밀려오는 은혜로 저를 휘감고 있습니다. 글을 이렇게 끝내려는 데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사순절인데 조금은 더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탁구 실력도 2부로 올라가고 싶네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