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토요일) 성서일과 주님이 주님 하셨다.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31:9-16, 애가 3:55-66, 마가복음 10:32-34 꽃물 (말씀 새기기) 마가복음 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마중물 (말씀 묵상)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고지는 제제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 자명하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를 따라다녔던 제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멘붕이었으리라. 한 번도 아닌 세 번에 걸친 수난고지는 더 더욱 충격의 강도를 강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후속 기사가 야고보와 요한이 구했던 것이 좌청룡우백호이지 않았겠나 싶다. 제자들이 경험해야 했던 충격에 집중하다보면 그럴 것 같다는 심산이 든다. 하지만 세 번에 걸쳐 자신의 수난고지와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토로해야 했을 주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더 더욱 마음이 에인다.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이름 예수, 그 분이 지금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할 것을 제자들에게 고지하는 마음은 대단히 참담했으리라. 승리가 아닌 패배로 여겨지는 십자가 죽음이니 아니 그러겠는가! 하지만 주님은 이 참담한 정황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승리가 있음을 알고 계셨겠지만 전하는 시점은 대단히 아쉬웠을 것이 분명하다. 주님의 자존심을 버려야 했기에. 빌립보서 2:6-8절 말씀에 대한 실천적 삶이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나는 언제나 이 구절과 마주칠 때마다 주님의 주님 되심을 높여 찬양한다, 주님 외의 감히 그 누가 이런 엄청난 사랑의 절정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이 주님이심을 역설하신 주님의 주님 버리심은 애절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난주일이 시작되는 예비일이다. 그래서 주님께 고백한다. 주님, 주님 되심을 찬양하고 사랑합니다. 두레박 (질문) 나는 얼마나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있을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을 높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주님의 주님 되심을 더 많이 간증하고 전하는 나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비물 (말씀의 실천) 주님이 주신 사랑의 흔적들을 성경과 삶의 현장을 통해 더 성숙하게 찾아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성육신의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 고난주간만이라도 이 땅에 증오와 폭력과 살인이 멈춰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