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3.10.13 셀 사역2024-04-22 11:59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차별성이 있는 버릇이나 습관 때문에 경험한 에피소드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복음성가)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찬송가 357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8:28-32
● 제목 : 흔적
1) 기드온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행한 일들을 열거해 보자.
● 30-31절을 참고  

2) ‘믿음이란 점이 아니라 선이다.’라는 촌철살인을 선한사마리아 사람과 기드온에게 적용하여 말해보자.
1) 선한 사마리아 사람 (긍정)
2) 기드온 (부정)  

3) 기드온이 남긴 불명예의 흔적과 비교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께 남겨야 하는 흔적들은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가?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한 글을 중심으로 말해보자)
1) 갈라디아서 6:14
2) 갈라디아서 6:17
3)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가 하나님께 남기고 싶은 흔적은?  

 
사역하기 (WORK)
1. 교회 중보기도
1) 셀에 소속되어 있는 지체들이 사역하고 있는 조별 가을 열린 모임의 효과적 승리와 결실을 위하여
2) 가을 셀 대 심방을 위하여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한 중보 사역
4) 양육 반과 리더 반의 승리를 위하여
5) 담임목사의 목양 사역을 위하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3년 10월 1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8:28-32 / 제목 : 흔적

오늘 본문은 기드온의 생애의 마지막 보고서입니다. 지난 19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추적하고 얻은 결론은 결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는 수많은 결함이 있는 자였는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그를 사용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것입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삶과 연관하여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5: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입니다.
기드온의 생애의 마지막 보고인 오늘 본문의 주제는 기드온의 말년의 행적과 죽음입니다. 그의 말년의 흔적을 사사기 기자는 28-29절에서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말씀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로 이끈 뒤 40년 동안의 평화 기간 동안 그가 원하는 것을 얻고 삽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문 29절에서 사사기 기자가 기드온의 말년의 이름을 기드온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여룹바알’즉‘바알과 대면하여 싸웠다.’라는 뜻의 별명으로 호칭을 한 것은 그가 분명 바알의 단을 헐고 바알 숭배의 근원을 허물었던‘여룹바알’이었지만 그의 말년에 오브라에 금 에봇을 설치해 놓고 본인의 치솟은 권세를 경배하게 한 또 다른 우상 숭배의 틀을 마련했던 그가 정녕‘바알의 단을 허물었던 여룹바알’으로서 마땅한 자인가를 고발하는 성격이 짙기 때문입니다. ‘여룹바알’이었던 기드온인데 그는 말년에 도리어 바알과의 쟁투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오브라에서 생의 말년을 보내면서 그가 장담했던 왕이 되지 않겠다던 선언과는 정반대로 철저한 왕의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던 것이 오늘 본문 여기저기에서 발견됩니다. 그 증거는 이어지는 30-31절“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말씀합니다. 그는 고향에서 살면서 많은 아내를 두었고 그 아내들 사이에서 70명의 아들을 두었음을 알려줍니다. 아들이 70명이라면 여성의 이름을 배제한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의 자식들의 수는 엄청난 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마 근동연구소 교수인 알베르토 소긴은 자신의 주석서 판관기에서 70명이라는 숫자를 수로 해석하지 않고 많다는 것의 대략적인 수치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이런 가계도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직분은 왕 뿐입니다. 그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철저히 왕의 행세를 하는 권력자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뿐 아니라 기드온은 고향 오브라가 아닌 세겜에 첩을 두었습니다. '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피레게쉬’는 문자적으로 정부(情婦)입니다. 다시 말해 남자들의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여자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기드온은 본인의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당시 가나안 땅에 속하는 이방의 여인을 첩으로 두었습니다. 이 또한 왕의 권력을 갖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행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절대로 가나안 사람들과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말씀합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단지 본인의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또 한 가지의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기드온의 쓴 흔적은 첩과의 관계를 통해 아들을 낳았던 기드온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눈과 여론에서 조금은 느슨한 세겜 지역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드온의 야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라는 아비멜렉이었습니다. 첩이었던 세겜 여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입니다. 처음서부터 끝까지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을 실망시킨 기드온의 삶의 흔적들입니다.
지금까지의 본문 해석을 중심으로 받는 중요한 영적인 도전은 * 하나님께 내가 남기는 흔적이 무엇인가? 를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명한 주석학자 햄린은 기드온의 삶을 “심각한 결함을 가진 사사”로 평가했습니다. 주석가 햄린이 기드온을 평가한 단 한 줄의 평가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혜는 우리들이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생을 마감하는가?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흔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삶을 살지 못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더 야박한 평가를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는데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고 또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평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받을 평가입니다. 이 평가는 실패해서는 결코 안 되는 평가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삶의 흔적들이 기드온과 같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는 아주 주목할 만한 선배인 다윗의 삶을 비시디아 안디옥 지방에 도착하여 전도설교를 하면서 선포한 바울의 어록을 잊지 않고 있다가 사도행전 13:36절“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께 드릴 흔적은 13:36절의 후반절이 아니라 전반절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이 되어야 합니다.
이재철 목사는 자신이 쓴‘사도행전 속으로 8’에서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는 가슴에 남는 촌철살인을 남겼습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믿음의 여정은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로 연장된다는 교훈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해석하면 본문의 기드온은 적어도 믿음의 후배들인 우리들에게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불신앙의 길을 가르쳐 준 역설의 선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기사에서 그는 제사장도 회피하고 레위인도 회피한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이 선한 사람을 성경을 통해서 묵상할 때 항상 놓치지 않고 받는 교훈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과 교훈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들이 더 소중하게 깨달아야 하는 도전과 교훈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삶의 흔적입니다. 그가 여리고에서 우연히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그랬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의 점마다 불쌍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인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난 거의 죽게 된 자를 그가 해왔던 대로 돌보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점에서의 삶이 선으로의 삶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훗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고하여야할 내용은 점이 이어진 선의 삶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가? 를 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날 보고해야 할 일들이 단지 한 순간의 보고가 아니라 나의 삶의 흔적들 일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승리의 흔적들은 내가 노력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내가 얼마나 성령님과 동행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붙들려 있으려고 영적으로 긴장하는가? 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훈련과 삶은 반드시 승리의 흔적으로 나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주시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는 글에서 갈라디아서 6:14, 17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선포하며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기드온과 같이 불명예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한 올 한 올의 흔적들을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 앞에 승리의 흔적을 남기는 세인의 지체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