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운동 경기이든 혹 학창 시절의 시험이든 관계없이 내가 누군가와 경쟁에서 이겼던 행복했던 순간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마귀들과 싸울지라 (찬송가 348장) ● 별 빛 속을 걸으며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7:23-25 ● 제목 : 이기고도 지지 말자. 1)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전했던 포괄적인 증거들을 본문 전체를 기초하여 말해보자. 2) 그러나 기드온이 이겼지만 진 싸움이라는 설교의 메시지는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 기드온이 하나님께 행한 불순종을 중심으로 나누어보자. |
3) 만에 하나 내 삶에서 이기고도 진 영적인 싸움이 있는가? 있다면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1) 이기고도 진 영적 싸움 말해보기 2)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경험하지 않기 위한 결단을 설교를 통해 되짚어 보자. 3) 주일 설교를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교훈 나누기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잃은 양 찾기 8주차 사역이 셀 별로 철저히 진행되어 예비 된 영혼이 회복되도록 8주차 사역 내용: 잃은 양 셀로 초청하여 예배하고 교제하기, 다음 주 대 날개 예배 초청하기 2) 가을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기 (두 날개 양육 개학, 5차 특새, 가을 열린 모임, 5기 크로스웨이)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4) 제 3차 전인적 치유 수양회, 제 2차 리더 수양회, 리더반 개강을 위하여 5) 담임목사 가정의 재충전을 위하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9월 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7:23-25 / 제목 : 이기고도 지지 말자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라는 의미의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는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자기의 야망과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번 결심한 악행을 끝까지 밀고 나간 성경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초지일관을 행한 이세벨의 경우와는 조금은 차원이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실망시킨 초지일관의 불신앙을 자행한 사사 기드온을 만나게 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와 승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다가 적진에 부하 부라와 함께 들어가 정탐을 하는 중 미디안 군사들의 대화를 듣고 확신을 갖게 되어 미디안과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기드온은 세 패로 나뉜 자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적진으로 침투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군사들로 연합한 적들은 서로의 칼에 휘두르며 자중지란이 일어나 자멸되었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간섭과 싸움으로 인한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미디안 군사들은 저들이 가나안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유린하고 괴롭히며 항상 들어왔던 길목인 요단강 근처로 추정되는 벧 싯다와 답바 근처의 아벨므홀라 쪽으로 퇴각을 하게 됩니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와 미디안의 135,000명의 1:450 싸움은 기드온의 전략이 우세하고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무기가 되셔서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끄신 결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말씀합니다. 기드온이 이끌고 있는 300명 용사들의 완벽한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23절은 아주 이상한 내용이 하나 보고되고 있습니다. 퇴각하는 미디안의 잔병들의 퇴각로의 동선이 이스르엘 평야에서 요단강 지역으로 정해졌습니다. 바로 이 때 퇴각하는 미디안의 잔병들을 멸절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중 이스르엘 평야를 중심으로 서쪽 지역에 살고 있었던 아셀 지파와 평야 북쪽에 거주하던 납달리 지파, 그리고 남쪽 지역에 거주하던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이 기드온의 부름을 받아 퇴각로에 진을 치고 있다가 그곳으로 도망하던 미디안의 잔병들을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이번에는 기드온이 에브라임을 부릅니다. 본문 24절은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말씀합니다. 기드온은 이번에는 에브라임 지파를 전령을 보내 전쟁으로 불러들입니다. 에브라임이 한 것은 적들의 퇴각로인 요단강의 수로를 점령하여 미디안의 퇴각로를 차단한 것입니다. 요단 나루턱을 점령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얻은 전과는 본문 25절에서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보고합니다. 퇴각하는 미디안 잔병들의 장군이었던 오렙과 스엡을 에브라임 지파의 군사들이 생포하여 그들의 용맹함을 무력화시키고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들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기드온에게 가져왔습니다. 이상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은 기드온과 그의 부하들에게 도무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는 교훈으로 결론 낼 수 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리더인 기드온이 하나님을 향하여 저지른 초지일관의 불신앙에 대한 대목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기드온의 일련의 행태가 맘에 들지는 않으셨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하신 약속대로 미디안의 싸움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퇴각하는 잔병 처리에서 붉어졌습니다. 미디안의 잔병들은 퇴각로 이스르엘 평지를 거쳐 요단강 수로를 넘어 미디안으로 도망하는 동선을 정했습니다. 미디안 잔병들의 퇴각로는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차단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기드온이 행한 하나님께 대한 또 다른 불순종을 여지없이 기록했습니다. 본문 23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말씀합니다.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 지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추격을 위한 기드온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의 불신앙의 행보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본문 24절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말씀합니다. 기드온은 이번에는 자신의 출신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일전에 다 도망했던 그들을 다시 불러 그들에게 패잔병 소탕을 맡긴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은 기드온을 실망시키지 않고 부름에 합당한 전과를 세워 주었습니다. 결과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거두었지만 기드온의 승리는 도리어 영적인 면에서 볼 때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분명히 승리한 패배였고 기드온은 이겼지만 영적으로 참화를 겪은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이 승리한 패배라는 이유는 본문 22절 이후부터 하나님은 종적을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300명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이 이기신 이김의 싸움을 자신의 전과로 돌려놓는 불신앙을 저질렀습니다. 집으로 돌려보낸 31,700명에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인위적인 방법으로 기드온은 불러들인 것입니다. 구약학자인 KLINE, BLOCK은 기드온의 이 불신앙을 자신들의 주석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 바로 다시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의존함으로 보여주었다.” 지적하며 갈파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22절 이하부터는 온통 기드온의 이야기만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이겼지만 진 전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한 주간 받아야 할 영적인 도전은 *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나의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라는 교훈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열 명의 한센병자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들의 질병을 치유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한센병 환자 10명에게 말씀으로 명령하셨습니다.(누가복음 17:14) 한센병 환자 10명은 믿음을 갖고 가다가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나를 고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제사장에게 나아갔기에 그들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누가복음 17:15-19절은 참 아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마리아 출신의 한센병을 고침 받은 형제는 그의 평생을 은혜 아래 살았습니다. 19절에 기록된‘구원하였다.’라는 주님의 선포를 기록한 헬라어‘쎄쏘켄’의 원어 동사인‘쏘조’는 영적인 구원을 의미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출신의 한센병 환자에게는 육체적인 질병에서의 치유뿐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인 영혼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이기고 영적으로도 승리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유대인 출신의 9명의 다른 고침 받은 환자들 중 상당수는 은혜를 떠날 수도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유한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육체적인 치료만을 경험했지 영적인 치유함과는 거리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는 이겼을 수 있으나 영적으로 패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승리는 곧 패배라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초지일관의 삶을 살되 부정적인 초지일관의 신앙을 견지했던 기드온처럼은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고도 지는 삶을 살았던 기드온과 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이기는 삶을 지속하는 세인지체들이 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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