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지수일 목사에게
친구야, 지난 주 월요일에 너를 보려 서울에 올라가는 발걸음이 매우 무겁고 힘들었다. 동기회 톡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지난 20년 동안, 기적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육체의 나약함을 꿋꿋하게 버티며 이겨준 친구였기에 설마 했지만 그래도 SNS 로 확인한 너의 병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또한 설상가상으로 올라가는 날이 고비라는 친구의 호전을 간절히 기도하는 또 다른 친구의 그 한 마디 때문에 맘 졸이며 병원에 도착했다. 중환자실 문 앞에서 초조하게 남편 면회를 기다리고 있는 창백한 선희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이 40도 근처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 혈압도, 혈액 내 산소수치가 모두가 위험스러운 상태에다가 맥박수가 130까지 올라갔다는 안타까운 소식, 그리고 절망하게 만들었던 말 한 마디는 초기 패혈증 증세를 보이기까지 한다는 말들이 내내 기도하고 있었지만 많이 염려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이지만 난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혼돈스러웠다. 해서 동기들의 전언을 들은 뒤, 수없이 많은 화살기도를 드렸고, 주군께 친구의 소생을 간절히 빌었던 것 같다. 동기회에 늦게 참석한 탓에 친구와의 교제도 신학도 시절이 아닌 목회현장에서부터였기에 서먹서먹함은 있었지만 항상 육체의 절망스러운 나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보란 듯이 이겨주고 있는 친구였기에 언제나 자랑스럽고 또 박수쳐 주고 싶었다. 제천세인교회의 예배당을 건축하여 입당한 뒤에 그래서 친구를 제일 먼저 강사로 불러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것도 바로 그런 맥이었단다. 그리고 그때 친구가 전해 준 소박한 말씀의 은혜는 건축에 지쳐있었던 나에게 소낙비 같은 봇물의 은혜였다. 수일아. 생사의 고비를 건너, 다시 회복해 주어서 너무나 고맙고 고맙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기까지 왜 왔어?’라고 의식을 회복하고 나에게 지청구해주는 말에 ‘넌 내가 아프면 제천에 안 올 거냐?’고 실없는 말로 대꾸했지만 그 지청구가 눈물겹게 감사했다. 정말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을까를 염려했던 나의 연약한 믿음을 퇴원이라는 선물로 박살내준 친구가 옆에서 다시 숨소리를 들려주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조금 더 건강해지면 선희씨하고 제천에 내려와라. 근사하게 모실게. 이스라엘 성지순례 함께 한지가 10년이 되었네. 이제는 또 기회가 되면 종교개혁 지역 탐방도 함께 해야지. 그러려면 더 건강해져야 하고.
이제 무시무시한 무더위와 폭염도 15일이 지나고 나면 계절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겠니? 오늘 학생들 수련회 장소인 마산에 응원 차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도로 길 위로 펼쳐지는 하늘에서 가을하늘을 보았다. 가을이 머지않은 것 같다. 더 푸르고 푸른 가을이 오면 싱그러운 노래 한 번 같이 부르며 난장하자. 친구가 살아주어 행복하다는 밀어를 던진다. 수일아, 너무 고맙다. 살아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