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온 한 노인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흉통(胸痛)의 아픔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가장 하기 싫은 말이 있습니다. 아프다는 말입니다. 해서 많이 숨깁니다.”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부모라면 자식들을 향해 갖는 공통의 말일 것입니다. 절친(切親)으로 지내는 목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단체 톡을 통해 들었습니다. 병명은 달팽이관의 불균형으로 인해 오는 어지럼증인데 때문에 119구조대의 신세를 지고 응급실에 도착한 뒤, 곧바로 입원했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소식을 받고 위로 전화를 했는데 그래도 친구의 목소리를 밝아 나름 안심했습니다. 전화 중에 친구 목사 왈, 주일 예배 인도가 제일 염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천생(天生) 목사일 수밖에 없는 친구의 말이 왠지 가을비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동기 목사들 톡에도 적지 않게 육체에 관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입원 소식, 수술 소식, 그리고 발병 소식 등등.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동기들의 나이가 손보지(?)않으면 안 되는 AS 기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도 어느 정도 사용하면 반드시 손을 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거의 60년을 달려온 인간의 육체야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뚱맞지만 그래도 많이 버텼다는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자위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말한 이유가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 막상 나이가 들면 그 발언이 그에게 유효한지는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객기를 한 번 부려보고 싶다는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야 인생의 법칙이니 회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는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는 조금은 철학적인 생각을.
“추하게 늙지 말자. 멋있게 늙자”
그래, 분명히 이렇게 나아가보자고 결심해 봅니다. 그래서 ‘나이 듦의 미학’이라는 말이 내 인생에 적용되게 해보자는 거룩한(?)을 생각을. 그런데 이 생각을 한 뒤, 곧바로 다가오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늙는 것이 추하지 않게 늙는 것일까? 어떻게 늙는 것이 멋있게 늙는 것일까?”
나이 듦의 미학을 내게 적용하는 것은 혹시 사치스러운 생각은 아닐까? 의 소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다가 장구치고 북치고를 다해 봅니다. 아마도 이 길은 또렷한 무언가의 실체로 정의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생각의 여백에 그런 나이 듦의 아름다움은 내가 써 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 피식 웃었습니다.
어금니 임플란트 시술을 수요일에 받았습니다. 아직도 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고 부위가 욱신거립니다. 나이가 들어서 회복이 느린가 싶어 또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써 가는 것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