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llabus’(수업 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저에게는 아주 못 된 친구가 있습니다. 이번에 그걸 알았습니다. 지역 교회에서 정말로 목회를 잘하면서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겸임해서 가르치는 친구입니다. 인성이나, 영성이나, 지성에 있어서 참 본받고 싶은 친구인데 금년 가을 학기에 본인이 지도하던 신대원 학생들의 강의를 저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지난 주간이 기한이었던 수업 계획서를 준비하여 제출하면서 친구가 아주 못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엄청난 부담감을 저에게 담부하도록 계획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경남지방에서 목회를 할 때 교단 산하 부산신학교에서 1년 6개월을 강의했습니다. 강의를 맡아달라고 교장으로 사역하시던 선배 목사님의 요청을 받고 제일 먼저 생각했던 테마는 목사로서 강의하는 자라는 선입관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영성이 아닌 지성이었습니다. 주님이 피 값을 주시고 사신 교회 안에서 사역해야 하며, 또한 주군께서 위탁하신 양들에게 적어도 푸르고 싱싱한 꼴은 아니더라도 상한 꼴을 먹이지 말아야 할 대상자들을 양육하는 신학 교육인데 그래도 소위 말하는 레벨-업이 된 공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나름 Syllabus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강의했던 빛바랜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 신학교 4학년들을 지도했는데 수강생들이 학기말에 신학교 4학년 기간 동안 밤을 새우며 assignment report를 작성하며 코피를 흘린 것은 처음이었다고 불만을 제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듣도 보도 못했던 book-review 쓰는 방법도 배우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단기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볼멘소리도 들어 보았습니다. 정규 신학대학도 아닌 신학교 학생들에게 되지도 않는 것을 요구했다는 적지 않은 핍박도 당했지만 그럼에도 아주 짧은 한 학기를 지낸 수강생들이 그래도 공부다운 공부를 했다는 술회를 들을 때 감사했던 추억이 이번에 수업계획서를 짜는 동안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M 3차 때로 기억됩니다. 논문 프레임을 어느 정도로 작성하여 지도교수에게 지도를 받을 때였는데 미국 밴더빌트에서 따끈따끈한 학위를 따서 막 귀국한 유영권 박사께서 막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상담학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의 곡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초임 교수의 빡셈이 학생들에게 여지없이 그리고 보란 듯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 내가 공부를 얼마나 어마무시하게 했는지를 시위하는 초임 교수의 독불장군식의 전횡(?)이었고, 둘째는 연세대학교 학위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물론 선배 교수들의 조언으로 인해 한 학기정도로 유 교수의 이 시위는 일단락되었지만 지금도 유 박사 행했던 당시 서슬 시퍼랬던 공포는 저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헌데 제가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이유는 전술했던 두 가지 이유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 박사는 저의 석사 논문의 심사 위원이었는데 그 분의 그 살 떨리는 압박으로 인해 조금은 더 알찬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는 진짜 은혜 때문에 그 분을 기억합니다. 학습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단 기간 약 1달 보름 동안 강의에 관련한 책들 20여권을 완독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이 정도 양의 책을 읽은 것은 저 또한 처음 겪는 일이라 머리에 쥐가 나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때는 늦었지만 못 된 친구를 원망했습니다. 한 학기 선생으로 서야 하는 목사가 갖고 있는 왠지 모를 부담감 때문에, 이 엄청난 부담감을 고스란히 떠넘긴 못된 친구에게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우정의 심리 때문에, 그러나 진짜로는 사역의 현장에서 지도자로 서야 할 수강생들에게 목회 리더십 이전에 목회 팔로워십을 함께 고민하도록 하며 섬기는 종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독한 부담감을 한 학기 짊어져 보려 합니다. 그 동안 대학에서 교수하는 친구들의 수고를 생업이니까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가볍게, 우습게 여겼던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교수 친구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준희야, 용호야!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 만나면 찐하게 밥 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