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토요일 성서일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6편, 아가 8:6-7, 요한복음 20:11-20 꽃물 (말씀 새기기) 아가 8:6-7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마중물 (말씀 묵상) 목회를 하면서 수없이 되묻고 또 되묻고 하는 것이 있다. 양떼들을 향한 사랑이다. 신학교를 다닐 때, 교수님들을 통해 시간마다 들었던 것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목자라는 메시지였다. 현장에 나와 사역하면서 신학교 때 들었던 교과서적인 가르침을 상기하면 엄청나게 퇴색되어 버린 가르침처럼 여겨지는 명제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목자다. 해묵은 것처럼 여겨지는 이 가르침이 오늘 나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오는가를 묻는다. 교회를 개척하고 정말 사랑했던 젊은 지체 둘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그들이 투병을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살려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며 기도했다. 정말로 부끄럽지 않게 중보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았다. 그로 인한 목회적인 탈진은 나로 하여금 적지 않은 데미지로 다가왔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 지체들을 향한 그리움, 목회자로서 견뎌야 하는 무기력 등등 복합적인 그로기 상태를 경험하다가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조명 받고서야 다시 일어섰다. 지금, 또 사랑하는 지체가 암과 투병하고 있다. 지체의 투병 생활은 지금부터가 고비인 듯하다. 육체적인 여러 가지를 탈진하게 만들 수 있는 지난한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런 저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따진다. 자꾸만 왜 이러시냐고. 정말 이러기냐고 또 불끈 한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지체를 위해 다시 엎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성숙한 목사는 못 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양들을 위한 사랑은 아가 기자의 고백이 맞는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더불어 어떠한 것으로도 그것을 끄거나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온통 내 마음은 지금 암투병중인 지체를 향해 있다. 지난 두 번의 아픔을 경험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 더 강하게 공격한다. “하나님, 이번에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이해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양보하세요. 제발.” 두레박 (질문) 도대체 암 덩어리가 무엇입니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지체의 투병이 힘든 것 아시지 않습니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내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내가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집중하고 긴장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교회의 중심은 아픈 자라고 교우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전 기간을 아픈 자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이 아프지 않게 하소서. 저들을 안아주소서. 저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