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시 혹은 성경 구절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그리고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 경배와 찬양 (WORSHOP) ● 하나님의 은혜 (복음송가) ●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찬송가 286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13:2-7 ● 제목 :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1)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불행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사기 13:15-16, 사사기 21:25절 하반절
● 창세기 30:22의 라헬과 사무엘상 1:10-11절의 한나의 기도를 비교하여 |
2)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이 상식화 된 시대의 자화상이 오늘의 시대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예는 무엇입니까? 3) 이런 참담한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나의 영적인 각오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 은혜: 언제나 늘 그러셨던 것
●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할 나의 영적인 각오: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가가호호 춘계 대심방을 위하여(한명복 셀) ② 사순절 네 번째 주 세 겹 줄 새벽기도회를 위해 ③ 화요일 인턴 셀 사역을 위하여 ➃ 양육 중에 있는 훈련생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사순절 세 겹줄 기도에 동참하기 ②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③ 사순절을 묵상하며 절제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4년 3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70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3:2-7 제목 :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성 뿐 아니라 모성의 속성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이사야 49:15절, 66:13절)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모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사사 삼손의 출생 내력을 알려주는 기사입니다.‘소라’라는 지역에 살고 있었던 단 지파 사람 중에 마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살고 있었는데 ‘소라’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3㎞, 그리고 벳세메스에서는 북쪽으로 불과 몇 ㎞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비옥했던 땅 소렉 계곡에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여호수아 15:33절과 19:41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이 비옥한 지역을 유다 지파와 단 지파에게 분할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두 지파의 경계선 지역에 있었던 땅이 바로 소렉이었습니다. 땅이 비옥한 지역이다 보니 여기에 살고 있었던 마노아라는 남성과 익명의 여성인 그의 아내는 물질적으로 별로 어려움이 없이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궁핍함과 곤비함이 없는 이들에게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자녀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2절) 사사 시대를 비롯하여 구약 시대는 자녀가 없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던 시대였기에 이들 부부에게도 자녀가 없었던 것은 아마도 유감스러운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임한 유감스러운 일이 임신하지 못하고 있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극적으로 해결되어집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에게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을 고지하고 그 아들을 낳은 뒤에 그 아들에게 행할 일을 세밀하게 명령까지 합니다. 천사가 명령한 내용은 ① 태어날 아들은 나실인이 될 것이다. ②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③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게 하지 말라. ④ 부정한 것을 만지게 하지 말라. 나실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의무사항을 고지한 것입니다. 천사는 이렇게 하는 이유를 본문 5절 하반절에서 결론 맺습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이런 놀랍고 신비스러운 일을 홀로 경험한 이 여인이 남편인 마노아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하는 것으로 본문 6-7절에서 반복하는 것이 오늘 텍스트의 줄거리입니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 이면에 숨겨져 있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좋은 땅에 정착하여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활을 했지만 불행히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구약적인 시각으로 볼 때 자녀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태를 막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론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기 전과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전에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태를 여셨다는 것입니다.(창세기 30:22절, 사무엘상 1:10-11절) 특별히 구약적인 관점에서 자녀의 잉태는 축복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없는 경우에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기도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자녀가 없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기도했다는 증언이 없다는 것이 주목할 점입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하나님께 자기의 소원을 아뢰어야 했음이 마땅한데 그녀는 삼손의 기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의 증언들 중 그 어느 한 구석에도 하나님께 자녀를 달라고 기도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사무엘상 1:15-16절의 한나의 기도는 자식을 낳지 못하여 브닌나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내적인 상태를 하나님께 간절히 표현하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주님만이 본인의 태를 여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기에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노아의 아내는 전혀 이런 몸부림을 쳤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주님께 태를 열어달라고 쏟아놓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기도하지 않은 이유가 오늘 설교의 테마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 상식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3:8절을 보면 마노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확인 기도였습니다. 아내가 자기에게 말한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기도로 의례상 할 수 있는 기도였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녀가 없음으로 인한 고통을 해결 받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 마땅했으나 이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당시의 영적인 분위기가 하나님을 잊은 시대였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천사의 고지를 받고도 마지못해 올린 기도를 보며 이들 부부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는 하나님을 찾지 않던 것이 상식화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영적으로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이전 대사사들의 시대에 순환 사이클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면 항상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은 입다 사사 시대를 끝으로 다시는 순환되지 않습니다. 입산, 엘론, 압돈 소 사사 25년의 치리가 끝난 뒤에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단적인 우상 숭배에 빠졌고 하나님은 진노하사 사사 역사 중 최장 기간인 40년 동안이나 블레셋에게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정상인데 소 사사 시대를 접고 삼손의 시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이스라엘의 구원의 요청은 사라졌습니다. 영적인 흑암이 짙게 드리운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짙은 흑암의 시기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 사사기 13:15-16절입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마노아가 확인 기도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의 천사에게 번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16절) 이 사실을 안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번제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왜 나에게 드리려는 것이냐고 책망합니다. 제사를 하나님의 천사에게 드리려는 무지의 시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알지도 못하던 영적인 무감각의 시대, 하나님을 찾지 않던 것이 상식이 된 시대가 영적 흑암의 시대입니다.
우리나라가 영적인 흑암의 시대로 전락된 것의 바로미터는 음란함입니다. 지난 27일 여성 전용 19금(禁)쇼를 표방한 ‘미스터 쇼’라는 이름의 공연 기획의도가 “이 공연은 여성들이 하루 나와서 정말로 즐기고 갈 수 있는 쇼이다. 마음을 열고 본능에 충실하면 된다. 숨겨진 욕망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더 밝고 건전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섹시함은 곧 퇴폐적이라는 색안경을 보기 좋게 벗겨줄 때가 되었다.”신문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영적인 흑암의 거대함이 이제는 수면 밑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는 것이 충격입니다. 숨겨진 욕망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더 밝고 건전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시대가 바로 오늘의 흑암의 시대입니다. 이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막 사는 것이 상식화 된 이 시대의 자화상은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에버리진(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었던 호주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 출신의 샐리 모건이 쓴 자전적 장편 소설‘니옹가의 노래’는 호주를 발견한 영국인들이 호주를 개발하면서 원래의 그들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행했던 인간이기를 포기한 죄악들을 고발한 책입니다. 호주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호주에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원주민들이었던 에버리진에게 자행했던 폭력, 인권 말살, 인종 차별의 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반인륜적, 반윤리적 행위들은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하는 반 예수적인 행태들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사 시대에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이렇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 정답입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절 b) 사람의 소견이 주장되고 하나님의 주장이 무시되는 시절을 흑암의 시대라고 정의하는 것이 무리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흑암의 시대, 이것이 상식이 된 무감각의 시대에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늘 그러셨듯이 도저히 가능성이 없었던 자들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도무지 반응이 없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사인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영적인 감각이라고는 문외한이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의 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도리어 하나님과는 전혀 교제와 만남이 없었던 소라 땅의 한 부부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삼손이라는 사사를 탄생시켜 세울 것을 고지하셨고 본문 5절에 기록된 대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어머니의 간절함과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언제나 늘 당신의 안위나 이익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늘 그러셨습니다. 심순덕 시인이 쓴‘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과 동일시되는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늘 그래도 되는 분이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용서해 주시는 분, 언제나 은혜를 먼저 주시는 분, 언제나 내가 회개하면 웃음 지으시는 분, 언제나 나에게 먼저 오셔서 당신을 양보하는 분, 거리가 상거인데도 맨 발로 나와서 나를 기다리시는 분 말입니다.
로마서 5:6-8절과“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5:16절의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렇게 문제 많은 우리들을 품으시고 항상 나를 먼저 찾아오셔서 나를 만져주십시다.
언제나 늘 항상 그러셨습니다. 먼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만지시고 터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찾지 않는 영적인 흑암의 시대에 하나님이 나에게 자유자재로 오셔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주님을 품으십시다. 그 분을 마음껏 영접하여 24시간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지으며 이 은혜의 족함으로 인해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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