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03.23 셀 사역2024-04-22 12:29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집안 내력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것을 나누어 봅시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찬송가 503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2:15~13:1
● 제목 : 이유 없는 결론은 없다.
1) 평화로워보였던 소 사사들의 통치 시기와 삼손 시대는 결과적으로 무엇을 남겼습니까?
● 사사기 13:1절:
● 사사기 15:11절:
  

2) 역대기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 역대하 32:24-26절:
● 역대하 33:1-3절:
● 역대하 33:21-24절:

  

3) 믿음의 계대를 이어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을 실천해 봅시다.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사순절 세 겹 줄 새벽기도회를 위해
  ② 화요일 인턴 셀 사역을 위하여
  ③ 양육 중에 있는 훈련생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성경통독 사역에 동참하기(에스겔 27장~)
  ②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③ 사순절 세 겹줄 기도에 동참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3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69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2:15-13:1
제목 : 이유 없는 결론은 없다.

입다에 이어 입산 사사의 7년 통치, 엘론 사사의 10년 통치, 압돈 사사의 8년 통치까지를 포함하면 총 25년의 평화가 지속되었던 시기가 소 사사들의 통치 시기였습니다. 압돈 사사가 죽은 후 본문 13:1절에서 그의 사정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히브리어‘야사프’의 번역인 이 단어를 더 정확한 번역으로 해석한다면‘계속’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립니다. 영어성경 'YLT' 의 번역에 따르면 ‘첨가하다, 더해 갔다.’라는 의미입니다.

소 사사 압돈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동안 본인들이 음성적으로 저질렀던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사악한 일들을 봇물처럼 터트리며 악을 더해 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때를 기다렸다가 그 때가 오자 보란 듯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다.
즉 소 사사 압돈의 치세 8년 동안 겉으로 보기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은 이방 민족의 압제가 없었을 뿐 심각한 영적인 중증 질병에 걸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압돈은 자기들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태워주는 호화판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사사로서 법률적, 행정적 리더였습니다. 그 시기가 신정 정치시대였음을 감안 할 때 사사들의 리더십은 단순히 사법, 행정, 입법에 관한 부분만을 책임지는 리더가 아닌 영적인 교통정리도 해야 하는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사사 압돈은 당시 본인이 치리하고 돌보아야 하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영역에 대한 영적인 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자기 식구, 자기 계대에만 별탈이 없이 무사하고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면 되는 그런 이기주의적인 삶을 사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영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은혜를 가르쳐 주는 리더가 없는 시대, 영적인 삶에 대하여 무감각한 시대가 압돈의 시대였고 소급하여 소 사사 3명이 활동하던 25년의 세월이었습니다.

분명 이 기간은 영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재앙의 시대였습니다. 3명의 소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영적인 재앙이 임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였거나 무관심했던 시기입니다. 영적인 가르침과 깨달음이 없는 무감각의 시대가 되다보니 그 결과가 바로 본문 13:1절인 것입니다. 압돈이 죽자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자손들은 그 동안 음성적으로 자행하던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양지로 나와 버젓이 자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기 시작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그대로 죄를 묵과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들어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넘겨 주고 블레셋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단 지파 지역을 단숨에 점령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부터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하기에 이릅니다. 사사기 역사 중에 이방 민족의 손에 이스라엘이 들어가 고통을 당한 단일시기로는 40년이라는 세월이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소 사사 압돈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에 임한 고통의 시간은 장구하고 힘이 든 시간이었음을 기자는 보고합니다.

사사 시대의 역사 순환 궤도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이방 나라를 들어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그 징계가 임하면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호소하여 징계를 멈추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간구하면 사사를 들어 이방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면 그들에게 잠시 동안 평화가 임하게 되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범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이런 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궤도가 무너지게 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범죄 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이방 나라 블레셋을 들어 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스라엘이 해야 할 그 다음 수순은 회개 이후 구원의 요청인데 본문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구원을 요청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충격적인 일이 사사기 15장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이 말은 블레셋 군인들이 삼손이 유다 지파 땅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유다 지파의 변경에 이르러 삼손을 내놓지 않으면 유다를 궤멸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이 협박을 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 3,000명이 에담 바위틈에 기거하고 있었던 삼손에게 떼거리로 몰려가서 그를 붙잡으며 한 말입니다. 즉 삼손이 블레셋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40년에 걸쳐 블레셋의 지배를 받는 것이 괜찮은데 이 일로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말고 순순히 붙잡혀서 블레셋의 심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 사람의 이 고백이 심각한 이유는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로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완전 무감각의 상태로 버려졌다는 증언이 사사기 15장 11절의 증언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블레셋의 40년 통치와 압제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이야기가 기록된 13~16장까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구절이 단 한 구절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기초로 본문 13장 이하의 삼손 시대를 미국 에덴 신학교 성서해석학 교수인 J.Clinton Mccann 이 말한 그대로‘사사들 중에 최악의 사사가 삼손이었다’는 말처럼 정말로 최악을 달리는 영적 상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삼손을 비롯하여 소 사사 시대가 이 정도로 영적 상태가 마비되고 전락한 이유가 바로 그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도대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약속하신 이스라엘 선민들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이 없었던 그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그들의 조상을 모세를 통하여 이끌어내시고 지금 그들이 정착한 가나안 땅까지 어떻게 영적인 도전과 은혜 가운데 오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전혀 말하거나 말해주지 않던 그들. 시내산 언약을 통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언약 백성답게 어떻게 살아야 함을 전혀 말하지 않던 그들. 가나안에 들어가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허물어뜨리고 공격할 바알과 아스다롯에 대한 위험성이 있을 터인데 그것에 대하여 조금도 설명해 주지 않던 그들. 이전 세대에 같은 사사들이 이방 나라에 압제 받던 선조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해서 역사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는지를 도무지 말해주지 않으며 침묵하던 그들로 인해 삼손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로 망가졌고 무뎌졌고 무감각해졌는지를 우리는 오늘 본문 이해를 통해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기 역사에서 기억해야 말 구절이 역대하 33:1-3절입니다.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 왕의 죽음 이후 남 왕국 유다의 14대 왕으로 등극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을 보면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달리 재위 초기에 악한 짓들을 골라 저질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 우상을 다시 섬기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겼습니다. 아버지가 허문 산당을 다시 세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후에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볼모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뒤에 하나님께 회심하기에 이르렀지만 그의 행적은 역대기 기록에 부정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33:21-24절입니다.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의 행적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보다 더 질적으로 영적으로 사악했습니다. 아몬은 그의 아버지가 초창기에 섬겼던 우상들을 그대로 섬기며 그는 끝까지 사악을 행하다가 쿠데타로 실각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에 이르기까지 유다의 13,14,15대 왕들의 역대기록들을 살펴보니 이유 없는 결론이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에도 극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함을 경험한 자였습니다. 그는 불치의 병을 선고받았지만 간절한 기도로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자신의 국력을 자랑하는 교만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세속적인 치세의 위력을 믿으며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히스기야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적인 교만으로 허물어진 아버지의 계대를 이어 아들 므낫세는 더 영적으로 무너져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선택합니다.  그의 영적인 무너짐은 아들 아몬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이방 땅에서 회심을 하지만 이미 그의 영적인 일탈은 아들 아몬에게 전해집니다.
아몬은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유다를 하나님 없이 통치하여 가장 사악한 유다의 왕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도 비참한 마무리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유 없는 결론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라는 전제 없이 형통한 것은 재앙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소 사사 시대의 암흑에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탄의 자식으로 서 있다고 해도 후회하지 못할 것은 바로 나의 죄로 인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