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02.22 셀 사역2024-04-22 12:2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나의 실수로 인한 에피소드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시선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302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1:32-40
● 제목 : 성공했을 때 조심하라
1) 입다의 서원을 응답하신 하나님의 진의를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말해 봅시다.
● 입다의 서원 내용:
● 본문 32-33절:
  

2) 오늘 본문 속 입다의 모습과 히브리서 12:7-8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얻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 본문 35-36절:
  

3)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관계십을 위해 자신이 경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진행 중인 성경 통독 사역을 위하여
  ② 회복중에 있고 수술을 앞둔 지체를 위하여
    (임영애, 송은호, 우정제-26일)
  ③ 청년 금요기도회를 위하여(교회학교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3월 1일(토) 월삭예배에 참석하기
  ②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2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65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1:32-40
제목 : 성공했을 때 조심하라

헨리 나웬이 장애인 공동체에서 만난 아담을 돌보는 일에 “우리의 우정에서 주로 유익을 얻는 쪽은 아담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외친 고린도후서 4: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는 이 진리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7-8절의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는 그의 고백대로 예수를 아는 지식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예수를 얻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존귀하고 고상하며 유익한 것임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영적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진의입니다.

* 성공했을 때 아니면 성공하고 있을 때 조심하는 것입니다.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으나 그 서원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신 제물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서원으로 서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승리하고 돌아갈 때 나를 처음으로 맞이해 주는 대상을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드리겠다는 사악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이러한 무모하고도 불신앙적인 행태를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하게 NO 이어야 하는데 입다의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본문 32-33절에서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하나님은 입다가 요구한 대로 암몬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입다로 하여금 아로엘에서부터 민낫 성읍에 이르기까지 20개 성읍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승리의 주역은 입다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기게 하셨다는 말이 맞습니다.

중과부적의 대상이었던 암몬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입다와 그의 군사들의 사기는 충천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입다는 길르앗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더 넓게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지배하는 왕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고 보무도 당당하게 금의환향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입다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가 가나안 종교의 습성에 의거하여 기분에 따라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의 대상이 결정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를 고향에서 맞이한 첫 번째의 사람이 바로 그의 무남독녀 외딸이었습니다. 본문 34절에서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다시 말해 하나님께 껍질을 벗기고 털을 제거하고 목을 치고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불에 태워드릴 제물이 다름 아닌 자기의 사랑하는 외동딸인 된 것입니다.

입다가 이런 기막힌 상황에 직면하면서 참담함을 토로한 것이 본문 35-36절입니다.
“입다는 자기의 딸을 보는 순간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 파는구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하필이면 왜 너란 말이냐! 주님께 서원한 것이어서 돌이킬 수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이냐!”(새번역)

입다는 자신이 서원한 내용 그대로 딸을 번제로 바쳐야 하는 기가 막히는 비극을 당하게 된 셈입니다. 결국 입다의 딸은 두 달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시간의 유예를 받고 번제물로 바쳐지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입다의 딸을 위하여 해마다 나흘씩 애곡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 되었습니다.

이상의 본문을 다시 한번 요약 정리해 보면, 입다는 하나님께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시는 조건으로 번제를 드릴 것을 서원했고 입다의 이런 흥정에 대하여 하나님은 일언반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원에 대하여 일체 말씀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반응을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은 입다의 서원에 YES 하신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 전쟁에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입다를 향한 무서운 경고요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요청대로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그의 딸이 입다를 첫 번째로 맞이하여 줄 대상인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입다의 사악한 행위를 그대로 좌시하지 않으시겠다는 결심을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입다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시려고 했습니다.
네가 그렇게도 숭상하고 버리지 못하는 그모스 우상과 몰렉 우상이 좋아하는 인신 제물을 허락할 테니 그렇게 해보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전제는 그 번제물은 네 딸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행하는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며 그릇된 일인가를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입다에게 교훈해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악한 기도도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의 이유는 사악한 기도를 드린 자에게 응답하심으로 인해 그가 망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에 하나 내가 드린 기도가 아무리 양보를 해도 나에게 세속적인 유익이지 영적인 유익이 되지 않을 때 그 기도의 응답이 곧바로 재앙이요 저주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고집대로 하나님께 우겨서 그것을 내 방법대로 실행하고 난 뒤에 오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절망이요 망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 옥한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의 말씀 중 로마서 1:18절을 근거로 하신 설교 중에‘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제하의 설교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집에 가면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사업이 너무 잘 되어 집이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합니다. 식구들이 다 건강해서 기름이 흐릅니다. 부인이 목사를 초청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얼마나 축복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자녀들도 잘 자라고 아빠도 건강하고 사업도 잘 되고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이 내용을 소개한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가 예수를 안 믿는데도 너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어 보입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가장 위험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 때문입니다. 내버려두었다는 말이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중에 그런 자들이 있으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하기 힘든 기도이지만 이렇게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발 내버려두지 마옵소서. 기다리지 마옵소서.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그냥 덮어두지 마옵소서.’」

하나님과 관계없는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응답하셨다면 그것은 수지맞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재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의입니다.

히브리서 12:7-8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진의 중의 진의는 당신의 백성들을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이기에 아들이 잘못 나갈 때 징계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그래서 하나님과 당신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입다가 하나님의 영적인 의도를 몰라 재앙을 맞았던 비극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대단히 중요한 교훈입니다.

바울이 선포한 고린도전서 10:12절에 기록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이 구절을 NLT 영어성경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만에 하나 네가 강하게 서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같은 죄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너를 위해 특히 조심해라.”
-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strong, be careful, for you, too, may fall into the same sin.

우리들은 언제나 같은 죄악을 반복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다분한 죄성을 갖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금만 잘 나가면 기고만장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죄악을 자행하면서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착각까지 합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잘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진의를 파악하고 그 분이 나에게 주시는 의도를 민감하게 말씀과 기도로 경청하면서 주님의 시선을 놓치지 맙시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가장 최고의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