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02.02 셀 사역2024-04-22 12:27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설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천 번을 불러 봐도
●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찬 379장)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찬 384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1:4-11
● 제목 : 진짜로 계산해야 하는 것
1)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간 이유와 그들의 제안은 무엇입니까?
● 삿 10:17절:
● 삿 11:6,8절:  

2) 길르앗 장로들과 입다가 서로를 견지하여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 삿 11:9-11절:
  

3) 입다의 행실을 반면교사 삼아 내 삶에 적용해 봅시다.
● 행 16:6절:
● 출 16:27절: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셀원들의 기도 제목을 위하여
  ② 셀리더 인턴 워크샵을 위하여(4일-화)
  ③ 신약성경 통독 사역을 위하여(매주 화-금)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수요 셀별기도회 참석을 위해 서로 독려하기
  ② 지역셀 사역에 동참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및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2월 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62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1:4-11
제목 : 진짜로 계산해야 하는 것

이 시대의 비극적인 자화상은 사색이나 묵상, 성찰 보다 자신의 이익에서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를 먼저 계산하는 이기성이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암몬으로부터 45년 동안의 평화가 깨지고 당하는 18년의 세월은 고통이 그 전보다 더 심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암몬의 고통을 가장 심하게 당하고 있었던 지파는 길르앗 지파였을 것입니다(삿 10:17절).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암몬은 길르앗 지역에 주둔하여 점령군으로서의 갖는 포악을 자행했을 것이기에 그 피해는 곧바로 이스라엘 중에서도 길르앗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임한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길르앗의 한 지경이었던 미스바에 모여 비상 시국회의를 열고 그 회의에서 합의된 결론으로 길르앗 출신인 돕 땅에 거주하고 있는 입다를 찾아가서 그를 군 사령관을 위촉하고 암몬과 대신 싸워달라는 청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입다는 길르앗에서 길르앗 사람들에 의해 돕 땅으로 쫓겨나 산적질을 하며 건달로, 부랑아로 살고 있었던 자였고, 그가 돕 땅으로 쫓겨난 이유는 자신의 신분이 기생에게서 태어난 천출이고 그런 천출에게는 아버지의 재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길르앗에 거주하는 냉정한 이복형들의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한을 품은 입다가 지금 암몬과의 전투를 위해 사령관이 되어 달라고 찾아온 고향의 장로들이 곱게 보일 리 만무입니다. 더욱이 돕 땅에 거주하던 입다는 건달들과 패를 이룬 뒤 군사를 조직하여 길르앗으로 공격하여 들어가 약탈을 서슴지 않았기에 길르앗 입장에서 볼 때는 암 덩어리와 같은 존재였는데 당시 군사력이나 물리적인 힘이 입다 만큼 준비된 자가 없었기에 길르앗의 장로들은 어쩔 수 없이  입다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마지못한 결론을 낸 것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서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이 ‘우리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장관’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카친’은 단순히 군사적인 명령권을 가진‘사령관’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사령관은 전쟁에서나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평시에는 그렇게 중요한 지위가 아니나 천출이었던 입다가 전쟁에 능한 자였기에 그가 필요했던 길르앗의 장로들은 철저한 계산 하에 입다를 전쟁에서만 사용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에게 더 큰 지위를 주면 그것이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계산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산을 하고 찾아온 길르앗의 장로들은 더 큰 계산을 하고 있었던 입다에게 보기 좋게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입다를 찾아온 장로들을 그가 냉대했습니다.
본문 7절에서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나를 미워하여 내쫒을 때는 언제고 이제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급했던 길르앗 장로들은 이제 두 번째 제안을 합니다.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8절)
두 번째 제안은 암몬과의 싸움을 해 주기만 한다면 사령관이 아니라 우리들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드디어 사령관이라는 직책에서 이제는‘머리’로 바뀐 것입니다.
‘머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로쉬’는 단순한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족들의 우두머리를 표현할 때’ 혹은 ‘이스라엘 지파의 우두머리를 표현할 때’ 종종 사용되었으며 또한 오늘 본문 기사의 경우에는 단순히 군사적 리더가 되라는 것 이상의  ‘통치자’ 와 같은 중요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고 트렌트 버틀러 박사는 자신의 주석서에서 말했습니다.
궁지에 빠진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의 싸늘한 반응에 히든카드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제 암몬과의 싸움에 출정해서 승리만 거둔다면 자기들의 통치자로 추대할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고백을 받은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의 제안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인간적인 계산을 하면서 다짐을 받는 장면이 본문 9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입다는 쐐기를 박듯이 전쟁에 나가 이기면 너희들이 진정으로 나를 너희들의 머리로 인정하겠는가? 를 묻습니다.
입다가 재차 다그치는 질문에 길르앗 장로들은 이제는 한 술 더 떠 여호와께서 당신과 우리들이 맺은 언약의 증인임을 천명하며 순종을 약속합니다.
본문 마지막 절은 입다가 격세지감의 감정으로 자기를 천대하며 쫓아냈던 고향 길르앗으로 개선장군과도 같은 위용을 갖고 금의환향하게 되는 것으로 본문이 마무리됩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첫 번째 계산으로 입다를 머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임해 한시적으로 이용할 사령관으로 계산했으나 이 계획이 무산되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입다를 머리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또한 입다는 사령관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겠다 계산하고 자신의 입지나 권위나 시대적인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철저히 계산하여 결국은 머리를 차지했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과 입다’에게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자신들의 입장에서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이 되는 최선책을 얻기 위해 철저히 계산했다는 점입니다.
입다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반드시 머리가 되겠다는 분명하고도 철저한 계산을 머리에 넣고 그것을 요구했고 길르앗의 방백들도 처음부터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먼저 입다의 생각을 떠보는 것으로 그들 역시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였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런 영적인 의도를 파악하면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 인간의 계산법과 하나님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 라는 단어가 막바지 구절인 9-11절에 걸쳐 연이어 계속해서 세 번 등장을 합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에게 만에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암몬을 나에게 넘겨주시면(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암몬을 물리치게 해주신다면) 내가 과연 너희들의 통치자가 되는 것을 인정하겠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은 맞장구를 치며 여호와께서 이 약속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약속한다는 맹세였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절에서 머리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입다는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통보합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이 말은 즉 “하나님, 제가 이렇게 다 힘을 써서 만들었으니 재가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이 계획한 일이 아닌 사람들이 철저히 계산하여 만든 시나리오를 하나님께 내놓으면서 사인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뢰니라’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다바르’ 는 경우에 따라 ‘명령하다’,혹은 ‘협박하다’ 의 의미도 있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는 자들의 행위가  ‘선 저지름 후 결재’ 의 모습일 때가 허다합니다.
신앙인들의 모습은 ‘선 결재 후 저지름’ 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얄팍한 인간적인 계산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통보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도행전 16:6절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제 1차 전도여행을 이름답게 마무리한 바울이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교회로 귀환하여 그곳에서 사역을 재정비하고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을 했고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자 바울 일행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마케도냐 쪽으로 길을 선회하여 그 지역의 첫 번째 성인 빌립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보이듯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신앙의 동선은 선 결재 후 저지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내 계산대로 움직이는 자는 하나님과는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나님이 신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게 주시면서 명령하신 내용이 일용할 양식이니 날마다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단 여섯 째 날은 날마다 거두는 것의 갑절을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명령을 계산했습니다. 매일 먹을 양식만을 거두라고 했는데 욕심껏 거두어 아침에 먹을 정도의 양식보다 더 많이 거두어 버립니다.
그러자 아침까지 남겨둔 만나는 벌레가 생겨 먹지 못하게 됩니다. 또 6일째 갑절을 거두고 7일째는 안식하라고 명하셨건만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째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얻기 위해 그 장소로 나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출 16:27)

인간적으로 계산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세상의 나라가 전부인 줄로 알고 사는 백성들은 지금 보이는 이 땅의 나라들을 추앙하고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이고 반듯한 나라이며 팀 켈러(왕의 십자가)가 말한 그대로 똑바른 나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것에 더 투자하고 또 투자하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땅이 똑바른 나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뒤집어 이 땅은 똑바른 나라가 아니라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거꾸로’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바른 나라라고 역설합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바라보는 나라인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올바른 길이며 그 길을 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계산으로 무장되어 있는 자들은 이 땅의 나라가 올바른 나라가 아니라 잘못된 나라라고 거꾸로 생각하는 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짜로 계산해야 할 것은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마지막 날에 계산하실 것에 대한 준비일 것입니다.

로마 총독 벨릭스가 도대체 십자가의 도가 한 마디로 무엇이냐? 고 바울에게 질문을 할 때 바울이 답변했던 말이 사도행전 24:25절입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요소인 의를 지키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들이 행하여야 하는 삶의 요소인 절제의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살아 마지막 날에 반드시 그 삶에 맞는 그리고 상응하는 계산과 셈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인정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