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놀이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 나누며 추억하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351장) ●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9:50-57 ● 제목 : 부메랑 1) 아비멜렉이 데베스에서 당한 죽음의 스토리를 말해 보자. 2) 아비멜렉의 죽음이 부메랑 효과라고 말할 수 있는 성서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1)사사기 9:2절 - 한 사람 2) 사사기 9:5절 - 한 바위 3) 사사기 9:20절 후반절 - 불과 여인 |
3) 우리 세인지기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던져야할 부메랑은 무엇이며 그 부메랑의 무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핀 후에 나에게 적용해 보자. 1) 설교의 테마를 중심으로 2) 무기는 무엇인가? ① 디모데전서 1:18절 ② 디모데전서 6:12절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1) 행복 나눔 축제의 결신자들의 정착을 위하여 (새가족 섬김이 사역 1주차 사역을 위해) 2) 지역 셀 지체들의 중보기도 제목 나눔 이후 집중적인 합심 기도 3) 2013년 마무리와 2014년의 승리를 위하여 2. 한 주간 사역하기 1) 다음 주에 있을 성경퀴즈 대회 준비하기 2) 지역 셀 재정 장부 정리하여 감사 준비하기 (이월금은 선교 헌금으로, 목적 없이 잔액 사용 금지) 3) 섬기고 있는 피선교지 사역자에게 전화 걸어 교제하기 4) 성탄 사랑 나누기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1) 주일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와 기도 응답의 은혜 나누기 4.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5. 헌금 기도 6. 광고 및 교제 7. 폐회: 주기도문 8.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12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 본문 : 사사기 9:50-57 / 제목 : 부메랑
2주 전, 우리는 아비멜렉이 자신에게 반역한 세겜 지역의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잔인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요담의 저주에 가까웠던 예언인 사사기 9:20절 전반절에 기록된 대로‘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비멜렉은 자신을 반역한 일련의 세겜 사람들을 거의 몰살시키는 잔인함을 보여 준 끝에 그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이 기세를 몰아 세겜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진 데베스로 이동합니다. 데베스는 아비멜렉의 복수의 전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명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통치 영역을 확장하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욕심으로 데베스를 무력으로 점령하기 위하여 침공한 것입니다. 데베스 사람들도 세겜 사람들처럼 성읍에 있었던 견고한 망대로 피신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잔인함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데베스 사람들은 그와의 전쟁을 위하여 만만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망대로 피신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은 세겜의 엘브릿 망대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데베스 사람들을 도모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망대를 불태우는 전략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망대의 대문 가까이 접근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 데베스 망대위에 있었던 무명의 한 여인이 망대 위에서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이 아비멜렉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 결과 아비멜렉의 두개골이 깨졌다고 본문 53절에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증언합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지역의 맹주였고, 70여명의 형제들을 왕이 되기 위해 무참히 죽였고, 세겜 지역 사람들의 반역을 제압하기 위해 무참히 군사력을 동원하여 피의 잔혹함을 보여주었고, 당시 그 누구도 반역할 수 없었던 최고의 독재자였고, 그래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누렸던 아비멜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최후는 잘 훈련된 적의 정예병의 칼에 맞은 것이 아니라 그냥 무명의 한 여인이 얼떨결에 던진 돌에 맞아 두개골이 쪼개지는 바람에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이 장면을 해석한 백석대학교 송병현 교수가 자신의 주석서에서 “전쟁에서 어떤 무기를 써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한 어처구니없는 여인이 어처구니없는 돌을 던졌더니 적장이 그 어처구니없는 돌에 맞아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아비멜렉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아비멜렉에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임한 이유는 그가 뿌린 씨앗들을 그대로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빗대어 보면 그가 던진 폭력의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사사기 9:2절에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라는 말로 아비멜렉은 세겜의 왕이 되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했고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70명이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말하면서‘한 사람’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한 사람 여인이 던진 돌에 맞아 죽습니다. 사사기 9:5절에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말씀합니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이복형제 70명을 죽일 때 한 바위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던진‘한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9:20절 후반절에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말씀합니다.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으로 연관된 또 다른 지역은 데베스였습니다. 바로 그 데베스의 망대에서 망대를 불태우기 위해 직접 망대 가까이 갔던 아비멜렉은 불이 타오르는 바로 그곳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불’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쉬’ 와 ‘여인’으로 번역된 ‘이솨’ 는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가 행했던 폭력의 화살들이 자신에게로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가 던진 악의 화살들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 도구가 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는 두개골이 깨진 죽음의 순간에 모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자기의 칼을 들고 있었던 청년에게 자기를 찌르라고 명령하여 최후를 맞습니다. 아비멜렉의 최후를 소상히 기록한 사사기 기자는 아비멜렉의 보고를 증언하는 마지막 부분에 가장 중요한 교훈을 글로 남겼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 부분인 56-57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말씀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두 번에 걸쳐 사사기 기자가 강조한 단어 ‘하나님이 갚으셨다.’가 있습니다. 영어성경 NIV는 이 부분을 직역하여 번역하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70명의 형제를 살해함으로서 자기의 아버지에게 행한 그 사악함을 그에게 되돌리셨다.”입니다. 아비멜렉이 행한 자기의 모든 죄로 인한 씨앗들을 그대로 그에게 되돌려 거두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잔인한 악을 행한 아비멜렉에게 그대로 그 악의 열매를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갈라디아서 6: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갈라디아서 6:9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아비멜렉의 기사를 통해 오늘 우리 세인 지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은혜는 *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비멜렉의 기사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악을 뿌리는 자는 그 악의 열매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선을 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선을 뿌린다는 것은 바울이 그의 양아들이었던 디모데를 향하여 디모데전서 1:18절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과 6: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를 통해 아비의 마음을 갖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 겸 권면을 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을 주목하면 선한 싸움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 1)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기입니다. 바울은 1:18절에서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으로 성육신화 되었는가? 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에서 하나님의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말씀인 ①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②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③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들에게 오늘날에도 조명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는 자들은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육비에 계시된 것이 없고 나의 육비에 써진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나의 24시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때때마다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악한 세태와 싸워야 하는 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2) 믿음이라는 무기입니다.바울은 또 하나 디모데에게 싸워야 하는 무기를 6:12절에서 분명히 소개합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말하며 믿음이 없이는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요즘은 교회를 의식하지 않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보면서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데 죄의식은 고사하고 C.S 루이스의 표현대로 하나님을 피고인석에 앉혀 놓고 하나님을 공격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들까지 포함한 이야기며 이들의 공격은 무자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흔들리지 말고 두 가지를 사수하며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그들이 싸운 선한 싸움의 결과가 아름다운 승리로 열매를 맺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은혜와 복입니다. 아비멜렉은 악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 결과 그는 그 열매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비참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비멜렉을 반면교사 삼아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 선한 싸움의 결과는 역시 부메랑이 되어 그 싸움을 행한 자에게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 삼아 선한 싸움의 부메랑을 던지는 세인의 지체들이 되어 그 부메랑은 반드시 던진 나에게 귀한 열매와 은혜로 되돌아 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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