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제목: 고린도후서를 왜 읽어야 하는가? (첫 번째 강해) 본문: 고린도후서 13:8-9 서론) 2016년 9월 18일 주일에 첫 번째 강해를 시작하여 2018년 9월 2일 주일 90번째 강해를 끝으로 고린도전서 강해를 마쳤습니다. 90주 동안 열심히 공부한 이 사역을 통해 우리 세인 공동체는 고린도라는 주후 1세기에 파란만장했던 역사 이야기를 갖고 있었던 고대 도시에 세워졌던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났던 갖가지의 사건들과 신학적 담론들을 깊이 연구하면서 고린도교회와 너무 비슷하게 닮아 있는 오늘 한국교회에 당면한 여러 가지의 위기들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음으로서 고린도교회에 주었던 바울의 해법 제시를 통해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회복의 자료로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살펴본 고린도전서가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교인들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는 바울의 수고가 논지였다면, 오늘부터 살펴볼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관계함으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바울 스스로가 개인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는 격정적인 치열함이 기록되어 있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여행을 떠나는 저와 여러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 강해 연구를 통해 내 개인적인 신앙의 내용들을 주의 말씀으로 강화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그러기에 바라기는 우리 세인 지체들 모두가 주일마다 행복한 고린도후서 여행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본론)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왜 써야만 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기까지의 역사 톺아보기가 필수적이기에 먼저 선 이해로 이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학자들은 바울이 사역했던 제 2차 전도여행의 시기를 주후 50년에 시작했다고 보고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온 시기를 50년으로 잡는 학자들은 그가 1년 6개월 간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기에 고린도교회 창립 시기를 51년으로 보는데 큰 이견이 없음을 고린도전서를 강해하면서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이후 1년 6개월간의 사역을 뒤로 하고 고린도 교회를 세운 뒤에 곧바로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이주하게 됩니다. 에베소로 이주한 바울은 첫 번째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고린도전서 5:9절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구절을 접하면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지금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를 쓰기에 앞서서 더 먼저 썼던 첫 번째 편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편지는 지금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편지입니다. 왜? 분실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바울이 제일 먼저 썼다고 해서 신약 학자들은 ‘서신 A’라고 명명합니다. 아마도 이 편지를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바울이 급하게 쓴 이유는 고린도교회 공동체 안에 음행하는 무리들이 많아져 타락의 도시인 고린도나 고린도교회가 별 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전술했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 편지는 분실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후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었던 바울은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자매였던 글로에의 가족 중에 누군가의 인편을 통해 고린도교회에 대한 또 다른 불편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1절이 이를 증언합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우리가 이미 고린도전서 공부를 할 때 알게 되었던 고린도교회의 분파주의 생성이라는 참담한 형편을 보고 받은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바울은 두 번째의 편지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쓰기 시작합니다. 이 편지가 소위 말하는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는 사랑하는 동역자 디도에게 맡겨 고린도교회에 전하도록 합니다. 이 사역을 마친 바울은 에베소에서 다시 특별한 사명을 디모데에게 맡겨 고린도교회로 파송을 합니다. (고전 4:17, 16:10) 고린도전서 4:17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의 사명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가르쳤던 주 안에서의 하나 됨이라는 질서였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디도에게는 고린도전서를 갖고 가게하고, 디모데에게는 또 다른 미션을 부여시켜 고린도로 보냈건만 디모데가 도착한 고린도교회의 상태는 이미 최악이었습니다. 바울을 개인적으로 공격한 어떤 우두머리로 인해 바울의 사도권은 물론 그가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캐리그마까지 심대한 위기를 고린도교회가 맞이하였다는 것을 안 디모데는 급하게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바울에게로 이 불행한 소식을 전합니다. 이런 심대한 위기를 맞이한 고린도교회를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던 바울은 본인이 직접 고린도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아주 짧게 고린도를 방문합니다. 여기에서 ‘짧게’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방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앞에서 큰 창피와 수모를 당하여 급거 다시 에베소를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고후 2:1) 바울은 이런 수모를 당한 뒤, 다시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소위 말하는 ‘서신 B’ 라고 하는 세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세 번째 편지는 ‘눈물의 편지’ 혹은 ‘엄중한 편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담겨 있는 편지의 내용이 얼마나 절박하고도 강력한 메시지였는지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또 다른 유감이 있습니다. 이 세 번째의 편지도 역시 분실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 독자들은 이 편지가 분실되어 볼 수는 없지만, 그 편지의 무게감은 한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맡겨 고린도교회에 보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이 편지에서 본인이 당했던 수모에 대한 자기 방어, 사도권에 대한 강력한 재천명, 그리고 불온한 자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 등등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디도에게 보낸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냐로 동선을 옮깁니다. 이유는 에베소에서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디도가 에베소가 아닌 마케도냐에 이동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급거 바울도 마케도냐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동역자 디도에게 이후 정황을 보고 받습니다. 디도의 보고는 그런 대로 긍정적이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반전으로 끝났고, 반역의 뜻을 품었던 자들도 진압되었다는 보고였습니다. 분실된 세 번째 편지가 위력을 발휘한 셈입니다. 이후 바울은 마케도냐에서 네 번째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다시 고린도교회에 보내게 되는데 이 편지가 바로 우리들이 앞으로 살피게 될 고린도후서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때 바울이 보낸 편지는 지금 우리가 보는 고린도전서 1-9장까지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천만 다행의 소식을 접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네 번째의 편지인 고린도후서 1-9장까지를 디도 편에 보냅니다. 헌데 이후 고린도교회는 또 다른 바울의 반대자들이 등장하여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고, 교회는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 무너질지 모른다는 참담한 후속 보고가 바울에 당도합니다. 바울은 또 다시 위기를 만났고 긴박성을 갖고 어떤 의미로 보면 다섯 번째 편지인 셈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고린도후서에 같이 붙어 있기에 4번째 편지의 선상으로 보는 고린도후서 10-13장을 다시 쓰게 됩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직접 들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교회를 바로 세우며 대단원의 고린도교회의 분쟁사를 영적으로 정리를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0:2) 이렇게 대단원의 고린도교회 사역을 마무리한 바울은 고린도에서 약 1년 간 머무르면서 그의 또 다른 역작인 로마서를 집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들이여! 고린도교회의 분쟁사를 따라오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고린도후서를 강해하기에 앞서 고린도교회의 지루한 역사성을 교우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전했을까요? 재 강조하지만 고린도후서의 이런 역사성에 대한 선 이해가 없이는 이 편지를 1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고린도후서 역사성 전 이해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선지식을 갖게 됩니다. ① 고린도후서 1-13장은 우리기 보는 성경으로는 한 묶음으로 엮어져 있지만 실상은 바울이 1-9장을 기록하였을 때는 나름 편안한 마음으로 쓴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10-13장은 또 다시 대단한 강한 어조와 거친 투의 투쟁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②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후서는 어떤 면에서 바라볼 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투쟁일기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얼마나 엄청난 교회 사랑의 치열함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부터 고린도후서를 공부하는 세인 지체들이 주일 강해를 접하면서 마음의 다짐을 해야 하는 영적 태도에 대하여 첫 번째 교훈을 나누려고 합니다. ※ 교회가 위기를 당할 때마다 그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한 교회 공동체의 남은 자들이 있었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단 하나의 교회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왜 안전하지 않습니까? 천상에서 완성될 그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한시적인 교회이지 영원한 교회가 아닙니다. 광야교회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광야교회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출애굽기 32장입니다.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인도함에 따라 시내 산에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출애굽 이스라엘 공동체가 장막을 세우고 거처하게 됩니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애굽이라는 도저히 넘지 못할 큰 파도를 넘어서서 안전한 포구에 도착한 배처럼 이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안식처가 시내 산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민 공동체가 지켜야 하는 신앙 강령인 10계명을 하사합니다. 이어 25-31장에 걸쳐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 산에서 거주하게 될 40일 동안 성막에서의 삶, 그리고 제사장들의 역할에 대하여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내 산에 도착한 공동체는 그 동안 드라마틱하게 애굽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루게 해 주신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하나님께 범죄 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출애굽기 32장에서 만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들이 눈 여겨 보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모세에게 하달하신 내용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성막에서의 삶이었습니다. 40일 동안 이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 삶을 돕는 자로 제사장을 세워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세밀하게 제시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성막에서의 삶과 제사장들의 역할을 모세에게 제일의 우선순위로 하달하셨을까요? 시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바로 광야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 속에 광야교회를 세우셨는데 그 광야 교회에서 자행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지극한 순명이 아니라 그 반대인 금송아지를 만든 불신앙이었습니다. 왜 광야교회가 이렇게 불신앙으로 출발했을까요? 광야교회를 통해 알게 되는 교회 신학의 교훈은 광야 교회도 이 땅에 존재하는 한시적 교회였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끼셨던 배신감은 아마도 대단히 실망스러운 소회였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은 대노하셨고, 이곳 시내 산에 범죄 한 자들을 향하여 일성으로 모세에게 토로하신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10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일성(一聲)은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선포 즉 이성(二聲)은 출애굽기 33: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 내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는 선전포고였습니다. 하나님의 이 선전포고는 모세에게는 절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을 발견하셨습니까? 출애굽기 32:10절 전반절 다시 봅니다. “내가 하는 대로 두라”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너는 나를 막지 말라” 아마도 BBE 영어성경 ‘Now do not get in my way,’를 직역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이 진노를 어떻게 멈추었습니까? 중보였습니다. 두 구절을 봅니다. 먼저 출애굽기 32:11-12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또 다른 한 구절입니다. 출애굽기 33:12-13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무슨 말입니까? 점잖게 표현했지만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올라가지 않으면 나도 죽기를 각오하고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각오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고 가나안으로 함께 올라가십니다. 출애굽기 33:14절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고린도후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저는 오늘 우리 교우들과 본문에 함축되어 있는 대단히 많은 영적 교훈들을 차치하고, 작금의 사태를 맞이한 내 사랑하는 교회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첫 번째의 교훈도 여기에 맞추어 조명하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고린도교회는 초대 교회 중에서도 참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사실 어디에서 손을 보아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총체적 영적 난맥이 얽히고설킨 그런 교회였습니다. 주지했듯이 바울은 무려 4번 실제로는 5번에 걸친 편지를 썼습니다. 시력도 좋지 않아 친필로 쓰기가 쉽지 않아 대필을 많이 시킬 정도로 육체적인 나약함이 있었던 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어떤 편지는 눈물로 썼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편지는 분노함으로 썼다고도 했습니다. 글로 권면하려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는 몸 품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다시 에베소로, 에베소에서 마케도냐로 옮기는 격정적인 사역을 감당합니다.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공동체가 문제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직접 고린도를 다시 방문한 바울은 인신공격과도 같은 수모를 당하고 에베소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바로 이때에 바울은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바울에게 이런 심정적인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면 그는 고린도교회를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후서 어디를 보아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포기하겠다고 0.1%의 대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라는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난 영적, 육체적인 피폐함과 고통이 가해졌지만 그는 온통 고린도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을 십자가의 도로 무장시켜 예수의 제자들로 만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희생했습니다. 어디 바울뿐입니까? 앞에서 살폈지만 이런 바울의 교회 살리기라는 프로젝트를 위하여 함께 헌신한 동역자들의 수고도 수훈갑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고린도까지 육로든 수로든 마다하지 않고 편지를 갖고, 혹은 미션을 갖고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디도와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무너짐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자매 글로에 가정의 식솔들의 동역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바라봅니다. 우리 한국교회나 고린도교회나 오십보백보입니다. 시쳇말로 도찐개찐입니다. 어디 하나 둘러보아도 고린도교회가 작고 있었던 총체적 난맥상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이런 형국에 저는 오늘 우리 세인교회의 지체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엄청난 영적 무질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했지만 고린도교회가 교회로 다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전술한 대로 교회를 사랑했던 신약시대의 남은 자 그리스도인이 있었기 때문임을 이렇게 질문하여 적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인교회와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는 남은 자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은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디도처럼, 글로에 자매의 가족처럼 고린도교회를 살리기 위해 한 마음으로 동역했던 신실한 주군의 제자들입니까? 오늘 코로나 19의 공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내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나는 어떻게 서 있으며, 무엇을 하는 그리스도인임을 되새김질하며 지금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고린도후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택한 본문을 곱씹어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3:8-9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구절은 엄격히 말씀드리면 바울이 쓴 다섯 번째의 편지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끝까지 진리를 거역하고 있는 악한 자들이 고린도교회를 유린하려고 하는 기막힌 영적 기상도 앞에서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위기에 있었던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던 성도들을 영적으로 다잡이 하며 강력하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바울의 이 말씀이 왠지 오늘 한국교회를 섬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눈물 쏟게 하는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같아 감동의 감동을 전하여 줍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톰 라이트 교수는 ‘광장에 선 하나님’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포스트모너니티의 결론은 개인의 해체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아니고, 우리 영혼의 선장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표류하는 기표(signifier)들과 충동(impulse)들과 인상(impression)들의 덩어리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변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은 자극들,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견강부회적인 해석, ‘내키는 대로의 기분’에 따라 스스로를 해체한다.”(톰 라이트, “광장에 선 하나님”, IVP 간, 2016년,p,47) 그렇습니다. 지금 나와 너의 세계이며,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키는 대로 기분대로 살아가며 나를 의지하는 것이 곧 신앙이라고 부추기는 이 시대를 살면서 내가 선택해야 하는 신앙의 길은 바로 바울이 선언한 이 마음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그 진리를 위할 뿐이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 진리의 기초 위에 세워진 곳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교회의 위기가 없었던 시대는 교회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위기는 존재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 위기를 이겼고 살아냈습니다. 그 한 복판에 교회 안에 있었던 신약의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세인 교회의 지체들이 바로 오늘의 바울, 디모데, 디도, 글로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고린도교회 강해를 통해 바로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섬김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