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 08. 03 셀 사역2024-04-22 12:3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적어도 나의 삶의 여정 중에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하여 나누어 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하나님이시여 (복음성가)
● 예수는 나의 힘이요  (찬송가 93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6:18-22
● 제목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1) 오늘 설교 본문을 통해 삼손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고정적인 관념 중에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본문 19절 참고
● 본문 22절 참고
● 설교의 내용 중에서  

2) 삼손이 가지고 있었던 힘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 20절 하반절을 참고하자.

● 선포된 설교의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자.  

3) 다윗과 여호사밧, 스바냐와 레슬리 뉴비긴이 간직했던 공통점과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여 선포된 설교의 주제와 관련하여 적용해 보자.
● 다윗, 여호사밧, 스바냐, 레슬리 뉴비긴의 공통점
● 나의 영적인 상태 점검
● 설교 주제와 관련하여 적용해 보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두날개 축제에 참석한 베스트의 정착을 위해
  ② 독립교회연합회 광복절 기념 연합성회를 
    위해 (8월 17일)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➁ 담임목사의 이슬비전도편지 태신자에게 전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8월 3일 주일 예배 설교 (사사기 85번째 강해)
제목: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본문: 사사기 16:18-22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이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긴 대표성이 있는 인물이라면 구약성경에서는 아마도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은 장인이었던 사울과 블레셋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짐과 구원을 받은 뒤에 시편 27편을 배경으로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인생의 힘을 얻는 동력이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무서울 정도로 철저히. 이렇게 성경의 인물들 중 시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풍미했던 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에게 영적인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삼손이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이 나실인으로 살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기에 머리털에서 나온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집요한 강요와 추궁의 결과로 들릴라가 얻어낸 것은 머리털을 밀면 삼손의 힘이 약해진다는 사실이었고 결국 그가 잠든 사이 머리털을 밀어 그의 힘이 빠져나가게 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힘이 빠진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사슬에 묶이고 두 눈이 뽑힌 채로 가사로 다시 끌려가 그곳에 있는 다곤 신전의 맷돌을 돌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음미하면 분명히 삼손에게 있었던 엄청난 힘의 원천이 그의 머리털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직접적인 증언이 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본문 19절)
사사기 역사가는 삼손의 힘이 머리털을 민 이후 사라졌음을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분명히 삼손은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댄 이후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삼손의 머리털이 마치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마술적인 원천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심각한 오류입니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 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본문 20절)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자기를 물리적으로 압박하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이전에 하던 방법으로 본인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에게 이전에 있었던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삼손의 힘이 상실된 이유는 20절 하반절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머리털이 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반증입니다. 그 동안 삼손에게 임했던 거대한 힘의 원천이 머리털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본문 22절입니다.“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가사로 끌려가 눈이 뽑힌 채로 맷돌을 돌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삼손에게 역시 그의 힘의 원천이 머리털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처럼 읽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랐다는 말은 절망 중의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머리털이 자랐다는 말은 마술적인 의미의 메시지가 아니라 삼손을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삼손과 완전히 단절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그에게 임재 할 것을 보여주는 우화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께서 삼손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에게 다시 들어가 그와 함께 할 것을 시사해 주는 주님의 스텐바이를 보여주는 단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설교의 본문을 통해 다잡이해야 하는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주일 설교의 테마 입니다.
* 나의 힘의 근원이 여호와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극적인 인생의 파노라마를 겪고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사람을 한 명이 추천하라고 한다면 다윗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대적들의 살해 위협과 블레셋에게 당한 심각한 치욕에서도 꿋꿋하게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 사람은 분명 다윗이었습니다.
사무엘하 22장은 사무엘 역사서의 총 정리 마무리 장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주도면밀하게 끈질긴 핍박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도망 중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할례 받지 못한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의 한 지역이었던 가드로 들어가서 그곳의 왕이었던 아기스 앞에 침을 흘리며 미친 사람인 양 흉내 내야 하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훗날 그는 아들들의 패륜으로 인해 아버지로서 살아생전 경험해서는 안 되는 치욕도 당합니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말년에 고백한 삶의 농축된 보고서가 사무엘하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22:2-4절입니다.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이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이 노래의 해석이 시편 18:1-6절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다윗에게서 이런 신앙의 고백이 보고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분명히 그의 삶의 모든 힘의 원천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0장 기사를 보면 남 유다에 여호사밧이 치리를 할 때 암몬과 모압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대군을 파병합니다. 군사적인 잣대로 이 싸움을 싸우면 여호사밧의 유다는 궤멸될 수밖에 없는 중과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 싸움이 전투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기도하기에 이릅니다. 여호사밧이 기도하던 여호와 전 뜰에는 여호사밧 만이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전 백성들이 모여 왕의 기도에 힘을 모아 같이 중보합니다. 드라마와 같은 은혜가 역대하 20:12-13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왕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더불어 백성들이 모두 함께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이것은 기도로 함께 힘을 모았다는 표현입니다. 같은 뜻과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왕, 백성이 하나님께 섰다는 말입니다. 거국적인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자 레위 지파 사람인 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이어지는 역대하 20:15절에서 기자는 분명히 기록합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 결과 이 말씀을 유다 백성들은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칼과 창을 들고 달려오는 암몬과 모압 군대를 향해 유다 백성들은 목욕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찬양대를 앞장 세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끼리 싸우게 하심으로 남 유다 백성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라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 놀라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 장소를 ‘찬송’이라는 뜻의 ‘브라가’ 라고 이름을 지으며 승리를 자축했음을 성경은 보고합니다.
여호사밧 시대 암몬과 모압 연합군과의 전투 기사를 볼 때 마다 가장 통쾌한 승리의 요소로 보는 것이 있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5절 중반절)
주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통탄하셨습니다. 스바냐 3:16-17절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힘의 근원이신 까닭은 ‘너의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사이드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삶의 한 복판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힘의 근본이자 근원이자 물줄기이십니다.
선교 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은 그의 책 ‘오픈 시크릿’에서 이렇게 자문자답합니다. “만에 하나 선교지에서 당신이 전하는 종교적 메시지를 무슨 권위와 근거를 갖고 그렇게 자신 있게 전합니까? 라고 피선교지의 사람들이 도전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전하는 종교적인 메시지의 권위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① 나는 내 삶의 궁극적인 권위가 예수이심을 믿기 때문이다. ② 또 하나 그 궁극적인 권위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기 때문이다. ③ 절대로 놓치지 않는 세 번째의 권위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라는 이 사실이 나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이 메시지를 듣는 모든 사람들임을 믿기 때문이다. 레슬리 뉴비긴의 이 선언은 가슴을 떨리게 하는 감동의 사자후입니다. 레슬리 뉴비긴이 갖고 있었던 힘의 원천은 예수가 그리스도였다는 명제였습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그의 힘의 원천은 머리털에 있지 않았고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뿌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날마다 힘의 동력을 공급받고 나의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강하게 붙들림을 당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