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 7. 27 셀 사역2024-04-22 12:3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결혼 전에 나의 이상적인 이성상(異性象)은 어떠했고 그 꿈은 이루어졌는지 솔직하게 나누어 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가 주인 삼은 (복음성가)
●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찬송가 214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6:4-21
● 제목 : 팜므 파탈로 인하여 
1) 삼손이 헤브론에서 소렉으로 내려갔으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을 동시에 비교해 보자.
● 진짜로 했어야 할 일
● 정말로 하지 말아야 했을 일
● 삼손이 궁극적으로 선택한 일  

2) 삼손과 들릴라의 4번에 걸친 시소게임을 나누어 보고 게임의 결과를 말해 보자.
● 시소게임
● 시소게임의 결과
● 삼손은 왜 들릴라와의 시소게임이 패배했나?   

3) 주님을 치명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나의 팜므 파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교훈을 선포된 설교를 통해 나에게 적용하여 객관화 시켜 보자.
● 설교를 삶에 적용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두날개 축제에 참석한 베스트의 정착을 위해
  ② 교회학교 여름사역을 위하여
  *학생부: 7월 28(월)~ 30(수)까지
  *청년부: 8월 2(토)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➁ 담임목사의 이슬비전도편지 태신자에게 전하기 
  ➂ 여름사역 지원 상의하기
  ➃ 여름 음식 함께 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7월 2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84번째 강해)
제목: 팜므 파탈로 인하여
본문: 사사기 16:4-21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삶’입니다. 선하고 긍정의 영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은 이타적인 삶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제시하는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타인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미치거나 해를 주는 인생을 산다면 그것은 신앙으로서 최대의 치욕입니다.
백석대학교 송병현 교수가 쓴 엑스포지멘터리 사사기 주석에서 ‘들릴라’에 대해, “삼손의 이야기는 세 명의 여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번에 등장하는 들릴라는 그 중 세 번째이자 가장 치명적인 팜므 파탈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어로 표현한 ‘팜므 파탈’이라는 말이 가장 접합한 말입니다.
삼손은 가사에서 또 한 번의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가사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심부인 헤브론으로 또 다시 그의 동선을 옮겼습니다. 헤브론은 가사라는 블레셋의 남부 도시에서 상당히 먼 거리 (약 60㎞)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삼손은 민족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삼손은 불행히도 이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행태를 보입니다.
본문 4절에서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 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은 헤브론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가 적어도 헤브론에 거주했을 때, 삼손은 하나님의 압도하심 속에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의 이런 압도하심을 오래 견디지 못했습니다. 헤브론으로 생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리고 이끄시는 압도하심의 통제 속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삼손이 헤브론에서 소렉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또 다시 옛 구습 그대로 팜므 파탈의 한 여자에게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전에 삼손이 여자로 인해 두 번이나 죽을 뻔 하였는데 자기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여자에게로 또 나아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자인 들릴라는 ‘밤’이라는 단어와 ‘소유격 조사’가 합쳐진 단어로 ‘밤의, 혹은 밤에게 속한’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입니다.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자가 ‘밤의 여자’ 인 들릴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이 말 뜻은 ‘작은 태양’이 ‘밤’ 이라는 어둠에 가려졌다는 의미를 영적으로 시사합니다.
또 본문 4절에서 삼손이 들릴라 라는 밤의 여자를 사랑했다고 표현한 사랑이라는 히브리어 ‘아하브’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했다고 표현할 때 사용한 ‘헤세드’라는 단어의 카운터파트의 단어입니다. 즉 아주 정욕적이고 육감적이고 쾌락적이고 성적이고 통속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그녀의 외형적인 팜므 파탈의 성적인 매력 때문이었다는 진단입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한 것은 인격적 사랑이 아닌 그가 가지고 있었던 성적인 일탈의 한 가지에 불과한 정욕적인 것이었고 동시에 구약학자들이 말하는 성중독자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한 나실인으로서 금기된 일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들릴라가 살고 있었던 땅은 소렉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 기사만으로는 들릴라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블레셋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 이유는 소렉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들릴라가 만에 하나 이스라엘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물질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블레셋이라는 이방 나라에 귀환한 매국자요 배신자일 것이고, 블레셋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여성이 되는 셈입니다.
삼손은 그것이 정욕이든 사랑이든 들릴라를 자기의 통제 밑에 있게 한 여성이었습니다. 자기의 통제 밑에 삼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블레셋 사람들은 가사에서의 쓰라린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만큼은 그를 반드시 생포하여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소렉에 살고 있는 들릴라를 찾아와 협상을 했습니다(본문 5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삼손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상금의 액수는 은 천개씩 세겔로 환전하면 5,500세겔을 주겠다고 협상을 한 것입니다. 당시 노예의 몸값이 20~60세겔 정도가 되고, 노동자의 1년 수입이 5~15세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삼손의 몸값으로 제시된 금액은 5,500세겔, 약 665㎏이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습니다.
들릴라가 이스라엘 여인이었다면 나라를 팔면서까지 돈에 눈이 먼 매국노가 되는 것이며, 블레셋 사람이라면 그녀는 나라도 돕고 돈도 얻는 일석이조의 행운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협상을 받은 들릴라는 무려 세 번에 걸쳐 삼손에게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습니다. 집요하게 압박해 오는 들릴라의 질문에 삼손은 대수롭지 않게 수수게끼를 내고 답을 맞히는 듯한 가벼운 인상을 주는 농을 던집니다.
① 마르지 않은 새 활줄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②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③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4번째로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삼손을 마지막으로 들릴라가 압박을 하자 괴로워하던 삼손이 자기의 힘의 근원이 머리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주기에 이릅니다(본문 17절).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이 사실을 알아낸 들릴라는 협상카드를 꺼낸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을 4번째로 불러서 그 비밀을 알려주게 되었고 다섯 방백들은 본인들의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삼손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를 체포한 뒤, 그의 눈을 빼고 그를 이전에 도망 나왔던 가사로 다시 데리고 가서 감옥에 구금했고 그 감옥의 연자 맷돌을 돌리는 수모를 안깁니다. 왜냐하면 당시 연자 맷돌을 돌리는 것은 짐승과 노비들의 고유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팜므 파탈’로 인한 삼손의 치명적인 비극을 보고 우리가 얻는 교훈은 팜므 파탈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정욕의 욕심으로 유혹하여 도무지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할 탐므 파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아주 명확한 교훈입니다. 이 땅에서 나를 무너뜨리는 팜므 파탈의 반대적인 개념은 하나님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 하나님을 치명적으로 사랑하십시다.
치명적인 주님 사랑이 있어야 나의 팜므 파탈은 나에게서 떠나갑니다. 주님 이외의 것을 너그럽게 용납하면 나는 나의 팜므파탈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의 나의 최고봉’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직도 육체를 신뢰하십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초월하신 분만 신뢰하십시오. 나의 확신이 책이나 기도나 혹은 영적 체험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의 확신은 오직 그 분께만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100% 의지하며 신뢰하면 나의 삶의 틈새에 팜므 파탈은 틈타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확신하는 %의 나머지가 있다면 그 나머지는 나의 팜므 파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주님을 의지하는 폭 이외의 영역에서 또 내가 의지하는 팜므 파탈은 주님의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의 사랑의 대상, 나의 의지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나만의 팜므 파탈이 따로 존재하게 되어 내가 그것에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즈음이 되면 그 날은 이미 돌이키기에는 삼손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영적인 상태가 망가진 이후가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50절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이었던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겉옷을 의지하는 자였다면 주님을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팜므 파탈은 겉옷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치명적으로 사랑하는데 나의 생명을 위해 죽으신 주님을 치명적으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이 액세서리에 불과한 치장으로 그 분을 달고 사는 무늬만 그리스도인 되는 것입니다.
김기석 목사의 글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에 “1960년대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가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룻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글이 있습니다. 과거에 주님을 사랑했던 우리 부모들의 이 치명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주님을 치명적으로 사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