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열린 모임 6주차 사역을 위하여 함께 나누기와 읽은 소설 중에 기억나는 것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가 예수 믿고서 (찬송가 421장) ●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14:10-20 ● 제목 : 내기 인생을 사시렵니까? 1) 삼손이 딤나에서 수수께끼 게임을 하게 된 이유를 사무엘하 11:2절의 다윗의 상황과 연관하여 공통점을 찾아 분석해 보십시다. 2) 삼손과 다윗에 비해 바울이 지니고 있었던 다른 점을 빌립보서 3:17-21절, 사도행전 20:24절, 그리고 디모데후서 4:7절을 병행하여 나누어 보십시다. ● 빌립보서 3:17-21절: ● 사도행전 20:24절: ● 디모데후서 4:7-8절: |
3) 나는 내기 인생을 사는 자입니까? 아니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입니까? ● 내기 인생을 산다면 반성하고 돌이키는 결단을 하자. ● 사명자이면 주어진 사명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해 보자. (특히 열린 모임을 중심으로)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제 3차 전인적 치유 수양회를 위하여(21일) ② 봄 열린 모임 6주차 사역을 위하여 ③ 양육 중에 있는 지체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봄 열린모임 사역하기 ① 6주차 열린 모임: 베스트의 필요 채워주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4년 6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78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4:10-20 제목 : 내기 인생을 사시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동식물에게는 없는 당신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곧 인간에게만 영성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성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인간도 짐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영성이 사라진 자의 비참한 형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 중에 하나로 삼손이 그 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이 고향을 떠나 이방의 땅이었던 블레셋의 한 지역인 딤나에 머물게 된 이유는 결혼식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0절에서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아들과 함께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이유는‘사디카’라는 결혼을 치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결혼법은 당시 고대 근동의 이방 땅에서 행해지는 결혼법으로 아내는 친정아버지를 집에 머물게 하고 남편은 처가에 함께 기거하거나 혹은 방문하여 7일을 지내게 하는 형태의 결혼법입니다. 아마도 아들의 이 결혼식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마노아도 같이 딤나까지 아들과 함께 동행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손이 처갓집에 도착을 하자 같은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 출신의 웬 남자가 그리고 그것도 체력적으로 범상치 않은 남자가 자기의 고향으로 결혼을 하러 온 것에 대하여 예민하게 생각하던 딤나에 살고 있었던 여자의 친족 무리들이 삼손을 경계하기 위한 방편으로 30명의 남자를 착출하여 삼손과 함께 일주일을 보내도록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7일에 걸쳐 이곳에 머물 적대국의 남자인 삼손의 경계자 겸 혹은 결혼식 들러리로 겸사겸사 삼손과 함께 하게 했음을 사사기 기자는 보고해 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배경을 토대로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문화, 언어, 습관, 음식 등 여러 가지로 이질화되어 있는 곳인 딤나에서 7일을 머물러야 하는 것은 삼손에게는 힘든 시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삼손이 고안해 낸 것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30명의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수수께끼를 내되 내기 수수께끼였습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이 놀이는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줄 아주 좋은 대안이었습니다. 삼손이 건 내기의 물품은 본문 12-13절입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베옷 30벌과 겉옷 30벌 내기를 하여 맞추면 삼손이 30명에게 지불해야 했고 못 맞추면 30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물어야 하는 내기였습니다. 내기를 건 물품들은 당시 상당한 부담이 있는 물품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사람이 딱 한 개의 의복을 갖고 살았던 때였기에 지는 자에게 있어서의 부담은 의외로 치명적일 수 있는 내기였습니다. 이렇게 내기에 부담이 있었다는 증거는 수수께끼 내기에서 진 삼손이 자기가 부담해야 할 의복을 충당하기 위해 블레셋의 또 다른 지역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30명의 사람을 죽인 뒤에야 얻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19절) 삼손이 30명의 딤나 사람들에게 낸 수수께끼의 문제가 본문 14절입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 단 것이 나왔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라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주석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일 많이 공감하며 제시한 것이 ‘구토(overeat)’ 라고 말합니다. 이 답에 학자들이 동의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결혼식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결혼식에는 먹을 음식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술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에덴 신학교의 성서해석학 교수인 J. 클린턴 멕켄(J. Clinton McCann)교수는 그의 사사기 주석에서 “7일 동안 배설된 잔치에서 많은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넘치도록 먹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먹는 사람들은 먹는 것을 지나치게 탐닉했을 것이고, 이미 입으로 들어갔던 것들이 도로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장면들이 여기저기에서 속출했을 것이다. 건장한 젊은이들은 각 종 맛있는 진미들을 배불리 먹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단 것을 토해 내기도 했을 것이다.”가장 단순하게 보편적인 해석이 바로 구토입니다. 문제를 받은 블레셋 사람들은 3일이 지났는데도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급해진 블레셋 사람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삼손의 아내를 찾아와 그녀를 협박한 내용이 남편을 꾀어 답을 알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너의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는 협박을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요는 삼손을 통하여 우리들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시도 때문이라는 억지도 부립니다. 이제는 신변의 위기를 느낀 삼손의 아내가 삼손에게 답을 알려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7일의 기간 중에 3일 만에 협박을 받은 삼손의 아내는 4일째 되는 날부터 7일까지 집요하게 답을 알려달라고 남편을 채근하자 삼손은 할 수 없이 아내의 집요한 괴롭힘에 항복을 하게 됩니다(본문 17절). 결국 삼손은 이 게임에서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패배하고 자신이 내 건 내기의 물품들을 내놓아야 하는 곤란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할 수없이 나실인으로서 도무지 해서는 안 되는 블레셋의 또 다른 도시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자신이 경솔하여 저지른 죄의 삯을 지불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 30명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노략한 옷을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줍니다. 화가 진정이 되지 않은 삼손은 결혼의 모든 예식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자기의 고향으로 올라갔고 그 결과 삼손의 장인은 신혼의 첫 날도 지내지 않은 딸을 다른 남자에게 주는 불행한 해프닝으로 기사가 끝났음을 사사기 기자는 보고합니다. 이상의 본문의 줄거리를 통해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4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동안 블레셋의 압제에서 시달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야 하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망각하고 전혀 생산성이 없고 의미 없는 딴 짓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데 정신이 팔렸습니다(수수께끼 내기).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레마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하는 자는 의미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목적 인생을 살라고 권하셨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3:17-21절을 소개할 때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는 이 선언을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로마의 아주 추운 지하 감옥에 구금된 채 생사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감옥에 있는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시민권은 여기가 아닌 하늘에 있다고 선포하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을 단 한 시라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졌던 목적 즉 사명이 사도행전 20:24절이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이 사명을 한시도 잊지 않고 끝까지 감당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완수합니다. 그렇게 달렸던 바울은 사랑했던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4:7-8절의 유언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반면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하자 무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도 영적인 집중력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사명을 잃게 됩니다. 그 예가 사무엘하 11:2절입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전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낮부터 잠자리에 들어 오수를 즐겼던 다윗은 초저녁에 일어나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간음의 죄를 짓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이 많아진 그에게 나실인의 영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기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종교적인 야바위꾼으로 전락하여 돈을 걸 테니 너희들도 돈을 걸라는 종교적인 직업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패하기까지 합니다. 사명을 잃어 종교적인 야바위꾼으로 추락한 그는 결국은 애매한 사람의 목숨 30명을 앗아가 버리는 하나님의 도구는 고사하고 세상 사람보다 못한 살인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스캇 맥나이트가 쓴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에서 그는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내가 항상 하는 질문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좋아하는가? 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 진정한 영성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다.”또한 오스왈드 챔버스가 쓴 ‘주님의 나의 최고봉’ 에 이런 감동의 글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에 집중하면 능력을 잃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로 인한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십자가이며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전혀 영적이지 않고 사명을 망각하여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길과 주신 바 사명을 감당하는 의미 있는 인생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력을 발휘함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므로 주님의 날에 하나님으로부터의 의의 면류관을 부여 받는 인생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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