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05.04 셀 사역2024-04-22 12:30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열린 모임 1주차 사역을 위하여 함께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음성가)
●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찬송가 450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3:19-23
● 제목 :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1) 똑같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마노아 부부에게 서로 다르게 임했던 예배자의 감흥을 말해 봅시다.
● 본문 21-22절을 참고하세요.
● 마노아 (22절)
● 마노아의 아내(23절)  

2) 마노아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혜안이 있었던 두 사람을 나누어 보자
담임목사의 설교를 중심으로
1)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인물
2) 열왕기하 6:16-17절에 나오는 인물  

3) 우리 가정에서 영적인 혜안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누구인가?
1) 나누어 보기
2) 오늘 설교를 통해 담임목사께서 기대하는 영적인 의도는 무엇일까요?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가가호호 춘계 대심방을 위하여(강지숙 셀)
  ② 2014년 봄 열린 모임 사역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봄 열린모임 사역하기
  ① 1주차 열린 모임: 베스트 명단 작정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5월 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73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13:19-23
제목 :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오늘 설교의 주인공은 익명의 여인인 마노아의 아내이자 사사 삼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이것이 전부라는 의미는 그녀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배경이 철저한 가부장적 시대라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즉 여성의 권위가 짓밟히던 시대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임했고 동시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득남 고지의 은혜를 받은 사실을 여인이 남편에게 알리자 남편은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말한 사실을 내가 믿으려면 그 사자를 만날 때 만이라고 가부장적인 권위를 갖고 고집을 피웁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노아의 고집을 잠재우기 위해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해 줍니다. 만남의 사건 때 부부 두 사람에게 낳게 될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까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제시해 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름 확신을 가진 남편 마노아가 그에게 대접하려는 지경까지 이르자 사자가 나에게 대접하지 말고 이 위대한 일을 이루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것을 지도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을 명 받은 마노아는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준비하여 가져다가 바위 위에 올려 놓습니다. ‘바위 위에 올려 놓았다’는 표현은 비로소 마노아가 형식을 갖춘 번제의 제사를 하나님께 진지하게 드리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장면입니다.

번제물을 바위 위에 올려놓자 하나님은 그 번제를 받으셨습니다(본문 20절).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대체적으로 구약성경에서 불은 모든 것을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상징적 언어입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의 면전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당신의 인격적 실재, 즉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며 삼손을 낳게 해 줄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의 하나님은 죽어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이라는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이 임재의 은혜가 임하자 마노아 부부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사자가 아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1-22절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 중의 은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는 은혜입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불꽃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 다음의 은혜까지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 된 은혜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무지했던 마노아였는데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한 결과 그는 비로소 그 동안 자기와 함께 한 존재는 하나님의 사자임을 앎과 동시에 그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은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영적 감각이 죽어 있었던 마노아의 시대였기에 마노아 역시 하나님에 대하여 둔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 영적 성장을 경험한 것입니다.

마노아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한 뒤 그의 결론적인 멘트가 ‘내가 죽게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죽게 되었다는 마노아의 신학적 성찰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마저도 나를 보면 죽게 될 것임을 고지하시면서 당신의 등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지 않은 우리들이 보는 것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마노아의 고백은 아주 정확한 신학적인 고백임에 틀림이 없지만, 해석은 틀렸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23절을 보면,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마노아의 아내는 예배 중에 보았던 하나님의 임재와 그것을 보게 된 것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이와 같이 내어놓았습니다.
우리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는 기막힌 신학적 해석을 담보합니다.
만에 하나 하나님이 우리들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들의 제사를 받으실 리 만무라는 것입니다. 불꽃으로 임하시는 임재도 그리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시기 위해 우리에게 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심어주시기 위해 우리들을 만나 주셨다고 그녀는 해석한 것입니다.

여자는 위대했고 대단한 영적, 신학적 혜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영적인 혜안이 있는 사람이 있기를 기도하십시다.

마노아의 가정에는 이런 은혜의 주인공이 바로 삼손을 낳은 그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였습니다.
마노아도 아내와 함께 동일하게 불꽃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그들은 동일하게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동일한 행위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응을 사뭇 달랐습니다.
마노아는 죽게 되었다고 해석했고 반면 아내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죽이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반드시 우리 가정을 통해 이
루어주실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누구의 해석이 맞는지는 본문 24-25절에 있습니다.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약속한 대로 아들을 낳게 되었고 아아가 자라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과 더불어 성령도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여인의 해석이 맞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은 소년 예수님의 이야기가 유일하게 실린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12세 되던 해, 유월절을 맞이하여 요셉 식구들 전체가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월절을 지키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보이지를 않자 찾아 헤메다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보았더니 그곳에서 소년 예수께서 랍비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인간적인 노를 담아 아들을 나무란 것이 누가복음 2:48절입니다.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분명히 나무람이었고 꾸짖음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누가복음 2:49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사정이 이 정도라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매를 들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지막 반응이 기록된 누가복음 2:5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해석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말을 마음에 두었다는 표현은 꽁하고 있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라 아들의 말을 영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입니다.

세속적 가치의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은 인본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10개월 동안 배 아파 낳은 아들 예수께서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 기사 그 어느 곳에서도 어머니 마리아가 무너졌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신본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했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기사인 열왕기하 6: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이 기사는 엘리사로 인해 아람의 왕이 번번히 이스라엘 정복에 실패하자 그 원인 뒤에는 엘리사라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람 왕이 군대를 도단으로 보내 엘리사를 제거하는 작전을 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도단이 엄청난 아람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었음을 알고 절망하는 기사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을 엘리사는 열왕기하 6:16-17절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교회와 가정에 있는 멤버 중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적용해 볼 때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는 지체가 있다면 그 가정은 복된 가정이며 하나님의 소망이 있는 가정입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혜안을 가진 멤버가 있다면 그 가정들이 합쳐져 영적인 아마존이라는 은혜의 강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 은혜의 강이 합쳐지면 여호와를 인정하는 물결로 제천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 5:1절에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 한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