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수요일 성서일과 묵상 말씀을 가지고 돌아서라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40:1-8, 호세아 14:1-9, 마태복음 12:1-8 꽃물 (말씀 새기기) 호세아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마중물 (말씀 묵상) 여로보암 2세 치하, 북쪽 왕국은 대단히 잘 나가는 왕국이었다. 벧엘에서 단까지 나름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성했고 부유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남쪽 왕국은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빈약했고 허접했다. 결국 북쪽 왕국이 이모저모로 잘 서면 남쪽 형제들에게도 적지 않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굳건히 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북쪽은 영적인 측면에서 최악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타락했다. 바알리즘의 전성기였던 아합 치세의 기초를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상 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제사장, 선지자, 정치지도자 등등으로 대변되는 화이트 컬러들은 죄악의 극점을 달리며 민초들을 압제했다. 부익부빈익빈 극을 달리며 일부 극소수의 부유층들만이 행복한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야훼 하나님의 조치는 강력했다. 호세아가 그 증언의 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불행했던 가정사를 통해 전했던 예언적 메시지는 영적 무너짐에서의 ‘돌이킴’이었다. 그런데 성서일과를 통해 눈에 띠는 구절이 있다. ‘말씀을 가지고 돌아서라’였다. 말씀이 기초가 되지 않는 돌아섬은 의미 없다, 아니, 진정성이 있는 돌아섬일 수 없다. 나를 돌아서게 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지. 말씀의 전제가 없는 돌아섬이 얼마나 헛헛한 일인지 목회의 세월 속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흉내 냄, 인위적인 돌이킴의 모습 등등은 종교적인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얼마든지 가능하다. 종교적이 갑각으로 무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도가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당위다. ‘말씀을 가지고 돌아서라’ 오늘 나를 타격하는 레마다. 두레박 (질문) 돌이킴, 내 의지의 표현인가? 아니면 말씀을 통한 타격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나는 축자적 영감설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반대하며 목회할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더 민감하겠습니다. 말씀 외의 것으로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대단히 예민하게 말씀의 통제 밑으로 들어가자. 말씀의 통제 밑으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 섬기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지체들을 주께서 살피시지 않으면 붙들 수 있는 깃발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사라지게 됩니다. 목양의 현장에서 힘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 나약한 지체들에게 강건함을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