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토요일 성서일과 묵상
위험한 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50:7-15, 출애굽기 34:1-9, 마태복음 9:27-34
꽃물 (말씀 새기기)
마태복음 9: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목회를 하면서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었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사역의 내용에 담긴 세속적, 영적 의미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 판단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이것을 양보하다보면 전부를 빼앗기는 것이고, 사정이 이러니 양보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친 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목회의 연수가 늘어나 목회의 마지막 필드에 접어든 지금, 그것들이 얼마나 헛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으니 늦게 철 든 셈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목회 연륜이 쌓여도 더 깊은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심리다.
바리새인들은 유대 종교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예수의 어록들과 삶에 대해 모를 리 없다. 심지어 100% 확신할 수는 없어도 그들이 표면적으로 붙들고 있는 히브리 경전에서 약속하고 있는 다윗의 계보를 통해 올 메시아에 대한 인식에서 나사렛 예수가 대단히 근접한 존재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끝까지 예수를 배격했을까? 그들은 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지속했을까? 종교적 앎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그들을 안으로 좀 먹게 하는 악성 종양덩어리였다. 앎이라는 것이 삶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지보다 더 악한 실체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 말했듯이 신앙을 가진 자가 타락하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위험하다는 직설은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바리새인들은 나쁜 존재들이 아니라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두레박 (질문)
내가 하나님을 알려는 의도가 무엇 때문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주워 들은풍월이 많아지며, 내가 자연적으로 알게 된 일체의 것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에 치명적 방해 요소가 되고 있는지 세밀하게 성찰하게 하옵소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냉철하게 나를 뒤돌아보게 하옵소서. 오늘의 바리새인 되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참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어느 때에는 참 단순해지는 바보도 괜찮은 것 같다. 영악하지 않도록, 바보 이반처럼 살아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