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목요일 성서일과 묵상 ‘자카르’와 파카드‘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8편, 욥기 38:1-11, 디모데후서 1:8-12a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마중물 (말씀 묵상) 지인들이 오래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 목사 가정에 들어오는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집살이는 안 할 것 같은데, 시아버지 시집살이는 혹독하게 할 것 같아.”(ㅎㅎ) 왜 아니 그럴까 싶다. 아들에 건 내 기대감이 커서 그렇게 지인들에게 비쳤을 것이 틀림없다. 뒤돌아보면 아들에게 건넨 부담이 적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진정성이 있는 고백을 하자면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독자라 너무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렇게 부담을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아들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아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치열하고, 냉혹하며, 고독한 길인지를 너무 잘 알기에, 이런 이유로 목사는 냉철한 이성과 성숙한 영성과 고도로 정제되어야 할 의지력이 구비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기에 아들에게 때때로 부족해 보이는 구석이 있으면 다그친 것 같다. 오늘 성서일과를 읽으며 시인이 고백한 토로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카르’(생각하다)한다는 시인의 고백이 아리게 다가온다. ‘자카르’의 문자적인 의미가 ‘칼로 베다’의 의미이고 보면 얼마나 야훼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기에 그렇다. 어디 이뿐인가? ‘파카드’(돌보다)의 의미는 더 귀하게 다가온다.‘시인의 영성 1’을 보니 ‘파카드’를 친구가 기막히게 표현했다. 야훼 하나님의 ‘따뜻한 심방’이라고 표현한 것은 신학자가 느끼는 영성의 산책 결과다. 모든 성서학자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 표현이 내게는 귀하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나니 모든 것이 자유롭고 해방된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볼 수 있으랴 짐작했지만 이제는 하나가 아니라 둘에게 ‘자카르’와 ‘파카드’의 마음을 쓰다 보니 2배의 수고가 더 필요하다. 시아버지 시집살이가 아니라, 영락없이 며느리 시집살이를 하는 것 같다. 시인의 마음이 오늘 내 마음이다.
두레박 (질문) 나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고 돌보시는 만큼 교우들에게 그렇게 집중하고 있나? 손 우물 (한 줄 기도) 언제나 찾아오셔서 심방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자카르’와 ‘파카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주님의 따뜻한 만지심을 민감하게 느끼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지체들이 6월 한 달 더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건강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 존재하는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나의 타자이자 곧 나인 또 다른 이웃들을 보듬어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