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4.08.17 셀 사역2024-04-22 12:3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교황 방한이라는 이슈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소회를 나누어 보십시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오 놀라운 구세주 (찬송가 391장)
●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사사기 17:1-6
● 제목 : 랜덤 시대
1)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었던 미가가 범했던 8계명의 어김에 대하여 그의 어머니가 반응했던 7가지의 랜덤 현상을 말해보자.
● 1번부터 7번까지의 내용을 상기하십시다.  

2) 사사 말년에 일어난 7가지의 랜덤을 오늘 시대의 언어로 아는 대까지 적용해 보자.
● 주일 설교를 중심으로  

3) 영적 랜덤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세 가지로 말해 봅시다.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두날개 축제에 참석한 베스트의 정착을 위해
  ② 입원과 수술 후 회복 중에 있는 지체를 위해
    (이제면 집사, 신태일 성도, 김재만 형제 외)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셀 리더 필히 참석
  ➁ 담임목사의 이슬비전도편지 태신자에게 전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4년 8월 17일 주일 예배 설교 (사사기 87번째 강해)
본문: 사사기 17:1-6
제목: 랜덤 시대 

사사기 17장부터 21장은 사사기의 부록이라고 말하는데 사사기서의 마지막 주제를 엿보게 하는 성경구절이 삿 17:6절과 삿 21:25절입니다. 두 구절의 공통점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기록을 사사기서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 기록함으로 독자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메시지가 있습니다. 막 살아서 실패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가 철저히 실패했던 시대였음을 각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6명의 사사들을 통해서 점점 더 하나님의 공동체가 영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처음 사사였던 옷니엘부터 드보라와 에훗까지 이어 등장하는 사사들은 점점 영적으로 무너지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연약함부터 입다의 무모함, 삼손의 참담함을 보았습니다. 결국 사사 시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살았던 사사들로 인하여 백성들로 막 살며 실패한 시대로 전락했습니다. 자기 멋대로의 삶의 절정을 이룬 사사가 삼손이었습니다.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던 시대가 사사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시대는 오늘부터 살펴볼 17장 이하의 시대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사사기 17-21장은 아예 사사가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불러 세우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도 없고 사사들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정치적인 리더였던 왕들도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정치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도 침묵하시고 이스라엘을 이끌 영적, 정치적 지도자도 없는 사실상 무정부적인 리더 부재의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는 시대로 전락하였는데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산 ‘랜덤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맘대로 살던 시대의 첫 번째 내용이 본문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이 미디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했을 때 우리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뒷북을 쳐서 한 몫 챙겼던 치사한 지파였습니다. 또 똑같은 방법으로 입다가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역시 마찬가지로 입다에게 대들다가 입다에게 멸문지화를 당할 뻔했던 아주 기회주의적인 지파가 에브라임이었습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미가예후’의 줄임말로 즉‘야웨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은 이 땅에 없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이 너무 좋은 반면 이 사람은 이름값을 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본문 2절 이하를 보면 미가는 자기 엄마의 재산을 도둑질(은 1,100세겔)하였는데 아마도 미가의 어머니는 상당한 재산가로 여겨집니다. 아들이 훔친 액수가 거액이었기 때문입니다. 은 천백 세겔의 가치는 당시 노예의 몸값이 20-60세겔 정도였고 노동자의 1년 수입이 5-15세겔 정도였으며 제사장들도 1년에 10세겔과 옷 한 벌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시의 노동자들의 1년 댓가와 비교해 볼 때 미가가 어머니에게서 훔친 돈인 1,100세겔은 제사장이 110년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마도 이런 재산이 일부일 정도의 재산이 있었고 이것을 알고 있었던 미가는 어머니 재산의 일부를 도둑질 한 것입니다. 도난 사실을 안 미가의 어머니는 극도로 신경질적인 그녀의 심리를 토로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돈을 잃어버린 미가의 어머니는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그 도둑놈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막상 그 저주의 대상이 된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가 자기에게 임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 돈을 훔친 자가 자기임을 이실직고하고 돈을 어머니에게 토해 놓기에 이릅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 어미 된 자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을 보입니다(본문 2-5절).
① 아들에게 책망이 아니라 도리어 복을 빌었다.(2절 하반절) ② 돈을 되돌려 받은 미가의 어미는 그 돈을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만드는데 사용하겠다. (3절 전반절) ③ 여호와께 거룩하게 헌금하겠다. (3절 중반절) ④ 아들에게 되돌려 받은 은 1,100세겔 중에 200세겔을 은장색에게 주어 신상을 만들게 하였다. (4절) ⑤ 미가의 집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신당에 만든 신상을 두었다.(4절 하반절) ⑥ 첨가하여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과 제사장들이 앞의 일을 예언하는 데 사용했던 상징적인 물건인 드라빔을 만들어 미가의 집에 있는 신당에 두었다.(5절 전반절) ⑦ 미가의 어미는 그 아들 중에 한 명을 무작위로 따로 세워 제사장으로 세웠다.(5절 하반절)
여호와께 복을 빌었다는 이유 때문에 미가의 어미가 상당한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본문에 기록된 복을 빈 내용은 당시 사사 시대에 아주 빈번히 사용되던 주술이었습니다. 진짜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복을 구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술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당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지만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도 야곱의 하나님도 모세와 여호수아의 하나님도 아니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전형적인 혼합적 종교의 일개의 미신과도 같은 하나님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잡신의 하나로 하나님으로 전락시킨 그들이었기에 아주 용감하게도 아들을 위한 신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망가진 그 시대는 그런 신상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던 무당과도 같은 은장색들이 즐비하게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일 것입니다.
더 기막힌 일은 극단적인 영적 망가짐이었습니다. 율법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죄악이 자행되었던 시기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이외에는 결코 다른 곳에서 야웨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법전의 대명제였습니다. 그러나 미가의 어머니는 신명기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며 개인의 집에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망가질 라야 망가질 수 없을 참담한 일은 그 개인 신당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위 지파의 사람이 아닌 에브라임 지파의 한 사람인 자기 아들 중에 한 명을 멋대로 안수하여 제사장을 삼는 경악할 죄악을 저질렀음을 본문 5절까지의 내용을 통해 사사기 역사가는 소상히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기도가 주술이 되어 버린 비극의 시대가 사사 시대 말년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그 하나님도 가나안의 신과 같은 잡신 중에 하나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을 버린 시대가 바로 사사 시대 말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잡신으로 전락시킨 뒤, 그 잡신을 상징하는 우상을 손으로 만들어 생계유지를 하는 종교인들이 즐비했던 시대가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피해서 자기 멋대로 자기 집에 산당을 만들어 놓고 종교적인 주술행위를 하며 복 받기를 원하던 사사 시대로 치달았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맘대로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던 시대가 사사 시대 말년의 참담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와 신앙고백인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영혼의 간절함이 없이 외우고, 도무지 하나님만이 진리라는 그 교리를 아직도 고수하느냐고 대들며 세상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대로 기독교의 배타성을 내려놓으라고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회색주의자들이 도끼를 들고 대들고 있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빙자하여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삯군목사들이 즐비하고 거기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아부하는 타락한 신자들이 즐비한 시대가 오늘인 것을 볼 때 사사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이 보입니다.
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꼭 드려야 하는가? 나는 얼마든지 내 개인의 처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항변하며 교회 공동체 예배를 통해 임하는 성도의 코이노니아를 무시하고 유린하며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탄적이고 궤변적인 명목적인 신자들이 우글대는 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의 시대입니다. 이제는 웬만큼 재정이 도는 조직 교회의 당회에서는 돈을 많이 줄 테니 우리들 말에 무조건 순종하고 고분고분 설교 행위만 할 것을 종용하여 거기에 머리를 숙이는 자만을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목회자를 고용사장으로 앉혀 교회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제 맛 대로 교회 공동체를 유린하고 맘대로 교회를 휘젓는 교회 안의 불신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오늘의 이 시대가 바로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시대, 있을 것 같지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맘대로 막 사는 시대인 현대판 사사 시대입니다.
본문 6절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랜덤의 시대 즉 막 사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그러니 세상은 질문할 가치가 없어집니다. 교회가 사사 시대를 닮았으니 세상은 대리만족을 하며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합니다. 같이 동시에 망가짐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같이 죽는 것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랜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 내 소견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소견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맘과 내 소견이 옳은 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막 살지 않기를 선포합니다. 성도는 랜덤으로 살지 않기를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막 살지 않고 하나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이란,
① 우리들에게 특별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다. ② 그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해석된 레마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③ 그 삶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방향성을 사수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방식을 내 삶의 슬로건으로 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어두움의 시대에 등을 보며 따라가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내 길이 비쳐진 빛을 보고 따라가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것이라면 맞는 것입니다. 토 달지 말고 내 소견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견대로 살아야 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랜덤 시대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사탄은 우리를 지금 그 랜덤의 한 복판에서 즐기라고 요구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 막 살 수 있는 저주 중의 저주를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막 살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시다. 이것이 오늘 랜덤의 시대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