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지명 방어 1주차 사역에 대하여 성실하게 사역하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를 지으신 주님 (복음성가) ● 오 놀라운 구세주 (찬송가 391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18:30-31 ● 제목 : 이름은 기억된다. 1) 그 동안 사사기 저자가 익명으로 숨겨왔던 청년 제사장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 ● 30절 본문: ● 할아버지: ● 아버지 그리고 본인의 이름과 뜻은? |
2) 청년 제사장이 이름답게 살지 못함으로 나타난 결과들은 무엇이었는가? ● 본문 참고 ● 30절의 참사 ● 31절의 비극 |
3) 하나님은 내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신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 요한계시록 3장에 기록된 사데 교회를 향한 지침을 참고하라. ● 설교 테마에 따라 결단하라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육체적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송은호, 서태원, 윤춘자, 김순자, 유영남, 이제면, 신태일, 김재만, 권혁순 외) ② 지명 방어 1주차 사역을 위하여 ③ 대학 진학을 위한 수험생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응답 받은 기도 제목에 대해 은혜 나누기 ②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중보하기 ➁ 수요기도회 참석하기 ③ 153비전 주일 예배 기도로 준비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4년 10월 5일 주일 예배 설교 (사사기 93번째 강해) 본문: 사사기 18:30-31 제목: 이름은 기억된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다간 흔적을 그의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랜덤으로 살아 자기뿐만 아니라 선조의 이름까지 더럽혔던 주인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동안 레위 출신의 젊은 청년 제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숨겨져 왔던 수치스러웠던 주인공의 이름이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게르솜은 모세의 차자였습니다(출 2장). 모세의 혈통 출신이 지금까지 미가의 집에 사설 제사장으로 임명되어 각종 우상을 섬기며 동시에 우상을 상징하는 각종 거짓 성물들을 모시며 영적인 일탈을 자행했다는 것은 심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요나단’이라는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인데 요나단은 보란 듯이 이름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내팽개쳐 버린 자의 삶을 산 셈이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요나단은 자기의 이름을 욕되게 한 삶을 산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셈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은 자기 이름과 선조의 가문에 먹칠을 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심각성을 고발합니다. 본문 30절을 추적해보면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요나단의 영적인 랜덤(일탈)이 자기의 대(代)에서 끝나지 않고 그의 자손들을 우상의 소굴이었던 북 이스라엘의 라이스 지역 즉 단 지파 땅에서 계대에 이르러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었다고 고발합니다. 그 시기를 해석하면 ‘그 땅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셋 2세에 의해 끌려간 후 10여년 뒤 주전 722-723년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여 역사의 지도에서 사라집니다. 다시 말해 사사기 기자의 ‘그 땅 백성이 사로잡혀 갈 때’라는 표현은 광의(廣義)로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요나단이 영적인 랜덤을 일삼으며 이름과 가문을 더럽힌 결과 그들 자손의 악행이 망할 때까지 이어졌다는 보고에 우리는 겸허해져야 합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실로는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어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사 시대의 실로는 하나님의 집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이 거주하며 우상을 섬기던 단은 하나님의 성소와는 정 반대의 영적 구심점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었던 우상의 땅, 하나님을 버렸던 불신앙의 땅, 가나안의 잡신들을 모아놓고 혼합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한 땅, 그래서 결국은 북 이스라엘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저주의 땅이 바로 단이었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해석을 기초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 적용합시다.
1. 내가 크리스천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에 따라 나의 주변 정황이 결정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요나단은 자신의 랜덤 삶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문도 피해를 입었고 궁극적으로는 민족 멸망의 원인을 제공하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창세기 12:2-3절에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서 주시는 복의 출처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하신 특별한 은혜가 아브라함 대에 선포로 끝나지 않고 그가 죽은 후 아들인 이삭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2-4절)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한 복은 그대로 이삭에게 이어져 야곱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 28:13-15절) 아브라함으로부터 3대에 이르는 야곱에게까지 그대로 약속하신 복이 계대를 잇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48:15-16절을 보면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이 계대를 통해 신실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별 볼일이 없었던 범인이 하나님의 복을 계대에 받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의 순종 이후 그는 정말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영위함으로 인해서 그의 계대에 복이 이어졌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은 우상 장사꾼의 아들로서 정말로 볼품이 없었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했지만 아브람은 하란에서 머뭇거리며 100%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려로 하란을 떠났지만 애굽으로 내려가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 뻔한 불신앙을 저질렀고 더뎌지는 것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엘리에셀로 인하여 자신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일념을 하나님께 고지함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키기도 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엘리에셀이 네 복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을 가볍게 여김으로 인해 하나님의 신실하신 축복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내와 공모하여 인간적인 씨를 요구함으로 불행의 싹인 이스마엘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형편없었던 아브람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부르셔서 그를 만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한 뒤, 그는 하나님이 친구로 부르실 정도의 신실한 순종의 사람으로 그의 이름에 걸맞은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서의 믿음을 지켜감으로 그를 통한 개인, 가정, 가문, 민족, 열방의 복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서기에 이릅니다. 그러기에 그의 자손들인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대가 연이어 승리하였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나는 나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에서 눈에 보이는 엄청난 복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넘어지거나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맥으로 해석할 때 오늘 내가 크리스천의 이름에 걸맞게 산다는 것은 나의 주변의 지체들에게 적지 않은 복을 전염시키는 일입니다. 역으로 내가 오늘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과는 전혀 관계없는 랜덤의 삶을 살게 될 때 곧 그것은 나의 자녀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지체들에게 독을 주입하는 것임을 민감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부정적인 말 한 마디가, 나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 삶의 한 행태가, 누군가를 향하여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행동하고 공격하는 나의 일상으로 인해 축복의 통로를 막고 있는 역할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내가 산 삶의 흔적대로 하나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훗날 나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6절은 초대 일곱 교회에 편지하는 글 중에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름만 살았지 실상은 죽어 있는 명목적인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선포합니다(계 3:1절 b). 이름이 죽은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런 전제를 한 뒤 하나님의 사자는 분명히 죽었지만 사데 교회 성도 전체가 다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이름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주님의 거룩한 흰옷을 입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주의 백성들이 있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자에 대하여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주님의 이 말씀은 은혜와, 용기와 격려가 됩니다.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은 자기의 책 ‘죄와 구원’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다함께 그분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날, 하나님이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 하실 날을 뜨겁고 담대하게 소망하는 가운데, 기꺼이 그 분과 함께 이 세상을 구속할 때 따르는 고통과 슬픔도 보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소망을 품고 주님의 마지막 심판의 때에 그 슬픔과 고통을 눈으로 보게 되겠지만 바로 그 때 주님으로부터 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시인해 주시는 은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이사야의 예언의 감동과 시편 기자의 고백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사 49:15-16절, 시91:14-15절).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던 이름의 사람 요나단, 그는 본인도 이름의 흔적을 남기는데 실패했고 본인으로 인하여 자손들이 망하게 되는 원인 제공자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이력을 남기는 가는 나의 몫입니다. 반드시 마지막 날,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이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성경에 이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말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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