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결혼 30주년이 되는 금년, 살림살이들을 뒤돌아보면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신혼살림이었던 침대는 거의 기적으로 남아 있는 살림 중에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거의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삐걱대는 소리로 인해 가끔 침실이 ‘귀곡산장’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냉장고는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며 엔진이 가다 서다를 반복합니다. 세탁기는 탈수를 할 때 탱크소리가 나는 것처럼 흔들립니다. 우리가 사는 집이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이 아닌 것이 천만 다행입니다. 텔레비전은 전원을 올리면 화면이 검게 나오는 것을 신호로 시작합니다. 다행히 원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볼륨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 불능의 상태를 자랑하기에 가능한 리모컨을 크게 세팅하며 시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드디어 소파를 바꾸었습니다. 아내가 약 한 달을 고민한 끝에 내린 엄청난 거사(?)였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20년 만에 개비한 것으로 추측되는 역사(?)를 진행했습니다. 겉 소재가 거의 파헤쳐졌고, 소파의 정중앙이 내려 앉아 도저히 정상적으로 앉는 것이 불편하여 리폼을 요청했더니 리폼 비용이나 새로 구입하는 가격이나 별 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안 아내가 몇 번의 주판알을 굴린 뒤에 결정한 일이었기에 항상 불편을 호소했던 저는 개인적으로 20년 만에 한을 푼 셈이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의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면에서는 더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무일푼으로 출발한 전도사의 가난한 결혼 생활은 33만원의 전담 전도사 사례라는 박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짜장면 한 그릇의 행복은 잊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농촌교회에서 단독 목회를 감당했을 때는 도무지 생활비라고 말할 수 없는 단지 형식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사례를 받았지만 아내는 불평하지 않고 버티며 사역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목회 철학 중에 하나가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그 일념을 같은 생각으로 품고 실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제천이 전국 방송에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철 아침 일기 예보 시간입니다. 철원, 대관령과 패키지로 나오는 지역이 바로 한파 극한 지역인 제천입니다. 해서 겨울나기가 녹록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16년을 살면서 집에서 별로 따뜻하게 살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의 절약 모드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헌금이 피 값임을 알기에 단 돈 1원도 아껴야 한다는 결벽증 때문입니다. 해서 피해는 고스란히 추위에 약한 나에게 돌아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목사들은 참 좋을 거라고. 교회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준다고. 심지어는 호의호식한다고까지 하며 인격 살인을 저지르는 자도 있습니다. 이럴 때 섭섭함을 말하는 것도 이제는 목사가 된 죄로 인해 말하기조차 지쳐갑니다. 그래서 바라는 한 가지, 다만 정년이 될 때까지 대과(大過)없이 마무리하고 은퇴하는 것이 남아 있는 소박한 소망입니다. 적어도 상식이 있는 목사는 막 살지 않습니다. 그건 목사의 남아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목사로 살아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20년 만에 바꾼 소파, 그게 그냥 목사의 실상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