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수요일 성서일과 묵상 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19:121-128, 잠언 1:1-7, 20-33, 마가복음 4:30-34, 시편 65:8-13 창세기 46:2-47:12 꽃물 (말씀 새기기)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마중물 (말씀 묵상) 교회에 연로하신 교우들이 더 이상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어 요양원 혹은 요양병원으로 이거한 분들이 여럿 있다. 지체들을 보면서 만 가지 생각이 든다. 자식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하여 여타 다른 질병들로 인해 더 이상 자녀 손들의 수발을 받을 수 없는 중증으로 악화되었기에 이제는 부득이 요양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더 이상 부연할 만한 입장도 아니다. 시인이 토로하기를 우리 인생이 칠십이요, 팔십이라 했는데 그렇게 말년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양시설로 입소한 어르신들을 보면 목사로 어찌 만 가지 감정이 스며 올라오지 않겠나 싶다. 또, 하나 나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더욱 어르신들의 요양원 입소가 애틋하고 아리다. 바로 앞에 선 130세의 야곱, 내 나이가 얼마 못 된다는 읍소는 그의 인생이 얼마나 파라만장한지를 에두름이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그의 고백의 단어 안에 담겨 있는 한 구절이 뼛속까지 체감되어 다가온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왜 아니 그럴까 싶다. 야곱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이 단발마적인 술회가 내게 큰 울림으로 공명된다. 인생이 파란만장하지 않다면 아마도 그는 잘못된 삶을 살았을 런지 모른다. 인생이 지난했지만 그래도 험악한 세월을 구가했다면, 그는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다만 그 험악한 세월을 이기기 위해 어떤 삶의 순환궤도를 탔는가가 관건이리라.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구분하며 노래했던 시인의 고백이 그래서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제 내 삶의 여백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험악한 세월이라고 하더라도 의미 있고, 교훈이 있는 삶으로 마감되기를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레박 (질문) 젊은 날, 시간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정말로 큰 착각 중에 착각이다. 내 남은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라고 믿을 때 그 간을 ‘엑사고라조’(건져 올림)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자세가 되어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결코 주어진 선물인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투루 쓰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내 삶의 여정 중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생의 줄타기를 하지 말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른다.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부터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자매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 지체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능력이 없어 고통당하는 것 같아 많이 힘이 듭니다. 하나님, 이번 항암치료가 마지막이 되게 하시고, 완치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