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목요일 성서일과 묵상 끊임없이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89:1-4, 15-18, 예레미야 25:1-7, 갈라디아서 5:2-6 꽃물 (말씀 새기기) 예레미야 25:3-4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마중물 (말씀 묵상) 목회 현장에서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는 신자들이 있다. 그냥 몇 몇이 아니라 즐비하다. 목사의 마음이나 생각을 무시하고 예의 없이 행하는 신자. 교회는 나오지만 도무지 성경과는 담 쌓은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자, 어리고 어려서 뭔가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 살얼음판을 딛고 있는 것 같은 신자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신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내공이 생겨서 그런지 뭐 또 그러려니 한다. 이런 경우와는 질이 다른 경우의 신자들이 있다. 목회자의 마음을 가히 없이 괴롭히는 신자들이 있다. 아는 게 너무 많아 무슨 말을 해도 다 안다고 허드레 치며 듣지 않으려는 신자들이다. 오랜 전에 친구 목사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 목사, 신자들 머리에 뭔가를 많이 알게 하지 마! 대단히 위험한 일이야. 정신 차려. 너는 고사하고 나중에 부임할 2대 담임목사를 죽일 수도 있어!” 나를 아끼는 친구의 고언으로 받았다. 하지만 친구가 이렇게 힐난하고 충고해도 나는 내 길을 걸었다. 이상하다. 근래 친구의 말이 다시 복기되는 것은 왜일까?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는데 심장이 서늘하다면 그건 내 죄가 분명하다는 상념 때문이다. 정말 머리만 크게 만든 기형아를 생산해 낸 목사로 훗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나는 어떤 말로 주님께 대답할 수 있을까 심히 고통스럽다. 아는 게 너무 많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삶이 아니라 도리어 교묘하게 담을 쌓으며 거부하는 괴물 신자들을 만들어낸 공범의 죄를 하나님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까 싶어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성서일과인 예레미야의 일성은 뼈를 때린다.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목사의 윤리적 일탈, 변질, 목사답지 않은 궤변, 삶으로 설교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목사들에 대한 염증 등등 오늘의 시대에 목사로 인해 아픔을 당한 신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것을 탓하며 끊임없이 주어지는 말씀을 거부하는 신자들의 면면은 온당하지 않다. 목사도, 신자도 끊임없이 주어지는 레마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행하는 삶은 불가능한 일일까?
두레박 (질문) 두려운 마음으로 질문해 본다. 나는 괴물을 만들어낸 목사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끊임없이 주어진 말씀에 순결한 마음으로 순종하게 해 주시고 살게 해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괴물 같은 신자를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목사로 살지 않도록 나를 쳐 복종하자. 철저히.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SNS나 인터넷 홈페이지로 세인 교회를 방문하는 지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방문하는 저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세인 교회가 되게 해주시고, 방문자들은 힘을 얻게 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