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래디컬2024-06-07 09:12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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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데이빗 플랫
ㆍ출판사 두란노
ㆍ작성일 2013-03-23 15:16:56




책소개

한국의 모 대형 장로교회 담임목사가 목회학과 신학 박사 학위 논문 표절로 인해 6개월간의 자숙과 회개의 기간으로 권고 받아 단에서 물러났다.

잠잠할 만하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부정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현직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못내 씁쓸하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고 또 알게 되어도 되뇌고 싶지 않은 일이라서 언급이 조심스럽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모교회의 씁쓸한 일의 발단은 비단 당사자가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붉어진 사건이 아님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요는 역시 파워게임(?)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장면이 있다.

1907년 평양에 임했던 성령 대 부흥을 맞이한 100주년 기념 성회에서 지금 문제가 된 교회의 원로목사께서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의 혀를 토하던 사자후이다.

사데 교회는 이름은 살았으나 죽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았는데 작금의 조국교회가 마치 사데 교회와 똑같이 병들어 있는 죽은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통회의 통곡을 외치던 설교자의 그 외침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 이 놈이 죽일 놈입니다. 바로 이 놈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한 장본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외치며 탈진 상태가 되어 입술 주변에 하얀 거품을 흘리며 세례자 요한과 같이 절규하던 노 목사님의 그 설교를 잊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 노 목사님의 리더십을 이어 받은 현직 담임목사가 학위 논문 표절이라는 윤리적 잣대에 걸려 이번에 침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질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던져보고 싶다.

왜 담임목사로 청빙하던 해에 그의 제반적인 윤리 문제를 검증하면서 그 때 문제가 되었어야 할 내용을 지금 터트렸는가? 이다.

이에 대하여 답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이번에 연루되어 있는 자들은 정치적인 게임에서의 승자승 원칙만을 인정하는 이 땅의 세속적 가치에 함몰되어 있기에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문제가 된 대형교회 목회자의 목회적인 욕심을 제동할 수 있는 매커니즘들이 자정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래디컬’ 의 저자인 앨라바마 주에 버밍엄에 소재한 브룩힐즈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데이빗 플랫의 목회적인 스펙트럼은 많은 교훈과 도전을 주기에 흡족했다.

이 책의 내용들은 요즈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급진적 제자도 (radical discipleship)와 한 맥을 이르고 있다는 평가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섭렵하면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책의 말미에 증언된 한 중산층 남자 성도의 간증이었다.

아주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가장이 브룩힐즈 교회에 출석하면서 경험하게 된 제자도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 조국교회를 향한 순교적 시대를 살고 있는 목사로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의 지론에서 ‘사람은 진솔한 복음으로 변한다.’는 희망과 소망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책값의 지불과 시간의 투자가 너무 탁월했음을 느끼게 해준 독서의 희열을 맛 보았다.

현재 4,000여명 정도가 출석하는 미국교회의 상황에서 대형교회에 들어가는 이 교회의 담임자는 목양의 틀이 주목할 만 한 이유는 그의 사역이 안주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플랫은 항상 교회의 외형적 기준의 성장과 싸우고 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현실화 된 대형교회 목사로서의 자괴감과 끊임없이 투쟁한다.

매너리즘, 안락주의, 편리함에 안주할까 노심초사하며 끊임없이 사역을 불편함과 부담감 쪽으로 올인 하며 성공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한 개교회의 2,300백만 달러의 교회 건축비와 교단 차원의 아프리카 수단의 난민 구제 헌금 5,000달러가 현 교회의 수준임을 서슬이 시퍼렇게 고발한다.

본회퍼의 외침은 ‘그리스도는 와서 죽으라’를 외쳤는데 교회는 그 반대로 ‘와서 살라’를 외치는 변질에 대하여 통곡한다.

커튼이라는 커튼은 다 내리고 예배를 드리는 아시아의 한 지하교회의 교우들과 10일 동안을 함께 보내며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한 곳에 모여 말씀 사경회를 하면서 신구약을 섭렵하는 형제, 자매들의 눈물어린 감동의 신앙 여정을 경험한 플랫은 내가 사역하는 미국의 브룩힐즈 교회의 편안함이 너무 죄송스러워 에어컨을 비롯한 모든 편의 시설들을 제거하고 오직 말씀만을 사모하는 지체들의 모임인 시크릿 처치를 만드는 무모함에 도전한다.

너무 신선했다.

그는 복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의 존재와 소유 전체를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조건 없이 내려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읽다가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졌는지.

그는 또 이렇게 갈파했다.

“가장 서글픈 기독교는 자기중심의 기독교이다.”

몇 주 전 타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후배 동역자 목사님이 찾아왔다.

목회의 본질을 위해 날마다 우는 자랑스러운 후배이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있다.

“선배님, 목회 본질을 위해서 달려가기도 시간이 없는데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싸움 때문에 한 걸음도 나아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조국교회가 이 지경일까?

아프지만 진단하자.

미안하다.

교단과는 상관이 없이 조금은 자유로운 목회를 하는 목사라서 담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리싸움 때문은 아닌가?

개인적으로 4년 전, 아주 잘 나가던 알량한 기득권의 자리를 모두 다 내려놓았다.

솔직히 두렵고 외롭고 힘들었다.

마치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뒤 그 반대의 황량했던 헤브론 광야 지역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삶으로 간증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하나님은 외롭고 힘든 부족한 사람에게 영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주셨다.

그리고 지금 최선을 다해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교회를 섬긴다.

데이빗 플랫은 책에서 세상의 가치와 맞서 싸우라고 선포한다.

결코 물러서지 말라고 권면한다.

통쾌하다.

박제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고 제자가 되라고 통타한다.

남은 것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필요한 것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한다.

십자가를 지고 가서 죽는 것은 타인의 몫이 아니라 바로 내 몫임을 그는 천명했다.

고난 주일 낮 예배 설교를 이렇게 정했다.

“내 몫의 십자가”

실로 오랜 만에 강해 설교를 잠시 멈추고 제목 설교를 종려주일에 하려고 한다.

데이빗 플랫이 준 영적 인사이트로 인해 주일 설교가 풍성해 질 것 같다.

물론 이론이 아닌 실천적 설교 수용이라는 가장 중요한 난제는 남아 있지만.


데이빗 플랫, 멋 잇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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