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2.08 셀 사역2024-04-22 15:2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삶의 여정 중에 인간의 말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위로를 받고 주었던 감동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찬송가 455장)
● 신자 되기 원합니다. (찬송가 463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5-8
● 제목 : 말이 아닌 말씀으로
1)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신앙의 명품 3요소를 견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설교에서 무엇이라고 담임목사가 해석했는지 말해 보십시다.
● 테마 첫 번째의 내용을 중심으로  

2) 설교 교훈의 두 번째 테마에서 말하고 있는 ‘주 본받기’ 도미노 현상을 말해 보자.
  

3) 성령의 응원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여정 중에 말씀의 능력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들을 나눈 후에 기도하기.
※ 방법론 나누기.
※ 합심하여 기도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회복과 사역을 위하여
  ② 사순절의 영성 훈련을 위하여(18~)
  ③ 봄 열린모임 사역을 위하여(2월22일~ 4월4일)
  ④ 대날개 축제(귀빈초청주일: 4월 12일)에 열매      맺을 영혼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① 전반기 열린 모임: 베스트 1명과 그룹 지명
    방어 대상자 2명 선정을 위해 중보하기
  ② 말씀 축제(귀빈초청축제): 4월 12일(주일)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2월 8일 주일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7)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5-8
제목: 말이 아닌 말씀으로

  누가복음 18:9-14절에 나오는 두 사람의 기도 가운데 주님이 세리의 기도를 인정해 주신 것은 그의 겸손과 진정성이 있는 참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혹여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나의 의(義)로 대변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보다 더 악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종교적 언어의 위험성은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신앙적인 언어들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위험성을 알고 말과 이론과 교리로 첨예하게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던 문제투성이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명품 신앙인으로 아가야 지방까지 폭 넓게 인정받고 있었던 명품 신앙 요소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아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견지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승리를 거두고 있었습니다(살전 1:3-4).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이러한 신앙의 요소를 지속하며 승리할 수 있었던 기초(근간)는 말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우리나라 성경 번역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어성경 본문에는 5절 맨 앞에 전치사 ‘호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의 뜻을 갖고 이 전치사를 적용하면 4-5절을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왜냐하면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적어도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명품 신앙의 요소들은 그냥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와 같은 주의 사람들이 말이 아닌 마음으로 전한 복음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 복음을 들을 때 역사하신 성령님의 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5절에 언급된 ‘능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두나메이’는 성경에서 성령의 능력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이고 큰 ‘확신’ 으로 번역된 ‘플레로포리아’는 복음을 듣는 자에게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확신을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5절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교훈에 도달하게 됩니다.

1. 명품 신앙인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초는 인간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응원하심으로 받는 말씀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방법은 성령의 응원하심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 성령의 응원하심의 방법을 찾아봅시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바울은 ‘환난 가운데에서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 때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와 응원하심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감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포함이 되었고, 경건한 헬라인들도 개종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태를 목격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시기하여 당시 회심자 중의 한 명이었던 야손의 집으로 몰려가 바울을 찾으려 하였지만 찾지 못한 분풀이로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끌고 나와 읍장에게로 데려가 고소하는 일까지 자행했습니다. 예수로 인하여, 바울로 인하여 신체적, 물질적, 가정적으로 임한 환난이 데살로니가에 휘몰아쳤습니다.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사도행전 17:6-9절).
  데살로니가 전 지역에서 핍박이 일어났음을 엿보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물러서지 않고 반응한 것이 ‘성령의 응원하심으로’ 말씀을 받은 은혜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겁박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악한 존재들이라는 누명 씌우는 말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응원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견고하며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함과 응원하심을 받는 방법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시편 119:25-26절의 시인의 고백처럼,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날마다 성령의 응원하심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세인지기가 됩시다.

2. 명품 신앙인으로 서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주를 본받는 것입니다.

  본문 6절 하반절부터 8절을 보면,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 구절에서 특히 주목할 단어가 ‘본받는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명품 그리스도인으로 서 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이 주님과 그 주님을 위해 전 삶을 헌신한 믿음의 선배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족적들을 본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신비는 주님과 믿음의 선배들의 영적 삶을 본받았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삶은 이윽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이르는 지역의 또 다른 믿음의 형제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본받는 본받음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를 본받았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본받았습니다.
  본문 6,7절에 연달아 나오는 본받았다는 단어는 각기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6절에 나오는 본의 원어인 ‘미메테스’는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7절에 나오는 ‘튜포스’는 자국을 낸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에서 공히 발견되는 공통의 의미가 ‘도장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도장을 연속으로 찍으면 모두가 동일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인격, 주님의 삶, 주님의 영적인 행위, 그리고 주님의 언어까지 주님의 전 인격의 발자취를 그대로 도장 찍는 삶이 바로 명품 성도의 삶이 되는 비결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지만 그러나 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그 길 자체를 거부하여 아예 시도도 하지 않고 가지 않은 것은 결코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뛰어난 기교를 훈련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기교만을 배우는 것으로는 또 다른 인간의 영혼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배우고 본받는 것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삶을 본받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그것은 말로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살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응원되어지는 말씀을 받고 주님이 행하셨던 족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삶을 알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그 삶을 나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사유하다 보면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분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분의 삶을 본받다 보면 반드시 우리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명품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