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겨울이 가기 전에 내가 꼭 하고 싶은 일들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 예수 닮기를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2-4 ● 제목 : 명품 교회, 명품 성도(5) 1) ‘사랑의 수고’ 라는 표현에서 사랑의 네 가지 종류를 말해보고 CS 루이스의 분류도 말해보자. 2) ‘사랑의 수고’라는 명품 교회의 테마가 말하는 영적인 교훈을 설교의 주제에 맞게 설명해 보자. 3) 명품 세인 지체가 되기 위해서 성서적 앎을 실천적 삶으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한 주간의 결단을 나누어 보자.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② 청년학생들의 동계수련회를 위하여 ③ 2월 첫날의 월삭예배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새벽예배 참석하여 기도하기 ➁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③ 셀 예배를 통해 함께 소통하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1월 25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2-4 제목: 명품 교회, 명품 성도 (5)
참 교육과 참 스승의 본은 사라지고 개인적인 판단과 이기로 인해 본말이 전도될 것을 우려하는 것은 비단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이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마땅히 가장 비인간적인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만한 신학적인 근거가 성경에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교회가 사수하려고 했던 교회의 본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질이 바로 사랑이었습니다(본문 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명품 교회로서의 두 번째 자질을 바울은 ‘사랑의 수고’라고 말해줍니다. ‘사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아가페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최고점은 ‘아가페’ 라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양한 어휘로 기록하는데, 가족 간의 사랑은 ‘스톨게’, 친구 간의 사랑(우정)은 ‘필로스’, 성경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팔레스타인과 헬라 지역에서 공용되었던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에로스’ 가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자기의 책 ‘네 가지 사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의미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선물의 사랑(Gift-love)과 필요의 사랑(Need-love)이 있다. 선물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나머지 필요의 사랑은 엄격한 의미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와 해석을 전제로 오늘 본문을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인근 지역까지 참 좋은 명품 교회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두 번째의 요소가 그들은 선물의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수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명품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교회 공동체 안에 그리고 지체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가페 사랑의 최고의 사랑을 견지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수고함’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Ⅰ. ‘사랑의 수고’ 를 했다는 것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수고’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코포스’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 살에 벤 상처’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수난 받는 종을 이렇게 소개합니다(이사야 53:3-6절).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코포스’ 즉 수고를 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맞아서 내 몸에 흔적이 남아야 할 그 상처를 자신의 몸에 남기셨고, 내가 징계를 받아 찔려야 할 못자국의 상처를 대신 받으셨으며, 내가 써야할 가시 면류관을 대신 쓰심으로 머리에 핏자국을 내신 ‘코포스’ 하신 분이십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 몸의 상처를 내야 하는 수고를 동반합니다. 내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 돈으로 하는 사랑, 힘으로 하는 사랑, 가족애로 하는 사랑, 동료애로 하는 사랑, 우정으로 접근하는 사랑, 이성적 감정으로 하는 사랑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행했던 사랑의 수고가 아닙니다. 교육의 아버지라고 하는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아이들이 유리 조각에 찔려 피를 내고 상처를 당하는 것은 곧 자기의 살이 찢기고 아픈 것과 똑같다는 아가페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에 운동장에서 유리조각을 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육인, 법조인, 의사 등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아가페 사랑의 정신을 잃을 때 비인간적인 일들을 경험하는 망가진 사회, 랜덤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gift-love인 아가페의 사랑은 철저히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동일시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코포스’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NLT 영어성경은 본문의 ‘사랑의 수고’를 ‘사랑하고 있는 행위들’ (LOVING DEEDS)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인 자크 엘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웃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 우리가 명품 교회, 명품 성도되기 위하여 이웃을 위해 나의 몸에 상처가 나도 그 일이 주님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임을 기억하고 아가페의 사랑을 행하는 결과물들을 많이 나타내십시다.
2. 아가페의 수고는 져 주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코포스’ 의 문자적인 또 다른 의미는 ‘힘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나의 힘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져 주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지는 것은 패배이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져 주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소돔 성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여섯 차례(50명→45명→40명→30명→20명→10명)에 걸쳐 간구했지만 결국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창 18:25~32). 이 기도에서 보여 주듯이 하나님은 이기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형 에서의 살해 위협에 얍복 강에서 벌벌 떨고 있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오셔서 친히 지어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 구절의 공동 번역 성경은,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패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시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사는 물거품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그래서 지십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힘의 원천으로서 모든 힘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당신의 힘을 내려놓으십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분은 아가페 사랑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론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가 아무리 항의를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이성의 방법으로 대항하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가 힘이 없어서도 아니고 인간에게 말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닌 구속사가 완성 될 때까지라는 전제 하에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단지 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롱 교수가 인용한 대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되 그 분을 이성으로, 이론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아닌 하나님의 궁극적인 본질이신 인간을 향한 사랑의 수고(코포스)에 감사하는 신실한 백성들이 되십시다. ‘윌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윌든 호수가에서 살았던 추억을 회상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재산 중에 의자 세 개가 있음을 밝힙니다. “하나는 나의 고독을 위해, 또 하나는 사교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친구를 위해.” 인간의 문명으로 인한 이기성, 욕망, 소유의 탐욕 등과 맞서 싸웠던 소로우는 그 소박한 장소에서도 잊지 않고 준비한 의자 중 하나는 친구를 위한 것이었다는 상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가페의 사랑은 나를 향한 사랑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도전입니다. 선물인 사랑의 수고는 철저하게 나 아닌 너를 향한 사랑임을 알려주는 도전입니다. 한국교회가 한국교회를 향하여 활짝 문을 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사랑의 수고는 나를 위해 져주시고 내가 새겨야 할 아픔의 자국들을 대신 새기신 하나님의 코포스였던 것처럼 이웃을 향한 코포스가 될 때만 등 돌린 이 땅의 수많은 구원 받을 백성들을 돌이키는 요소임을 명심하고 이 사랑의 흔적들을 남기는 명품 교회, 명품 성도가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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