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1.18 셀 사역2024-04-22 15:2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2015년 지역 셀에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믿음으로 잘 감당하겠습니다.’ 는 각오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찬송가 406장)
● 신실하게 진실하게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2-4
● 제목 : 명품 교회, 명품 성도(4)
1)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우들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 자기 관리의 요소 세 가지를 미리 말해 보자.
● 본문 3절을 참고하세요.  

2) ‘믿음의 역사’라는 내용을 설교 내용에 맞추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역사’라는 단어는 믿음의 ‘결과’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믿음의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참고)
● 그렇다면 믿음의 과정에서 믿음의 역사를 나타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명품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자기 결단 나누기
1) 2015년 내가 결단한 영적인 자기 관리 (반드시 할 것)
2) 부족하지만 실천하고 싶은 영적인 자기 관리 (노력할 것)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② 2015년 선정된 피선교지를 위하여
  ③ 청년학생들의 동계수련회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① 한 주간 받은 은혜 나누기
 
4) 한 주간 사역하기
  ① 새벽예배 참석하여 기도하기
  ➁ 수요 셀별 기도회 참석하기
  ③ 셀 예배를 통해 함께 소통하기
  ④ 피선교지에 연락하여 인사 나누기

5) 헌금 기도
6) 광고
7)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1월 18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2-4
제목: 명품 교회, 명품 성도 (4)

  “아침 6시에 기상, 7시에 아침 식사, 12시 30분에 점심 식사, 오후 6시 30분에 저녁 식사, 아침에 일어나면 초중고 시절에 했던 국민 보건 체조를 열심히 하고 소식과 채식을 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식사 시간은 1시간 30분, 숟가락은 절대로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듯 천천히 먹습니다.‘태백산맥’을 쓸 때 하루에 200자 원고지 35매, 이번 정글 만리를 쓸 때 25매씩 썼습니다. 정글 만리를 포털 사이트에 연재할 때 6개월 동안 하루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규칙적인 산책 때는 젊은이도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의 속보로 걷습니다. 한 번 정한 원칙은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처럼 냉정한 자기관리는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자기관리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조정래 씨와 같이 영적 자기관리의 승리를 통해 명품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후 1세기에 존재했던 교회들 중에 참 귀한 명품 교회의 모델입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믿음으로 함께 연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응원하였고 또한 그들은 참 좋은 가르침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들에게 권면하고 전해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은혜를 전제한 평강의 사람들이 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기들의 교회가 위치해 있었던 마케도니아 지방은 물론이고 그 지역을 넘어선 좋은 소문을 들려주는 명품 교회였습니다.
  이 편지의 발신자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응원자 3명 즉 바울, 실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중보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 이유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들을 주고 있습니다(본문 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을 비롯한 실라와 디모데가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나타나는 영적 자기 관리의 3가지 승리 요건을 주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내용입니다. 3절 후반절에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는 구절에서 선명해 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두 명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의 영적 관리에 대하여 감사하며 주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주변에 있었던 많은 지인들에게 선한 영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만이 갖고 있었던 세 가지의 위력적인 자기 관리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의 요소는, *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라고 번역된 ‘역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곤’은 ‘행위, 혹은 행동’이라는 명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믿음의 역사’라는 개념은 믿음으로 나타난 결과의 표현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일체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비극의 시작은 언제나 결론을 중요시 여기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이러한 해석은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만을 중요시 여기는 풍토이다 보니 과정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만 좋다면 그 까짓 과정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왜곡을 부축입니다. 과정에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결과적으로 샴페인을 터뜨리면 된다고 부화뇌동시킵니다.  세속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세속의 삐 뚫어짐을 따라가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하는 영적인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모로 가지 않고 바르게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손해보고 느리게 가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길을 똑바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바르게 행한 일들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믿음의 역사란 진리를 향한 신실함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신실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진리에 대하여 신실하게 접근하는 자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려고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하여 신실한 자는 결코 세속의 방법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 진리에 부합되게 살려고 합니다. 결론의 성공을 위해 과정을 가볍게 여기는 실례를 성경에서 찾는다면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은 제사장 사무엘을 대신하여 사울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영적 월권 행위였습니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사울이 말하는 내용이 이론적으로 아주 무모했다고 보기는 무리수가 있어 보입니다.
  블레셋이라는 만만치 않는 주변국이 병거 30,000대와 마병 6,000명으로 중무장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한 상태였습니다. 잘못하면 누란의 위기에 나라가 무너질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정이 긴박한 데 위기 극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할 사무엘은 지금 제사를 드릴 길갈에 오지 않고 7일 동안 감감 무소식이었고, 사울의 군대는 블레셋으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탈영하는 군사들까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정황을 볼 때 더 이상은 사무엘을 기다릴 수만 없다고 판단한 사울이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부하에게 가져오게 한 후 본인이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마침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사무엘이 길갈에 도착을 해서 보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흔적을 보았습니다. 순간 경악하여 사울에게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사무엘의 이 질문에 사울이 답변한 내용이 사무엘상 13:12절입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지 못하여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불신앙의 죄를 지은 뒤에 에둘러 항변하는 것이 사울의 말과 틀리지 않음을 봅니다. “하나님,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이번에 부득이하게 일이 이렇게 되어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이 항변에 대하여 사무엘의 단죄함이 사무엘상 13:13 전반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망령되이 행함이라는 것은 영적인 자기관리에서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한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결과의 승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가? 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완성했는가? 의 결과를 하나님은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네가 나에게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의 과정을 눈 여겨 보십니다.
  믿음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현존 앞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의 과정에서 신실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의 승리만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 대박을 얻기를 기다리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역사란, 내가 진리의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께 신실하게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는 분명히 영적인 자기관리에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모든 예술은 상투성과의 싸움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의 싸움이라는 말이다.” 라는 촌철살인을 통해 문학을 하는 세속의 승리자도 이런 자존감으로 사는데 구도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투적인 세속적 믿음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현존 앞에서 어느 경우이든지 상관이 없이 신실하게 바른 믿음으로 반응하며 말씀에 비추어 똑바로 걷겠다는 믿음의 아름다운 자기 관리들이 있음으로 명품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서 가는 세인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