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나는 큰 아들이었습니다.” “내게는 작은 아들, 큰아들이 공히 같이 존재합니다.” “작은 아들처럼 강력한 후폭풍을 경험하더라도 아버지가 만지시는 그 역동적인 충격과 감동을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냥 큰아들이 아니라 편파적인 잣대로 호불호를 가리고자 하는 바리새인과도 같은 큰아들이었습니다.” “나는 헨리 나우웬이 보려고 했던 렘브란트의 영적인 시각으로 독서를 하다가 나우웬이 느꼈던 그 예민한 영혼의 촉수에 울컥했습니다.” “유익이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이해가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아버지의 품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등 독서 후담들을 나누면서 눈물도 같이 흘리고, 지체의 수고에 박수도 보내고 의미 있는 독서 나눔을 가졌다. 이렇게 독서여행 반의 나눔을 듣고 있는데 한 지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큰아들이었고, 또 어떤 때는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은혜롭게 다가온 독서 여행의 백미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감동이었습니다.” 독서반을 이끌고 행복한 여행을 하던 순간, 지체가 그렇게 나눌 때 엉엉 울 뻔했다.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 편』 독서여행의 총 정리 갈무리를 하려고 했던 멘트를 반원 한 명이 먼저 고백한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헨리 나우웬이 렘브란트의 명작을 세밀히 검토한 뒤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솔자였기에 교통정리를 하려 했던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지체 한 명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했는지 행복의 극치였다. 모르긴 몰라도 나우웬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신앙인은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계산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품음(embracing)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에서 김기석 목사가 예수님을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었다. “끌어안을 때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사람” (차정식, 김기석 공저, 『예수, 사랑 먼저 행하고 먼저 베풀어라』, 21세기 북스, 49쪽) 아버지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여행에 함께 해 준 10명의 지체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독서 여행을 행복하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독서 반원 중에 가장 연장자인 83세를 호령하는 권사님이 봉고차 안에서 라이브 목소리로 들려준 ‘넬라판타지아’는 천국을 여행하도록 해 준 압권이었다. 세인교회 독서여행은 이런 보너스가 주어진다. (ㅎㅎ) 3차 사역은 단풍이 절정에 이를 어느 가을 날, 아름다운 장소(추후 공지)에서 나희덕 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 지성사 간, 2019판으로 여행할 예정이다. 초 교회적으로, 초 교파적으로 여행한다. 이 여행에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모든 분들을 초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