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금요일 성서일과 묵상 전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85:8-13, 열왕기상 18:17-19, 30-40, 사도행전 18:24-28, 시편 105:1-6, 16-22, 45b 창세기 36:1-8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18:24-26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크로스웨이 성경공부 반에 등록한 교우들에게 강의하는 어간, 이런 강의를 했던 적이 있다. 세 가지 죄가 있다. ⓵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는 죄 ⓶ 알면서도 가르치지 않는 죄 ⓷ 배웠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죄 성서일과를 읽다가 이 강의안이 생각났다. 지성적 능력으로 보면 아볼로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비교하는 것은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이 되지 않는 비교다. 주후 1세기 알렉산드리아 학파라고 하면 최고의 지성을 만들어내는 요람이었다. 헌데 고린도에서 장막을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현장 노동자와 지성의 비교를 운운한다는 것은 아볼로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오늘 성서일과에서 지성인 누가는 놀라운 일을 보고한다.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볼로는 주의 도를 배웠다. 그가 배운 주의 도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다는 반쪽의 복음이었음을 누가는 보고한다. 지성인었던 아볼로가 왜 예수의 도에 대해 접근하지 못했는지는 성경의 내증이 침묵하고 있어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아볼로가 알고 있는 십자가의 도는 부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린도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중에는 아볼로를 따르던 분파주의자들이 생겨났을 정도로 아볼로의 종교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런데, 오늘 성서일과는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건너와 사역하던 아볼로의 증언을 우연히 들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를 불러 그의 부분적 복음을 바로 잡았음을 알려준다. 26절 성서정과에서 보고한 그대로 두 부부가 아볼로에게 알려준 것은 ‘더 정확한 하나님의 도’였다. 고린도전서에 있는 말씀으로 적용하자면 ‘십자가의 도’였음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지성적인 능력에 있어서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대상인 낯선 부부에게서 복음의 도를 전수받은 아볼로의 태도다. 오늘 성서정과는 부부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해들었던 아볼로가 이후 아가야로 다시 내려감을 보고한다. 소위 말하는 에베소 공동체가 아가야로 아볼로는 파송하는 모양새였다. 이 현장에서 에베소 교회 공동체의 형제들이 아볼로를 축복하며 파송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왜? 아볼로가 본인의 지성적 능력을 방어기제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얕잡아 보거나 경시한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영성의 능력으로 전하는 복음을 수용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전율하는 감동이 있다. 지성의 능력을 영성의 능력이 압도했다는 감동이다. 나는 아볼로의 겸손에 대해 무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동시에 영성의 능력으로 아볼로라는 거대한 담에게 주눅 들지 않고 복음의 도를 전한 브리스길라 부부에게도 같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성과 영성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대표적인 모범 케이스를 성서일과로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어 감사하다. 레마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전율하게 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지성을 무기로 영성을 무시하고 있는 목회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종은 지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지성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접근하게 하는 너무 귀한 도구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심하게 하옵소서. 지성을 무기로 영성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교만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제나 영적 균형을 주십시오. 저는 지성적 영성을 사모합니다. 주님, 그렇게 인도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를 최후의 보루로 인도하는 영성을 잃지 않는 목사로 살기 위해 오늘도 나를 철저히 쳐서 복종하는 날이 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젊은이들이 수련회의 현장에서 부대끼고 있습니다. 그 현장이 다메섹 도상이 되게 하옵소서. 몽순이, 몽돌이를 생산하는 현장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들을 만드는 현장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