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7.19 셀 사역2024-04-22 15:32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 휴대폰의 단축 번호 1번은 누구입니까? (휴대폰이 없는 지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일 순위 말해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여기에 모인 우리 (찬송가 620장)
● 은혜로다 주와 함께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25-28
● 제목 :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는 에필로그
1) 중보 기도자가 되라고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말한 이유를 나누어보자.
● 설교를 중심으로
● 1)
● 2)  

2) 거룩하게 입맞춤을 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오늘의 의미로 적용해 보자.
● 설교의 테마를 참고하자.
● ‘판타스(모든)’의 의미를 살려 재해석해 보자. (나와 너, 나와 그) -마태복음 5:46-47절을 참고.  

3) 편지를 읽어주라고 명령한 바울의 단호한 의지천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설교의 테마를 참고하여 오늘의 의미로 말해보자.
• 은혜를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교 내용 중에서)
• 지난 주간 내가 교우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간증이나 나눔 풀어 헤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여름성경학교(24-26일)와
    학생부 수련회(27-28일)를 위하여
  ②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정승민)
  ④ 셀원들을 위하여
  ⑤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7월 19일 주일 낮 오후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25번째 강해)
제목: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는 에필로그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25-28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기초석은 사랑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3대 감독이었던 사도 요한은 이미 에베소에서 사역을 할 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말도 어눌하고 기력도 없는 노인 요한은 에베소 교회의 지하 예배당에 둘려 모여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매 번 행했던 설교가 “서로 사랑하라”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7-8절).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에베소 교회의 한 젊은 신자가 “사도님, 왜 매 번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위기는 예수님의 명령을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초래되었습니다.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근간이 사랑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바울은 성경이 말하는 이 사랑을 전제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애정의 편지를 마감하는 에필로그에서 몇 가지를 당부함으로 이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랑이라는 대전제를 근저에 두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당부한 내용을 살펴 봅시다.

1) 중보 기도자가 되라는 권고입니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본문 25절). 바울은 이 기도의 부탁을 어린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 실라는 고린도에 있습니다. 고린도는 영적인 전쟁터 중에서도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바울이 이 전쟁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어린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에 부탁한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① 어린 신자들이기에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기도의 능력을 기대했기 때문이고, ② 중보 기도야 말로 신앙의 성장을 가져오는 아주 중요한 영적 요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을 하는 어간, 베레아로 쫓겨났습니다. 베레아에서도 역시 사역을 하다가 유대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다시 쫓겨납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뱃길로 4일 거리인 먼 땅 아덴이었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고전했습니다. 헬라 철학자들과 로마 황제 숭배자들과 이방 종교에 흠뻑 빠져 있는 자들과의 한 판 승부가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치고 지친 영적인 상태로 아덴에서 다시 고린도로 어쩔 수 없이 피신하였을 상태가 사도행전 18장으로 추측됩니다. 이 때 바울은 혈혈단신이었고 그러던 중 고린도에서 같은 업종을 하던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어 그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사역의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의 후원과 지원은 천군만마를 얻는 것 같은 힘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도착하여 또 다른 응원자를 얻습니다. 이제는 팀을 형성해도 될 만한 협력자가 생긴 것입니다. 이 와중에 고린도로 내려온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의 승리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편지를 쓰는 전서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그들을 호칭한 것입니다. ‘아델포이’ 즉 ‘형제들아’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헬라어 ‘아델포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린 신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을 함께 나누는 가족, 형제로 지칭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 만한 능력이 있을 것을 인정하고 또 그 인정함을 토대로 더 많이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아, 이제는 여기 고린도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 바울, 디모데, 실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고.
  중보기도는 위력도 나타나지만, 또한 중보기도를 하는 자는 이 기도를 통해 본인의 신앙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아주 단단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 중보 기도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게 될 것이기에 그들의 신앙의 얼마나 위력적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구절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에스겔 22:30). 에스겔을 통해 하신 말씀의 의미는 누구든지 내 마음에 합당한 자 한 명이 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보하면 내가 이 땅에 내리려고 한 멸망을 거둘 수도 있는데 그 한 사림이 없어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는 주님의 탄식입니다. 중보 기도자는 그 기도를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응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신앙성장을 가져오기 위해 중보자가 되어달라고 기도의 부탁을 권고합니다.

2) 영적인 박수를 보내는 공동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본문 26절). 초대교회는 이 문안과 인사법이 예배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회중의 지체들은 성찬을 맞추고 나면 일일이 거룩한 키스를 함께 나누는 것이 예배의 순서였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을 하고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영적으로 박수를 보내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박수는 심증적인 응원입니다.
  26절의 본문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모든’ 으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스’입니다. ‘판타스’는 예외가 없는 모두를 의미하는 부사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는 에필로그의 두 번째는 핵심적인 가치는 생각이 다른 자도 품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노구의 몸을 이끌고 외쳤던 단 한 마디의 설교는 ‘서로 사랑하라’ 였습니다. ‘서로’ 는 ‘너와 나’를 포함한 ‘나’와 ‘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외, 열외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 뼈에 담아야 할 교훈이 마태복음 5:46-47절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문안은 나와 생각이 다른 자와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에필로그의 두 번째 권면입니다.

3) 영적인 은혜는 함께 공유하고 나누라는 교훈입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본문 27절). 바울은 모든 형제에게 본인이 쓴 이 편지를 지체들에게 읽어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읽어주라는 권고에 앞서 주를 힘입어 명령한다는 문구를 달고 있다는 점입니다. 명한다는 말은 상당히 강한 어법으로 주종 관계에서나 통할 법한 어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한 것은 아마도 이 편지의 중요성과 또한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편지를 읽어야 하는 당위성, 그리고 이 편지를 읽었을 때에 결과적으로 나오는 유익성 등 이런 자신감이 있기에 바울은 이렇게 강한 어조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 중에 이 편지를 제일 먼저 받을 수신자에게 종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자신의 편지를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 모두에게 읽히라고 명한 것은 바울 자신의 성장과 또한 그 은혜를 함께 공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은혜는 함께 공유하고 나누어야 함께 성장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가 건강해집니다.

  바울은 안질 때문에 눈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글을 쓰지 못하고 13개의 서신 서를 대부분 대필하는 서기가 있었습니다. 마치 로마서를 더디오가 쓴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전서도 매일반입니다. 학자들은 27절까지는 대필자가 이 서신 서를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8절은 바울이 직접 붓을 들고 불편한 육체를 들어 친필로 기록하였다고 말한 데 큰 이의가 없습니다. 바울이 직접 붓을 들어 쓴 마지막 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입니다. 즉 축도입니다. 배로 4일 길 떨어져 있는 고린도에 있는 바울은 그 먼 곳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하는 지체들을 향하여 진정성이 있는 사랑의 마음을 담보하여 다음과 같이 복을 빌었습니다. 나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가 데살로니가 형제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고.
  우리 교회, 세인교회가 바울의 축도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