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7.12 셀 사역2024-04-22 15:31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 인생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말과 도움과 기타 내용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585장)
● 다시 일어섭니다.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23-24
● 제목 : 전인격적인 승리
1) 히스기야 왕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하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과 그 결과 그리고 교훈을 말해보자.
● 원인 - 설교를 중심으로 말해보기
● 결과 - 열왕기하 20:17-18절을 참고하라.
● 교훈 – 각 자의 생각을 설교에 비추어 나누어 보자  

2) 주님이 주시는 전인격적인 승리를 얻기 위해서 성도가 해야 할 일을 설교를 통해 나누어 보자.
● 전인격적인 승리의 뜻 – 23절 본문을 참고하라.
● 전인격적인 승리를 하려면? - 설교의 테마를 기억하자.
● 전인격적인 승리의 참 된 적용은? - 유진 피터슨의 번역과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의 후속 행동을 참고하라.  

3) 오늘 우리들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는 방법과 그 때 반응하는 것을 각 자의 영적 방법을 진지하게 나누어 보자.
•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는 방법들
• 반응하는 각 자의 영적 태도들을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7월의 다음세대들을 위한 여름사역을 위하여
  ②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④ 셀원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7월 1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24번째 강해)
제목: 전인격적인 승리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23-24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괘념하지 말고 힘을 내라는 바울의 권면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1:2-5절). 우리들의 후원자이시고 지지자이시며 지혜를 공급해 주시는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승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나름 승리하고 있는 지체들을 향하여 선포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궁극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흠이 없이 영과 육이 보전되기를 원하는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 당신의 백성들이 임할 때까지 혹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다시 보내실 때까지 당신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혼과 몸이 흠과 티가 없이 보존되기를 기대하고 소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주님의 마음은 아무리 소망ㅎ여도 그리 쉽지 않다는 장탄식이 들어 있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없는 사탄의 공격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멀어지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아쉬움의 토로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4절). 이렇게 된 이유는 영적인 넘어짐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나름 파란만장한 위기를 잘 극복한 자였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을 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위기를 벗어났고, 이후에 본인이 불치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뒤에도 하나님께 영적으로 씨름을 하여 그 위기를 극적으로 벗어난 자였습니다. 그는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괜찮은 인생 여정을 보낸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누란위기도 극복되고 본인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선고의 위기도 신앙으로 유예되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히스기야는 국고와 재산도 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국력도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히스기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마침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바벨론의 왕인 브로단발라닥이 화해와 병문안 차원으로 위장시켜 요즈음으로 말하면 친선대사들을 히스기야에게로 보낸 것입니다. 갑작스런 이웃 나라 그것도 경쟁하고 있는 바벨론 왕의 대사들을 맞게 된 히스기야는 본인의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교만하여져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왕궁의 내탕고로 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명들을 보여줍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교만이 충천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이사야 선지자는 왕의 교만함과 무모함을 지적하면서 오늘 이 내탕고에서 보여준 모든 기명들은 바벨론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며 왕의 아들 중 한 명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내시가 될 것이라는 징계를 내립니다.
  열왕기하 20:17-18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역사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성취되었고 훗날 그의 후손의 유다는 70년 동안이나 바벨론과 바사의 통치하에서 신음하게 되는 비극을 경험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아픔에서 배우는 것은 영적인 넘어짐에 민감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영적인 넘어짐과 무너짐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처음 사랑을 상실하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무너짐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본문 24절을 보면,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영적인 민감함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이 소개됩니다. 미쁘신 하나님입니다. 믿음직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들이 영과 혼과 몸이 흠이 없이 티가 없이 보전되도록 해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 확신은 24절 하반절에서도 얻습니다.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다른 존재가 아닌 미쁘신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고 했습니다. 나의 주군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꼭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혼과 몸 즉 전인이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믿음은 분명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전인적으로 승리하게 만드시는 선제 조건 그것은,

※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부름에 대한 반응 즉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본문 24절). 이 구절이 아주 중요한 까닭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반응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전인적 승리를 이끌어 주는 전제조건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은 완전히 의지할 만한 분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
  두 문장으로 나누어서 번역된 이 구절의 은혜가 더 선명해집니다.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하여 전인적 승리를 확보해 놓으신 상태이기 때문에 승리를 이루어 주실 것임을 분명히 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으니 그 분이 이루실 것이라는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따 놓은 당상의 승리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부르신 그 부름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부름의 반응은 ‘하나님은 완전히 의지할 만 한 분’으로 인정하는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면 그 부르심은 분명히 무슨 뜻과 의미가 있기에 부르셨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과 조명을 주셨다면 그것은 나에게 합당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전제 의도이심을 100% 신뢰하는 것이 부름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앉은뱅이의 인생에 있어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을 경험한 이 사람이 너를 이렇게 고쳐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의 적지 않은 압박을 받고 자기를 고쳐 준 사람의 이름을 모르던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그들을 붙들었다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행 3:11).
  ‘붙들다’는 이 단어의 의미는 헬라어의 원어적인 의미가 ‘끌어안다’라는 의미입니다.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끌어 안을 수 있는 전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 때 가능합니다. 신뢰하지 않는 자와 심장과 심장을 마주쳐 안을 수 없습니다.
  나를 전인적으로 승리의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주님을 앞에서 끌어안읍시다. 나의 영과 혼과 몸이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가 흠과 티가 없이 보존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그 분을 앞에서 안읍시다. 그 분을 앞에서 안는 것이 바로 그 분을 100% 의지할 만한 분임을 고백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의 심장을 내어드려 그 분이 전인적으로 나를 승리하게 만드는 삶의 주인공들이 됩시다.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라는 책에 기록된 영국이 낳은 위대한 신학자인 PT 포사이스의 글 중에 “기도의 응답을 받은 뒤에 하나님께로부터 이제 그토록 원하던 것을 받았으니 만족하는가? 라는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부끄럽고 창피한 일은 없다.”라는 말처럼 이것이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기도의 응답을 받은 자는 전혀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증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전인격적으로 부르셔서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는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날마다 경험합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이 부르시면 그 부름이 기도의 응답이든, 성령의 조명이든, 말씀의 선포이든, 예언이든 상관없이 그 분의 부르심을 100% 확신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함으로 전인격적인 신앙인의 승리를 간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