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6.28 셀 사역2024-04-22 15:31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근래 기뻐했던 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했던 일, 찾아 감사했던 일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가 370장)
● 항상 기뻐하라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제목 : 성도로 살아가기(2)
1)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데살로니가 교회의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설명해 보자.
● 부유한 자들의 상태
● 서민들의 상태
● 기뻐해야 하는 이유  

2)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면에 담긴 영적인 뜻은 무엇인가?
● 빌립보서에 나타난 바울의 고난과 베드로의 실패담을 근거로 말해보자.
● ‘쉬지 말고’의 영적인 해석  

3)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교훈을 설교를 참고하여 말해보고 시행을 결단해 보자
※ 설교에서 선포된 범사에 감사하는 교훈의 진의
※ 시행을 결단해 보기 (예; 감사의 내용 5가지 이상씩 찾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7월의 다음세대들을 위한 여름사역을 위하여
  ②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④ 셀원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6월 2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22번째 강해)
제목: 성도로 살아가기(2)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성도로 살아가는 정체성 확보를 위해 먼저 두 가지로 ‘가르치는 자를 존귀하게 여기고, 말씀하신 말씀의 방향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세 번째의 정체성은,
3)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을 갖고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16절). 바울이 기쁨을 요구한 까닭은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신앙의 본질을 체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주 안에 있는 것이 기쁨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부유한 도시로서 로마의 황제들로부터 적지 않은 경제적 혜택을 받았던 도시였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후계자였던 티베리우스가 정권을 잡을 때 그들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도시였기에 항상 데살로니가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자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황제들의 지원과 혜택을 받아 굳건한 부를 향유하고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 다른 여타 도시들에 비해 부유한 특권층들이 많이 거주하던 도시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서민층에 있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더욱 많은 박탈감 속에 살아야 했고 상대적 빈곤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는 세속적 성공의 잣대입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맘몬이라는 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었던 주후 1세기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민층에 있었던 자들은 특별한 혜택을 받아 계속해서 부를 쌓아가는 자들을 부러워하며 본인들이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나름의 박탈감과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신앙의 출발을 다짐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그래서 도전적입니다. 세속적인 만족에 눈을 돌리지 말고 주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선포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 말은 주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임을 단호하게 선언 한 것이기에 도전적입니다.
  16절의 말씀은 단독적인 말씀이 아니라 18절 후반절과 연계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아 항상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기쁨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기뻐해야 할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있었던 감옥터는 뱀 굴이었고 도무지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억울했을 것이고 신체적인 위협이 가득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험악한 감옥에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행 16:25).
  바울은 빌립보에서처럼 감옥에 갇히는 일들이 다반사였습니다. 그의 감옥 생활의 절정은 아마도 로마에서의 구금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은 빌립보서를 써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놀랍게도 기쁨이었습니다. 시대의 배경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고 하는 소문이 돌자 바울로 인해 항상 2인자에 자리에 있었던 자들이 바울의 구금에 쾌재를 부르며 내심 좋아하는 분위기로 빌립보 교회가 돌변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여러모로 바울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 교회 교우들에게 고백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느니라”(빌립보서 1:18절).
  그리고 또 이렇게 역설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 4:4-5절).
  바울이 이렇게 놀라운 고백과 선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영적인 근본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고 감옥에 있었던 초창기 사역의 현장에서나 그의 사역의 말년 순교를 앞두고 로마의 감옥에 구금되어 있을 때나 바울에게 변하지 않은 영적인 자세는 항상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여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답게 살아가기에 합당한 자들이 됩시다.

4) 주 안에 있는 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 상태를 유지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도에게 기도는 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선포는 시간적인 범위를 두는 것보다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가 기도가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지체들 중에 바울을 염려하는 지체들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사도적 위상을 흔들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 동역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서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절).
이 말씀의 기초는 기도의 제목을 국한하지 말 것을 분명히 하면서 기도의 범위를 ‘모든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범사가 기도의 대상이라면 항상 성도가 긴장할 것은 기도의 시간이 아니라 상태임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긴장 상태는 범사의 모든 시간입니다. 범사의 모든 시간이 기도의 상태라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은 이해가 됩니다.
  특별히 어린 교회 성도들이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은 유대종교주의자들의 공격, 황제 숭배 사상, 카비루스 혼합주의, 다신교적인 여러 이방 종교의 팽배함이라는 만만치 않은 영적 도전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무너지는 순간 영적으로 패배할 것이 분명했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인 태도인 기도하는 자세의 상태를 유지할 것을 종용하며 권면한 것입니다.
  “근신하여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절), 이 말씀을 주목해 보면, 베드로는 자신의 삶의 고비 고비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탄의 공격에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마 16장). 그래서 자신의 서신서에서 ‘근신하여 깨어라’ 어법을 여러 번 사용한 것입니다(베드로전서 4:7절). 우리가 입으로 하는 기도의 삶을 뛰어넘어 전 시간의 삶 속에서 삶이 기도인 태도가 된다면 우리는 항상 기도하라는 명령에 부합한 성도로 살아갈 것입니다. 삶의 태도가 기도하는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 자는 결코 교만해지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항상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겸손하게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로 살아가는 네 번째의 지혜입니다.

5) 범사에 감사를 찾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본문 18절 전반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할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 두 번씩이나 보낸 이 선교헌금을 극찬합니다. 내게 선교헌금을 보낸 교회는 너희들뿐이었다고 말입니다(빌 4:16-19절).  당시 마게도냐 지역에서 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 빌립보 교회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조그마한 교회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데살로니가라는 대도시에서 고난 중에 사역을 할 때 바울을 도와 선교 사역비를 에바브로디도 편에 두 번이나 보내준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당시 조그마한 가정 공동체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의 교우들이 바울에게 이런 감동적인 사역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울은 그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공동체로 성장해 줄 것을 중보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빌 4:17). 그런데 예기치 않게 빌립보 교회 공동체에서 두 번씩이나 바울의 사역을 돕는 선교비를 보내준 것에 대하여 바울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후배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준 빌립보 교회 지체들의 흔적은 그 기초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 권면에서 놓치지 말아야 은혜가 감사는 모든 일에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시비를 가려서 감사하는 것, 감사할 조건만 감사하는 것은 성경적 감사도 아닐뿐더러 성도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조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가르치는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며 성육신으로 말씀하신 방향성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주 안에서 끊임없이 기뻐하고, 우리들의 삶이 기도가 되게 하며, 감사를 찾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자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