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평상시나 혹은 힘들 때 나에게 제일 위로가 되는 것을 나누어 봅시다. | 경배와 찬양 (WORSHOP) ●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찬 183장) ●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도행전 1:1-8 ● 제목 : 바람이 불고 있습니까? 1) 다락방강화 사건(요 14:16)을 통해 ‘보혜사’가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명해 봅시다. ● 고린도전서 12:3 (보혜사): ● 데살로니가후서 2:7-9 (막는 자): |
2) 사도행전의 시작과 승리가 되며 오늘 우리의 공동체와 개인의 삶이 경험해야 하는 이것을 설교의 테마를 중심으로 말해 봅시다. 3) 성령의 바람에 순응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아직 성령의 바람을 맞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나누어 봅시다.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안식 월 동안의 사역을 위하여 ②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③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④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⑤ 지역셀 사역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5월 24일 성령강림주일 일일부흥회 설교 제목: 바람이 불고 있습니까? 본문: 사도행전 1:1-8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보혜사(돕는 자, 위로 자, 지탱해 주는 자, 대신해서 말해주는 자 등)의 역할을 완벽하게 감당하신 후 때가 되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실 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보혜사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4:16절).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제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들에게 보내줄 것인데 이 보혜사는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보혜사이셨던 예수님은 한시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지만 두 번째 오시는 보혜사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유익합니다. 두 번째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이 시기는 최고의 믿음의 전성기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철저하게 성령께서 이끄시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믿음의 가장 아름다운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영적으로 더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시대임에도 흑암의 시대가 된 까닭은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사상과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의 바울의 선포는 성령님이 통치하시는 이 시대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또한 데살로니가후서 2:7-9절을 보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스며든 거짓 교사들이 선전한 주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는 말에 주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전에 나타나는 일들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주의 재림 전에 주님을 주로 고백하는 신앙에서 배도하게 하고, 떠나도록 하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는데 이 때 ‘막는 자’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믿는 자들을 배도하게 하는 일체의 일을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막는 세력이 바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이 막는 자이신 성령께서 역동적으로 활동하셔서 사탄의 공격을 방어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막는 자가 이 땅에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에는 성령께서 이주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는 절망이 됩니다. 성령께서 이주하시면 성령의 내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막는 자이시면서 보혜사이신 성령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도록 성령 하나님의 품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시작은 성령 하나님께 위임한 사역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본문 2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위임하신 그 성령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사역이 시작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4-5절을 보면,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도행전의 시작은 성령으로 시작되고 사도행전의 주인공들 역시 성령으로 시작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오순절 날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됩니다(사도행전 2:1-4절). 이 구절이 근거가 되어 교회력 가운데 성령강림절이 탄생했습니다. 이 성령의 바람을 경험한 제자들은 비겁자, 배신자, 도망자의 신분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유럽, 로마에 까지 가서 주의 복음을 증거 하는 제자들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었고, 많은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1장부터 28장까지 성령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성도의 승리는 성령의 바람을 맞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교회” 자신의 책에서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아래 있어야 한다. 오순절주의 교회의 큰 장점은 교회가 성령의 능력 아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점이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발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른 교회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는 교회이고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메마른 교회가 되고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의 삶도 당연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정말 성도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이 성령의 바람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성령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불고 있는 성령의 바람을 순응하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1. 여호와를 인정하는 물결이 온 교회와 성도에게 임하게 됩니다(합 2:14)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와 성도의 특징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물결로 가득 찬다는 희망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큰 하나님의 비전을 느끼게 되는 대목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의 강림이 있은 후에 교회 공동체는 형성되었고 이후의 교회 공동체는 매우 희망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바벨탑 공동체와 정 반대였습니다. 사도행전 2:42-47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초대교회는 7가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①스스로 자신을 나타내려는 공동체가 아니라 자연히 세상에 알려진 공동체 ②인위적인 모습으로 하나로 묶으려고 했던 공동체가 아니라 자연히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었던 공동체 ③모든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 깊은 사귐이 있었던 공동체 ④어떤 강압적인 제도와 법의 구속력이 없이 서로 기쁜 마음으로 상통했던 공동체 ⑤사회적인 신분에 따른 계급이 없었던 공동체 ⑥권력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었던 교회 공동체 ⑦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희망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이러한 7 가지의 역사가 나타난 초대교회를 말 할 때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물결이 온 교회에 가득했고 온 성도에게 가득 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는 경우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좌우하는 교회가 될 때입니다.
2.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오면 교회와 성도는 영적인 권능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교회와 성도들에게 권능이 임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강력한 주의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뒤나미스’는 강력한 폭발력이 있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역사를 보면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폭발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한 전기를 기록한 기사입니다.(베드로: 사도행전 2:32-36, 바울: 사도행전 17:3)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영혼구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영혼구원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바울의 무리를 경계하던 무리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에도 이르렀도다” 성령의 역사와 바람이 불면 성도와 교회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권능을 얻게 됩니다.
3. 성령의 바람이 불면 교회와 성도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증인이 됩니다.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증인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한 순교자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인’이라는 헬라어가 ‘순교자’ 라는 단어의 의미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성령을 받으면 주님을 위한 순교자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순교자적인 삶이란, “증인의 삶은 평생 섬김을 실천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철저히 섬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모새골 교회 임영수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 자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자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성도로 불리는 이유는 예수 때문에 구원 받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삶을 새롭게 살기에 그리스도인 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나는 성령의 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나는 영적으로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적 상황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사탄의 권세는 주 앞에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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