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부모님께서 평상 시 내게 하셨던 잔소리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잔소리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어머님의 넓은 사랑 (찬송가 579장) ● 어머니 마음 (아름다운 가곡)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잠언 23:22 ● 제목 : 어떻게 보답할까? 1)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잠언 기자의 경청의 의미를 쉐마와 관련하여 나누어 보자. ● 본문의 ‘경청하라’ 와 신명기 6:4절의 ‘들으라’ 를 비교하여 설명해 보자 ● 영적인 교훈을 첫 번째 테마와 연관하여 나누어보자. |
2) 늙은 어머니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본문의 말씀을 설교와 연관하여 설명해 보자. ● ‘경히 여기지 말라’ 는 본문의 말을 유진 피터슨은 무엇이라고 해석했나? ● 영적인 교훈을 두 번째 테마와 연관하여 나누어보자. |
3)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효에 관한 담론들을 나누어 보자. ※ 부모님의 사랑 중에 잊지 못하는 것은? ※ 부모님께 불효한 것 중에 가장 송구스러운 것은? ※ 자식은 효도하기, 부모는 자식 사랑하기 실천적 삶 계획하기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하여 ② 영육의 연약한 지체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③ 셀 원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① 수요기도회 참석하기
5)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5월 10일 어버이주일 설교 제목 :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본문 : 잠언 23:22
‘나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의 반(半)만 부모님께 해도 지극한 효자일 것’이라는 말을 되짚어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효의 본을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잠언 기자는 효의 개념을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시가 서’ 에서 이 부분을 “너를 길러준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고 어머니가 나이 들어도 무시하지 말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보여주는 효의 정의는 1)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처럼 듣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 번역은 단지 ‘아비에게 청종하라’고 했지만 유진 피터슨이 ‘너를 길러준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라’고 번역한 이유는 ‘경청하다.’ 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쉐마’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쉐마’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암송하고 또 암송하고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율법의 총론인 신명기 6:4-5절의 대 명제인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는 강령을 들을 때 쓰이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라는 권면에 이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행하는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격상시켰다는 시사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행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토라와 똑같은 것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들을 만한 무게감이 있는 말씀임을 잠언 기자는 ‘쉐마’ 라는 단어로 기록함으로서 후대의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성경 본문이 누가복음 15장의 기사(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이 기사에서 눈 여겨 볼 대목은 둘째 아들이 아닌 큰 아들과 대화하는 아버지의 말씀 부분입니다. 동생이 방탕하고 돌아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형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아버지가 장남에게 남긴 말이 누가복음 15:31-32절입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의 말씀에서 아들 중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낍니다. 즉 아들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선언은 ‘말’ 이 아니라 ‘말씀’ 이며 아들들은 반드시 ‘쉐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겉 듣는 것이 아니며 경청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대상이 ‘주’이시기 때문에 ‘주’가 말씀하시는 것의 대답은 한 가지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6:22절과 사도행전 10:14절에서 베드로의 행동이 보여주는 공통분모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과 행동하심에 태클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가 거부하고 태클을 걸 때 그 앞에 ‘주’ 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했는데 ‘주’가 말씀하시는 것의 대답은 ‘YES’라는 한 가지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하시는 대상이 ‘주’ 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보이는 대상은 ‘아버지’ 이십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자녀된 자는 경청의 자세를 아버지께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효의 정의입니다. 돈을 드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2. 어머니를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일생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본문 하반절에서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하면서 유진 피터슨도 이 부분을 “어머니가 나이 들어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수넴 여인의 기사에서 주의 종 엘리사를 잘 섬겨 자식이 없었던 수넴 여인이 아들을 득남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불행을 맞이합니다(왕하 4:18-20절). “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수넴 여인의 아들이 들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갔는데 갑자기 심각한 두통을 호소하자 아버지가 그렇게 아픈 아이를 아내에게 데려가라고 사환에게 지시합니다. 열왕기하 성경의 정황으로 볼 때 아이가 아침에 두통을 호소하여 낮에 어머니의 무릎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버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아내에게 보낸 것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한 전부였습니다. 아내는 아이가 급사하자 급하게 갈멜산에 거주하는 엘리사를 찾아가기로 하고 사환과 나귀를 준비하여 곧바로 떠납니다. 수넴에서 갈멜까지는 약 40㎞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쉬지 않고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수넴 여인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은 뒤, 아이의 죽음을 확인한 엘리사가 다시 수넴으로 내려가 아이를 살림으로 이 기사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이 기사에서 어머니의 행동은 아들을 살리고자 한 목숨을 건 긴장감이 보입니다(왕하 4:21-22).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어머니의 특성은 자녀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할 때 말로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말씀하는 사랑이라면 어머니의 사랑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생각할 겨를이 없는 생각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식 된 우리들이 어머니에게 드려야 하는 보답은 그 어머니를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머니의 일생을 가장 위대한 가치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시인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이라는 시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려 봅시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한 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어버이 주일을 보낸 한 주간을 지내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시는 세인지체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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