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이번 축제를 통해 복음의 감동을 받은 것들을 나누어 봅시다. | 경배와 찬양 (WORSHOP)●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찬송가 434장)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찬송가 436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4:1-2 ● 제목 : 더욱 많이 힘쓰라 1) 데살로니가 교회와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받은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나누어 보자. ● 본문 1절: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들이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
2) 디모데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은 것처럼 우리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통해 얻는 영적인 교훈을 설교를 중심으로 나누어 보자. ● 디모데후서 3:14-17:
● 사도행전 1:1-2: |
3)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삶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하여 내가 행할 바를 나누고 적용해 봅시다.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하여 ② 춘계 대심방 사역을 위하여(17일, 권미숙셀) ③ 초청된 베스트들의 영적 정착을 위하여 ④ 영육의 연약한 지체들의 치유와회복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① 수요기도회 참석하기
5)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4월 12일 주일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15)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1-2 제목: 더욱 많이 힘쓰라
요한 계시록 10:9-10절에 기록된 요한이 본 이 환상의 말씀은,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잘 소화하여 긴박한 그 예언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두루마리)을 먹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소화시킬 정도로 깊이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현대 복음주의 가독교의 가장 큰 약점은 우리가 가르침이나 실천에서나 기독교윤리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긴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복음대로 살고 복음을 빛나게 하는 사람들로 알려지기보다는 그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로만 알려져 있다.” 라고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제는 단지 그 말씀을 먹고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가장 높은 차원의 윤리적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사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하는 글을 4-5장에서 마무리하면서 다른 편지에서도 많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부록처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본문 4:1-2절). 본문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보면, “친구 여러분!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일러준 대로 계속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십시오. 억지스러운 종교적 노력으로 하지 말고 생기 넘치고 즐거운 춤을 추듯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십시오. 우리가 주 예수께 받아 여러분에게 제시해 드린 지침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권면을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들이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린 교회였고, 어린 신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서 배운 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은 감격하여 그들에게 ‘더욱 많이 힘쓰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바울이 제시해 준 지침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충실하게 순종해준 것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권고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1) 배워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본문 1절에 기록된 ‘우리에게 배웠으니’ 라는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배우는 데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앎의 시작은 배움이며 배운다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요 격려 받을 일입니다. 왜냐하면 배움의 전제는 겸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배울수록 “내가 이렇게 무지했던 존재란 말인가? 의 소회를 갖는다.” 는 것이 결과론적인 공통점입니다. 바울이 사랑했던 양자 디모데에게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습니다(딤후 3:14-17).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는 바울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을 눈으로 보고 바울의 실천적 삶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디모데후서 3:10-11절입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디모데는 그의 눈으로 직접 바울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았고 또 알았다고 바울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태생적으로 경건한 어머니와 외조모로부터 신앙의 가르침을 전수받았습니다(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시작하여 성장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배움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배움에 최선을 다했기에 바울 이후 그의 리더십을 전수받을 수 있었던 초대교회의 위대한 목회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사제지간을 맺어질 수 있게 하였던 아주 중요한 매개는 다름 아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었습니다. 이 복음은 바울을 변화시켰고 디모데 역시 변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사람들인 바울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었던 가르침은 당연히 복음입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린 지체들에게 주었던 것은 ‘복음’과 ‘복음대로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태동 6개월 미만의 어린신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깜짝 놀라 감동을 받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수수께끼 같은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대 진리의 명제와 그 명제 앞에서 세상에 부끄럽게 살지 않았던 삶을 통해 전해진 성령의 권능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뒤덮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셨던 삶을 배우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전 생애를 사셨던 주님의 삶을 집중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단지 우리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신앙적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대속의 삶을 잊지 맙시다. 균형을 잃지 않고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예수는 삶과 실천이라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 즉 복음을 배우는 데에 소홀하다면 그것은 심각한 태만이요 직무유기요 교만입니다. 배움의 자리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배우는 데 열심을 다하며 배움을 지속하는 데에 최선을 다합시다.
2)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 하반절을 보면 바울은 배움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배움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배운 것에 대하여 실천하고 있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그대로 행한 것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존 스토트는 “모든 신학 언어의 핵심이 ∼안에(IN), ∼에 대하여 (OF), ∼와 함께(WITH), ∼같이(AS),∼로(TO) 등의 전치사에 들어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걸었던 길을 같이 걷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맺는 방법은 예수 안에 거하고(IN JESUS), 예수께로 가고(TO JESUS), 예수에 대하여 말하고 (OF JESUS),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AS JESUS) 결국은 예수님처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본문에서 “너희가 행하는 바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아주 의미 있는 중요한 서론을 남겼습니다(사도행전 1:1-2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누가는 사도행전의 수신자인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을 쓰게 된 연유의 대의(大意)를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명령하시고, 승천하신 일의 기록’이라는 4가지로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 누가가 방점을 찍은 가장 위대한 주님의 일은 ‘행하셨던 일’들입니다. 주님도 행하셨던 일을 누가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주님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이 하나님께 받으신 미션을 수행하면서 그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로서 살아내야 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이 배움 뒤에 해야 할 몫입니다. 우리가 삶을 사는 가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웁시다.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게 하는 말씀을 배우는 것에 소홀하지 마십시다. 그렇게 배워 주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걸어가며 살아냄으로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영적, 신앙적, 영적 가치를 창출해 내십시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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