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말씀 축제 기간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은혜의 줄거리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의 생명 되신 주 (찬송가 380장) ●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7-12 ● 제목 : 바울 목사 1) 바울 목사가 가지고 있었던 여성성을 본문 구절로 말해보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십시다. 2) 바울 목사 가지고 있었던 남성성을 본문 구절로 말해보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십시다. 3) 우리 교회가 명품 교회가 되기 위해 담임목회자와 함께 협력해야 할 중보의 제목을 설교를 중심으로 말해보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와야 할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 설교에 나타난 중보 기도의 내용은? ※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담임목회자를 위해 협력해야 할 내용을 말해보자.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건강 회복과 사역을 위하여 ② 사순절의 영성 훈련을 위하여(18일~) ③ 베스트를 위해서(3명 전도) ④ 대날개 축제(귀빈초청주일: 4월 12일)에 열매 맺을 영혼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① 열린 모임 2주차 사역 기간: 베스트와 지명 방어 대상자를 만나기 위한 1차 사역 계획하기 ② 열린 모임을 위한 릴레이 기도 순서 정하기 5) 폐회: 주기도문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3월 1일 주일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10)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7-12 제목: 바울 목사
바울은 당시 가장 이상적인 목사의 흔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바울 목사의 목양관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목사관을 추적해 봅시다.
성경에 바울의 직분을 명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바울의 사역을 반추해 보면 교인들을 향한 철저한 바울의 목양적 반응들이 오늘의 언어로 그가 ‘목사’임을 증명해 줍니다. 바울은 자신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소문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적극적으로 본인의 사도직을 변호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벌어졌던 위기일발의 여러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신변안전이나 아니면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발로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혹은 타협하거나 하는 일체의 일들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의지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쳤고 권했습니다(살전 2: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아무리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 증거 사역이 힘이 들고 어려웠어도 데살로니가 지역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유대교의 종교 깡패들에 의해 고소와 협박으로 인해 베뢰아 지역으로 급거 피신하는 상황이 되었다하더라도 떠날 때까지 바울이 그 사람에게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데살로니가 사역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교회를 세운 뒤 훗날을 기약하며 베뢰아로 떠날 길을 열어주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작별하고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베뢰아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다시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서 그곳을 떠난 지 약 3개월 만에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를 방문하고 가지고 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어린 신자들이었지만 귀한 믿음으로 승리하고 있다는 기쁨의 보고에 흥분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는 편지를 써서 다시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에 당시의 상황들을 떠올리며 이런 마음을 갖고 목양했던 자신의 추억들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 본문 텍스트입니다. 바울 목사는 사랑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렇게 목회했습니다.
1) 바울 목사는 여성성의 세밀함을 갖고 목회적 돌봄을 행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본문 7절) 바울 목사와 실라 동역 목사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의 능력을 토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여 그 지역의 많은 이방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본인들이 누리고 있던 유대 종교의 기득권과 혜택들을 송두리째 바울이 말하는 예수 종교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로마황제 숭배에서도 면제를 받았고 군 입대도 면제 혜택을 받는 등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있었던 일종의 종교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당한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바울로 인해 상실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들의 위기의식이 컸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호위무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종교적 깡패들을 동원하여 예수 종교의 두목으로 보이는 바울을 고소하고 그를 체포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린 바울의 일행은 극적으로 그들의 폭력 동선에서 탈출하였고 어쩔 수없이 베뢰아로 급거 피신하게 된 것입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사도행전 17:10절) ‘밤’이라는 단어가 당시의 긴박성을 가늠하게 해 줍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이것을 다시 빌미로 잡았다는 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섬기는 회심한 성도들에게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여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누명을 씌워 공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예수라는 존재를 설명하고 가르쳤던 바울이라는 작자는 죽음이 두려워 신자들을 포기하고 야반도주를 한 비겁자이고, 그런 비겁한 자가 무슨 사도이겠느냐는 식의 공격을 자행한 것입니다. 많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섬기는 지체들은 바울이 그렇게 떠난 지 3개월 이상이 되었고 유대인들의 공격이 살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대체적으로 존경하고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어떤 이들은 바울이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도 일부 있었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바울에게 실망과 원망을 하고 있던 지체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디모데를 통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 목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지체들을 향하여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세히 그리고 단호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본문 7-8절). 바울은 사도의 권위를 갖고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을 치리하거나 징계할 수 있는 자격이 본인에게 있지만 나와 내 동역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도리어 나와 내 동역자들은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너희들을 품고 사랑했음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같이” 라는 바울 목사의 고백에서 목양적 반응의 첫 번째 은혜를 받게 됩니다. 유모, 즉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여성성의 세밀함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돌보았다는 점입니다(목회적 돌봄(pastoral care)-‘목회’는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현장적인 것). 목회는 유모의 마음입니다. 젖을 먹이고 돌보는 유모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다. 나는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마치 유모가 자기 자녀에게 젖을 먹이며 양육한 것과 같이 그렇게 너희들을 돌보았고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목숨까지도 줄 정도로 너희들을 사랑한 것’이라고 강하게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모와 같은 심정의 목회적 돌봄을 위해 바울은 자비량으로 데살로니가에서 생활비를 충당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본문 9-10절).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어린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했습니다. 동시에 바울 목사는 데살로니가에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흉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몸가짐 자체도 특별히 신경을 썼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거룩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흠 잡힐 일이 없도록 몸가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도 인정하셨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바울의 일련의 이런 몸가짐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하여 어머니의 심정으로 돌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바울 목사처럼 목회적 돌봄이 민감한 교회, 민감한 목회적 돌봄을 행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 바울 목사는 남성성의 단호함을 갖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본문 11-12절). 현장이 목회적 돌봄만으로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는 질서 공동체이고, 영적 리더십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바울 목사는 유모와 같은 따뜻한 돌봄의 리더십이 있었지만 반면에 아버지와 같은 단호한 남성성의 리더십으로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이끌어 갔습니다. 본문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했던 자세가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① 권면함 (파라칼레오): ‘권면’ 으로 번역되었지만 ‘훈계’의 뜻이 더 강함. ② 위로함 (파라뮈데마오): 축 쳐져 있는 상태의 사람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한다는 뜻. ③ 경계함 (말투로마이): 엄하게 권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아버지의 권위, 단호함의 리더십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말썽 많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던진 목회적인 권면의 틀에서 이렇게 마무리를 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고린도전서 16:13절). 목회의 현장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사의 영적인 고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호함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영적으로 투쟁하는 시대인 지금은 더 더욱 남성상의 단호한 리더십이 없다면 교회는 곧 무너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 단호한 리더십을 겸비했습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쪽에는 여성성의 목회적 돌봄이라는 따뜻함과 또 한 쪽에는 영적인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리더십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러기에 불과 탄생 3개월 밖에 안 되는 어린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명품 교회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이 두 가지의 영성을 겸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이것을 전제하여 목회자를 신뢰합시다. 바울 목사가 있어 명품 교회, 명품 성도들이 섬기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세인 교회도 21세기의 명품 교회, 명품 성도들이 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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